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평양 상봉장에서는 또 형제와 자매, 아저씨, 조카가 서로 만나 기쁨을 나눴습니다.
그렇지만 먼저 세상을 떠난 부모 생각에 가슴이 저몄고 헤어져 있었던 세월이 한스러웠습니다.
최일구 기자입니다.
● 기자: 강물이 되어서라도 흘러가고 싶었던 고향, 기러기가 되어서라도 날아가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 그 그리움과 기다림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지 50년, 기나긴 이별 탓인지 김금자 씨는 관절염의 고통을 참아가면서 사촌자매들과 말 대신 통곡으로 지난 반세기를 회고했습니다.
아버지의 약을 구하러 신의주에서 원산으로 갔다가 6·25를 만나 자매들과 생이별한 정명희 씨는 꿈 같은 상봉이 믿기지 않는 듯 서로를 확인했습니다.
● 정명희 (언니, 남동생 상봉): 너 정말 맞나?
맞는기가?
내 동생 맞아?
● 기자: 다듬지 않은 풀처럼 웃자라버린 세월 속에서 그들의 모습은 변했지만 마음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 장정희 (자매상봉): 이건 내고, 이건 얘인데, 어렸을 때 찍은 사진, 언니 기억나요?
사진관에서 울면서 찍은 사진.
● 기자: 소중히 간직해 온 빛바랜 사진 한 장, 그 안에서 얼어 버렸던 50년 세월은 오늘 굳게 맞잡은 손을 통해 뜨거운 눈물로 녹아내렸습니다.
● 이원훈 (여동생 상봉): 몇년만에 만나요, 이거… 나 알갔어요?
● 기자: 다시 만나기 위해 헤어져 있어야만 했던 그 세월도 형제들의 뜨거운 핏줄만은 지울 수 없었습니다.
● 상환식 (남동생 2명 상봉): 니들 나 알아보갔니?
알아보갔어?
● 기자: 상환식 씨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막내 동생을 상봉장에서 만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 상환식 (남동생 2명 상봉): 기별받기를, 너도 사망으로 돼있더라구.
그래서 너만 만나러 온건데, 너도 살아있다니…
● 기자: 아무 말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맞잡은 두 손은 하나가 되어 떨어질 줄 모르며 세월이 떨어뜨려 놓은 형제들을 다시 하나로 묶었습니다.
국군 부역을 우려해 가족들의 권유로 1·4 후퇴 때 형님과 월남했던 선우예환 씨도 여동생과 조카들의 품에 안겨 절규했습니다.
● 선우예환 (여동생, 조카 상봉 ): 난 아버지 얼굴도 몰라요.
그래서 내가 니 아버지 사진 갖고 왔다.
너 보라고.
● 기자: 얼어붙었던 지난 50년 세월, 불어오는 바람에 눈물을 실어보내고 떠가는 구름에 그리움을 띄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