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앵커: 이인용,김은혜
에스토니아 탈린의 고려인 후예들 60여명[김종오]
입력 | 2000-01-01 수정 | 200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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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린 아리랑]
● 앵커: 이번에는 러시아의 서쪽 끝 발티케미 연안 에스토니아의 고려인후예들입니다.
나라를 잃고 흘러온 한맺힌 세월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뿌리 뽑힌 삶은 아닙니다.
김종오 특파원이 이들을 만나봤습니다.
● 기자: '겨울 타령' 노래에 아리랑이 흐르고 있습니다.
반콘스탄틴 체홀과 마하 세르게이 박크레리. 슬픔박힌 이름들이 거기 있습니다.
1937년 연해주 동포 17만 명은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합니다.
그들 2세들. 모스크바나 레닌그라드로 군인 혹은 학생으로 떠났던 이들이 2차 대전이 끝나자 이 탈린으로 하나둘 모여듭니다.
류시아 대륙을 며칠 동안 가로 질러온 혹한 열차의 종착역 탈린. 고려인들은 따뜻한 바다가 있는 탈린에 그들 삶을 내려놓았습니다.
탈린 저작거리에서 만난 강 콘스탄틴 씨. 소련군 전차장군이었던 그는 에스토니아 사람들 상대로 식당을 차렸습니다.
한달 2.000달러 수입으로 넉넉해졌지만 풀리지 않는 한 앞에 햇살이 없습니다.
● 부인 박이리나: (한국에 한번 가봤나?)
못 갔다 왔다.
손주가 크면 한국으로 보낼 거다.
● 기자: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훈장이며 소련 여권 대신 카쉬킨트의 옛사진들이 희미한 그림자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조 로나르드 씨. 77의 그가 기억해 내는고려말은 없습니다.
필란드 태생 부인과 해로하는 2차 대전의 이 영웅은 70년 전에 찍은 낡은 사진에서 소년의 눈으로 어머니를 찾고 있습니다.
고려인회 회장인 유 빼데르씨. 5살 때 강제 이주 열차를 탄 그는 36년째 로스남의 병원 외과 의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 유 빼데르 (외과 의사): 우리 고려 사람들 모아서 어떻게 해서든 에스토니아 말을 익히기도 하고…
● 기자: 지금까지 밝혀진 고려인들은 60여 명입니다.
자영업. 교사. 요리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한때는 120명에 이른 적도 있지만 절반이 연해주나 중앙아시아로 되돌아갔습니다.
소련 국적으로 살아온 이들이 소련의 붕괴로 무국적자가 된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 누구랄 것도 없이 지니고 있는 옛 사진에는 한과 뿌리를향한 멍울들이 담겨 있습니다.
철길도 더 갈 곳이 없는 유랑의 끝 발티케 탈린에 와닿은고려인들은 이제 더는 뿌리 뽑힐 수 없는 벗은 나무 그 모습입니다.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MBC 뉴스 김종오입니다.
(김종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