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앵커: 강성구

노태우 대통령 후보는 어떤 사람인가[하남신]

입력 | 1987-06-10   수정 | 1987-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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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대통령 후보는 어떤 사람인가]

● 앵커: 헌정 40년 만에 처음으로 집권당 대통령 후보에 선출된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한 번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남신 기자입니다.

● 나레이션: 국민은 신뢰를 먹고 삽니다.

따라서 정치인은 국민의 신뢰 속에 살아야 합니다.

안정은 기초며 바탕입니다.

이 바탕위에서 목적을 추구해야 합니다.

안정은 모든 것의 출발점입니다.

갈등은 어느 경우에 있어서나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합니다.

대화하는 자, 타협하는 자는 비겁자가 아닙니다.

● 기자: 민정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자로서 정권 재창출의 기치를 든 노태우 후보.

노태우 후보는 1932년 12월 경북 달성군 팔공산 기슭의 두메마을에서 태어나 그리 유복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경북고등학교를 나온 뒤 6.25가 한창이던 51년 육사 11기로 군문에 들어갔습니다.

최초의 정규 육사 출신으로 엘리트 장교의 자긍심 속에 군 요직을 거친 노태우 후보는 81년 7월 30년간 몸담았던 군을 떠나 육군 대장으로 전역한 뒤 곧바로 정무 제2장관에 임명됨으로서 제 5공화국 국정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무장관 재임시절 노태우 후보는 올림픽을 유치하겠다는 전두환 대통령의 결심을 받들어 설득력 있는 화술과 매너로 적극적인 외교를 펴면서 서울올림픽 유치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노태우 후보는 82년 3월 초대 체육부 장관을 지낸데 이어서 같은 해 4월에는 내무 장관으로 자리를 옮겼고 당시 의령사건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내무부를 인화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83년 7월에는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에 선임되었고 이와 함께 대한 체육회장과 아시아경기 조직위원장 등 체육 관계 조직의 장을 겸임하면서 올림픽 준비사업에 역량을 발휘했습니다.

올림픽 관계 업무에 정열을 쏟던 노태우 후보가 정계 전면에 나선 것은 잘 알려진 대로 85년 2.12 총선에서 전국구로 당선되고 곧이어 민정당 대표위원으로 임명되면서부터입니다.

정치실세의 현실화라고 일컬어지기도 했던 노 후보의 정계진출을 놓고 일반의 비상한 관심이 모아졌지만 정작 그 자신은 통치권의 누수방지를 강조하면서 정치적 안정과 88년 양 대사의 수행 등 국가의 당면과제에 전념할 뿐이라는 일관된 자세를 보였습니다.

특히 야당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합의개헌이라는 준령을 넘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고 숱한 우여곡절 속에서도 끝까지 대화정치를 추구함으로써 합리적인 정치인, 온화한 정치인이라는 인상을 남겼습니다.

노 후보 자신이 술회하곤 하듯이 개헌 정국의 전개과정에서 야당과의 협상이 결렬될 때마다 그는 깊은 좌절에 빠지기도 했지만 참는 것도 이기는 것이라는 슬기라는 체득한 것이 정치인으로서의 노 후보를 더욱 성숙시킨 밑거름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민정당의 체질적인 경직성을 해소하고 당 내 분위기에 민주적 기풍이 깃들기 시작한 이면에도 노 후보의 부드러운 인품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민정당 자체 분석이기도 합니다.

5공화국 출범의 주역으로서 지난 6년 동안 끊임없이 따라다니던 시선을 떨어뜨리고 노태우 후보는 헌정 사상 최초의 집권당 대통령 후보자라는 위치에 섬으로써 정국타개에 더욱 무거운 짐을 안게 되었습니다.

정치와 행정의 양면을 두루 체득한 경력, 야당과의 협상과정에서 보여준 인내의 슬기 그리고 과묵한 언행에서 읽을 수 있었던 인간적 진솔함이 과연 어떤 조화를 이루어 대통령 후보자 노태우로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인지 기대와 함께 주목해봅니다.

MBC뉴스 하남신입니다.

(하남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