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03-27 19:04 수정 | 2026-03-27 19:12
일본 정부의 2인자이자 대변인격인 관방장관은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정기 브리핑을 통해 정부의 공지사항과 공식 입장에 대해 전달합니다. 그와 함께 기자들의 질의에 응답하는 시간을 갖는데, 통상 예측 가능한 범위 내의 질문과 답변이 오가기 때문에 회견 분위기는 대체로 잔잔하고 평화롭습니다.
그런데 한 주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금요일(27일) 오후 정례브리핑은 다소 소란스러웠습니다.
발단은 마이크 왈츠 유엔주재 미국대사의 발언과 관련된 질문이었습니다.
왈츠 대사는 현지시각 22일 미국 CBS 방송에 출연해 다카이치 총리가 호르무즈 해협의 재개방을 위해 자위대 지원을 약속했다고 밝힌 건데요.
이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는 한결같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약속했다는 사실은 없다′고요.
하지만 한 기자가 그 입장과 관련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미국이 그런 인상을 주는 설명을 하고, 그런 이해를 하고 있다면 사실과 다름을 외교 루트를 통해 알려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은 ″회담 내용을 자세히 알릴 수는 없다″면서도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또다시 말했고, 그러자 이번엔 ″일본 측이 그런 사실이 ′없다′고 표명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다른 기자의 후속 질문이 날아들었습니다.
이에 기하라 장관은 평소 단정하고 차분한 톤과는 사뭇 다른 목소리 톤으로 ″합의와는 다른 제3자의 발언도 있었고, 당사자 외 사람들의 추측에 근거한 발언도 있었지만, 자신이 올바른 정보를 적절히 전달해 왔다″고 맞받아쳤습니다.
질문은 또다시 이어졌습니다. 사회자가 당황한 듯 ′시간이 다 되었다′며 만류하려고 했지만 장관의 허락으로 마지막 질문이 던져졌습니다.
″제3자 추측이라고 했지만, 왈츠 대사를 언급한 걸로 보인다. 유엔 대사는 국무장관과 마찬가지로 외교 핵심이며 기밀 정보에 접근할 권한이 있고, 그 점을 고려한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제3자의 추측이라고 말해도 되느냐″고요.
이에 대해 기하라 장관은 ″대면으로 무릎을 맞대고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 그 자리에서의 대화가 전부라고 생각한다″며 ″그 자리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은 모두 제3자이고 왈츠 씨는 그 자리에 동석하지 않았다″고 확실히 선을 그었습니다.
지난주 미·일 정상회담은 그 어느 때보다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특히 일본 내에선 ′왜 하필 지금 회담을….′ 이란 탄식과 함께, 자위대 파견을 요구받은 다카이치 총리가 어떻게 대응할지가 초미의 관심이었습니다. 자위대 파견을 바라지 않는 민심과 동맹의 역할을 압박해오는 트럼프의 사이에서 다카이치의 대응에 주목했습니다. 마치 ′젤린스키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했지만 회담 직후엔 공개 모두 발언에서 눈에 띄는 요구를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단 안도했습니다.
하지만 다녀오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확실하게 드러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미국에게서 어떤 요구가 있었는지, 이에 어떻게 응답했는지 여전히 총리는 두루뭉술한 태도로 함구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물론 관방장관의 입에서도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 안 되는 게 무엇인지 잘 설명했다′는 답변 외엔 나오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선 계속 일본이 지금보다 좀 더 협력할 것을 말한 것 같은 분위기의 말들이 새어나오고 있습니다. 왈츠 대사의 방송 인터뷰 발언뿐 아니라 회담 당사자인 트럼프 역시 회담 다음날 폭스 뉴스에서 ″헌법상의 제약은 있지만, 미국이 필요로 한다면 일본은 지원해 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정상간 대화를 세세히 공개하는 건 외교적 상식에 어긋날 뿐더러 실익이 없는 행위입니다. 미국 내 주요 인사의 발언이 사실과 다르다 해도 이를 공개적으로 정정하거나 철회해 달라고 요청할 수 없는 일본의 입장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동맹국 핵심 인사들이 잇따라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내놓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이 ′그런 약속은 없었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건 국민의 불안을 키울 뿐입니다. 일본 국민이 알고 싶은 건 회담의 속기록이 아닌 자국의 안보와 직결된 문제에 대해 내 나라 정부가 어떤 원칙을 갖고 대응했는지, 그 최소한의 윤곽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