사회김민욱

"일회용품 쓰라고요? 우리가 알던 환경부 맞나요?"

입력 | 2023-11-25 08:02   수정 | 2023-11-25 08:07
<div class=″ab_sub_heading″ style=″position:relative;margin-top:17px;padding-top:15px;padding-bottom:14px;border-top:1px solid #444446;border-bottom:1px solid #ebebeb;color:#3e3e40;font-size:20px;line-height:1.5;″><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ab_sub_headingline″ style=″font-weight:bold;″>오락가락 일회용품 규제와 환경부 존재의 의미</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div></div>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사라지지 않은 플라스틱 빨대와 종이컵</strong>

환경부의 계획대로라면 어제(11월 24일)부터는 카페와 식당 등에서 매장 내 플라스틱 빨대와 종이컵 사용이 금지돼야 했습니다. 이를 어겨 적발될 경우 과태료를 물어야 하는 조치가 시행될 예정이었습니다. 2019년부터 예고됐던, 오랫동안 환경부가 준비한 일회용품 규제 방안 중 하나였습니다. 폐기물, 무엇보다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고자 하는 조치였습니다.

이 조치는 원래 지난해 11월 24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시행 약 3주 전 환경부는 예정에 없던 계도기간 1년 도입을 발표했습니다. ′규제는 하지만, 1년 동안 단속은 하지 않겠다′였습니다. 환경단체들은 수 년 전부터 예고된 규제에 계도기간을 도입하면 폐기물 감축이라는 정책 목표 달성이 어려워 질 것이라 우려했습니다. 친환경 대체품 생산을 준비했던 업체, 미리 대체품을 준비했던 소상공인들의 피해도 예상됐습니다. 하지만 규제를 부담으로 느끼는 소상공인도 많았기 때문에 1년의 계도기간은 수용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렇게 규제를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닌 계도기간 1년이 흘러갔습니다.

그런데 그 계도기간이 종료됐지만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환경부는 계도기간 종료를 앞두고 또 규제 변경을 발표했습니다. 지난 11월 7일 임상준 차관이 설명했습니다. 종이컵은 아예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플라스틱 빨대는 계도기간을 별도의 기한을 정하지 않고 연장하는 방안이 포함됐습니다. 환경부가 내세운 이유는 소상공인 부담 완화입니다.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를 매장에서 사용하지 못하면 다회용컵 설거지를 할 사람을 더 고용하거나 추가적인 비용 부담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환경부는 일회용품 규제와 폐기물 감축 정책 방향이 전환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규제 완화가 아닌 규제 합리화라고 표현했습니다. 플라스틱 빨대보다 다른 친환경 빨대를 사용하도록 유도하겠다고 덫붙였습니다. 하지만 환경부의 생각과 달리 대부분은 규제 완화로 받아들였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불 꺼진 종이빨대 공장</strong>

시장은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당장 종이빨대 주문량이 ′0′이 됐습니다. 반품 요청도 줄을 이었습니다. 종이빨대 업체 모두가 환경부 발표 바로 다음날인 8일부터 기계를 멈춰세웠습니다. 발표 직후 며칠 만에 수 천만원에서 억대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직원들을 모두 내보내야 했던 회사들도 많습니다. 기업들은 수익과 직결되는 정부 정책 변화에 민감합니다. 종이빨대 회사들이 이런 정책 변화를 미리 감지하지 못했을까요? 네 못했습니다. 규제 완화 발표 한달 전만 해도 환경부는 ′계획대로 간다′고 말해왔다고 합니다. 종이빨대 업체들도 7일 발표를 보고야 알았을 정도의 갑작스런 발표였다는 겁니다.

사실 종이빨대를 만드는 회사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바이오 플라스틱을 이용해 생분해 빨대를 만드는 기업, 쌀빨대 기업 등도 있지만 전국에 10만개가 넘는 카페에 비하면 그 수가 많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의 반발이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이번 규제 완화가 ′총선용′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친환경 대체품 시장 붕괴 우려</strong>

종이빨대 업체들은 규제 완화 발표 일주일 후 정부세종청사 앞에 모였습니다. 이제는 ′쓰레기′가 된 종이빨대를 쏟아부우며 항의했습니다. 환경부와 중소벤처기업부는 자금 대출 지원을 검토 중입니다. 하지만 이번 일회용품 규제 완화는 단순히 몇몇 기업에 대한 지원으로 마무리될 만한 일이 아닙니다. 유엔은 내년까지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제플라스틱협약을 체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단순 폐기물 감량과 재활용 확대를 넘어서 플라스틱 원료와 제품의 생산과 소비까지 규제하는 방안이 논의 중입니다. 플라스틱 감축은 전 세계적인 흐름입니다.

플라스틱 규제가 불가피하다면 꼭 확보돼야 하는 것은 대체품입니다. 플라스틱 빨대를 못 쓰게 되면 종이빨대나 쌀빨대와 같은 대체품을 써야 합니다. 그냥 대체품이 있기만 해선 안 됩니다. 가격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공급이 충분해야 하고 기존 플라스틱 제품에 비해서 질이 많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품질도 갖춰야 합니다. 한 두 달 사이에 되는 게 아닙니다. 2019년 환경부의 일회용품 규제 계획이 공개되면서 몇 년 동안 친환경 대체 빨대 생산 기업들이 속속 생겨났고 기술개발도 진행됐습니다. 물론 아직 종이빨대가 플라스틱 빨대보다 두 배 가량 비싸지만 초기에 비해서는 가격이 절반 정도로 저렴해 졌습니다. 정부의 정책에 호응해 시장이 형성되고 기술이 발전한 겁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이제 누가 정부를 믿겠는가</strong>

그런데 그 정부가 별안간 정책 변경을 발표했습니다. 대체품 업체들은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았다는 표현 외엔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 상황이 됐습니다. 종이빨대, 쌀빨대, 생분해빨대 업체들은 하나같이 말합니다. 누가 이제 정부를 믿고 규제에 대비해 대체품 개발과 생산에 나서겠냐는 겁니다. 플라스틱 대체품 시장 전체가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 식당이나 카페를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은 마냥 좋을까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물론 당장의 부담이 줄어든 만큼 환영하는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플라스틱 폐기물 감소라는 대의명제와 정부 정책에 공감해 또 규제에 대비해 미리 대체품을 대량 구매한 소상공인들도 많았습니다. 플라스틱 제품보다 작게는 두 배, 많게는 다섯 배 이상 비싼 제품들입니다. 이들도 입을 모아 ″이제 정부가 어떤 규제안을 내놓아도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대체품 시장의 붕괴, 정부 정책 신뢰 손실. 이번 일회용품 규제 완화의 가장 큰 피해자는 어쩌면 환경부일 겁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틀린′ 차관, ′피해가는′ 장관</strong>

지난 7일 규제 완화를 발표하던 임상준 환경부 차관은 ′소상공인 부담 완화′를 얘기하면서 국내 일회용품 규제가 ′과하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그 사례 중 하나가 해외에 규제 사례가 없다는 종이컵입니다.

″또한 종이컵을 규제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해외각국은 폐기물 감량의 효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플라스틱을 중심으로 일회용품을 줄여나가고 있습니다.″

바로 잘못된 정보라는 반박이 나왔습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독일과 프랑스는 올해부터 매장내 종이컵 사용을 금지하고 있고 네덜란드도 내년부터 규제 예정″이라며 ″지방정부까지 살펴보면 더 많은 곳에서 종이컵을 규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잘못된 정보는 환경부의 보도자료에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환경부는 종이컵이 소상공인에게 부담이 되는 사례로 ′푸드트럭에서 붕어빵을 사는 B씨′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어묵도 판매를 하는데 종이컵이 규제되면 어묵국물을 줄 수 가 없다는 하소연이었습니다. 그런데 푸드트럭은 애당초 식품접객업으로 분류되지 않아 규제 대상도 아니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환경부가 제대로 알아보고 준비해서 정책을 바꾼게 맞느냐는 의심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이런 비판과 지적에 환경부 장관은 국회 상임위원회나 기자·소상공인 간담회 등에서 비슷한 얘기만 반복합니다. 일회용품 감축이라는 정책 방향은 바뀌지 않았고 이번 조치는 규제 합리화라는 겁니다. 지난 21일 기자 간담회에서도 그랬습니다. 각 언론사에서 환경부 취재를 맡고 있는 이른바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였습니다. 당연히 일회용품 규제 완화와 관련된 날선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10월까지도 환경부가 계획대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던 이유에 대해선 ″정확하게 결정이 안 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실무진이) 그런 답변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답했습니다. 차관의 브리핑과 보도자료의 오류 지적에 대해서도 어물쩍 넘어갔습니다. 보도자료의 어묵 국물사례에 대해선 ″그건 사례가 좀 잘못됐다고 생각든다″, 차관의 해외 종이컵 규제 없다는 정보 오류에 대한 지적에는 ″제가 더 챙겨보겠다″는 답변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회용품 규제 완화 왠지 기시감이 듭니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도입하려 했던 일회용컵 보증금제 기억나시나요? 국내 프랜차이즈 매장에서만 연간 30억개 가까이 사용되는 일회용컵. 환경부는 이 일회용컵을 줄이겠다며 컵에 보증금을 부과하고 반납하면 돌려주는 제도를 도입하려 했었습니다. 전 세계에도 유래가 없는 혁신적인 방안으로 평가됐습니다. 지난해 6월 전국 실시가 예고됐었죠. 그런데 12월로 제도 시행을 미루더니 아예 전국 시행 대신 제주와 세종에서만 선도적으로 시행하는 것으로 수정됐습니다. 그나마도 제주 매장 상당수가 최근 보증금제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기로 하는 등 제도 정착도 잘 안되는 상황입니다. 이쯤되면 환경부가 과연 일회용품 줄이기 정책을 정말 제대로 추진할 의지가 있는지 궁금해 질 정도입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환경′ 대신 ′경제·개발′ 챙기는 환경부</strong>

올해 첫 업무 개시일이던 1월 2일. 출입기자들에게 공지된 환경부 장관의 일정입니다. ′오전 9시 정부 시무식′, ′오후 1시 환경부 시무식′. 여기까지는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일정이 눈에 띄었습니다. ′오후 4시 2023 경제계 신년 인사회(코엑스)′. 한참 환경영향평가나 화학물질관리 등에 관한 법 같은 규제 법령들이 기업들에게 부담이 된다는 이야기가 용산이나 국회 등지에서 쏟아져 나온 뒤였습니다. 전임 또 그 전임 장관도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 참석한 기록은 없습니다. 환경부도 대통령실의 주문에 따라 이제 환경보다 경제를 더 챙기겠다는 의지로 읽혔습니다.

그날 이후 새해 초부터 환경부의 사실상 개발 허가 결정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1월 31일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인 흑산도 일부 지역을 공원구역에서 해제했습니다. 흑산도공항이 들어설 자리였습니다. 국립공원은 개발이 까다롭기 때문에 아예 공원에서 해제해서 개발이 가능하도록 환경부가 나서서 길을 터줬다는 비판이 터져나왔습니다. 그리고 또 한 달 뒤, 이번에는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환경영향평가가 통과됐습니다. 외부 전문기관들은 모두 부정적인 의견을 냈지만 환경부는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놓아도 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찬반 여론이 팽팽한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도 통과됐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환경부의 존재 이유는?</strong>

환경단체는 물론이고 학계의 많은 사람들도 이렇게 말합니다. ″환경부는 규제 부처다.″ 경제활동의 논리는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이윤의 극대화. 벌이는 최대화, 지출은 최소화하려 합니다. 허가는 반갑고 규제는 꺼려집니다. 규제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경제활동으로 인한 환경의 오염과 파괴가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보다 개발 논리가 우세했던 수십년 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해병으로 통하는 1980년대 울산 울주군 온산읍의 ′온산병′, 1991년의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 등 커다란 환경 오염 사고들이 있었습니다. 환경부의 역할이 중요해 지면서 환경처에서 환경부로 승격한 것도 이런 일련의 사고들이 터진 뒤인 1994년입니다.

물론 불필요한 과잉 규제는 정비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일회용품 규제 완화, 개발행위에 대한 파괴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국립공원 지정, 환경오염평가 제도 등은 그 필요성이 분명합니다. 국민들도 그 필요성에 이미 공감하고 있습니다. 환경운동연합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10명 중 8명은 정부 차원의 일회용품 규제 도입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녹색연합이 지난 6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응답자 72.8%가 환경을 고려한 개발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자연환경 보존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환경 관련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답한 사람도 76%였습니다. 존재 이유에 대해 환경부는 과연 제대로 된 답을 갖고 있는지, 환경부 스스로 되돌아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