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표의 작심마이크] "72년 수사반장 때 직접 본 동사 어린이 사체가 나를 청소년 봉사로 이끌었다"
입력 | 2020-07-23 15:13 수정 | 2020-07-23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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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메시지 캠페인, 외롭고 힘든 시기 국민에게 위로 전하고자″
″소년교도소 아이들에게 연극 봉사…아이들의 생각을 수집해 무대에서 실현″
″연극을 통해 아이들이 솔직해지고 세상과 소통해″
″72년도 얼어 죽은 아이 사건을 목격한 뒤로 아이들 문제에 관심 가져″
″문화의 힘은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행복을 전달해 주는 것″
″최불암 시리즈는 아이들 교육 목적을 위해 초상권 포기했다″
◀ 앵커 ▶
코로나19 장기화로 모두가 힘든 시기. 힘들어하는 국민을 위해 희망 메시지 캠페인에 나선 배우 최불암 선생님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최불암 배우 ▶
반갑습니다.
◀ 앵커 ▶
먼 걸음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서울시와 캠페인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건지 설명해 주시죠.
◀ 최불암 배우 ▶
방역 차원에서 국민에게 위로의 말을.. 전철역 200군데 가깝게 아파트 한 2000군데 나갈 거라고 해요. 제 목소리가 국민이 익숙하시고. 가족처럼 모두 느끼니까 귀를 기울여주실 것 같으니까 저를 아마 지목해서 나와서 위로해드려라.
◀ 앵커 ▶
워낙 전 국민이 아는 목소리고 또 거기에 목소리 자체도 또 약간의 위로가 되는 부분이 있는 거 같습니다.
◀ 최불암 배우 ▶
글쎄요, 위로가 될까요? 그건 모르겠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내가 누구하고 이야기하면.
◀ 앵커 ▶
다 아시죠?
◀ 최불암 배우 ▶
다 주변을 봐, 그러면 나 여기 있수다 그러면 나는 텔레비전에 있는 줄 알았다고. 그래서 그 목소리가 익숙하니까 그게 정감이 됐을지도 모르죠.
◀ 앵커 ▶
그 목소리는 젊을 때나 선생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 최불암 배우 ▶
많이 달라졌어요. 젊었을 때는 짱짱했는데 이제는 겨우겨우.
◀ 앵커 ▶
메시지의 내용은 뭔가요?
◀ 최불암 배우 ▶
그냥 기운 내라는 거죠. 가뜩이나 삶이 외롭고 이런데 거기에 코로나 때문에 입도 막고 그러니까 더 외로워진 거죠. 그래서 누군가 위로의 말을 해 줘서 서로 거리감은 두고 말도 안 하지만 말도 해 봐야 느낌이 다르죠, 이거 쓰고 하는 말이. 그걸 중재해 주는 의미로 제가 있었던 거죠.
◀ 앵커 ▶
그런데 이런 목소리 봉사 말고도 선생님께서는 청소년 위해서 여러 가지 봉사를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최불암 배우 ▶
그건 당연히 어른이면 다 하는 일이죠.
◀ 앵커 ▶
그렇지 않습니다.
◀ 최불암 배우 ▶
저도 그중의 한 사람인데요.
◀ 앵커 ▶
교도소는 왜 맨 처음에, 어떤 그 대상을 거기로 잡으신 건가요?
◀ 최불암 배우 ▶
그게 연극 때문에 2000년도에.
◀ 앵커 ▶
김천교도소를.
◀ 최불암 배우 ▶
김천이 아니라 그때는 천안교도소. 거기의 청소년들이 한 1200명 정도가 됐을 거예요. 그때 거기 위로차 갔다가 제가 사용되기 시작한 때죠. 그런데 마침 정부에서도 어떻게 걔네를 인도해서 좋은 말을 들려주고 좋은 정서를 가지게 해 줘라 그래서 제가 나서봤습니다. 저는 연극 때문에 나섰죠. 왜냐하면 아이들한테 연극을 가르치면 걔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전부 희곡에 넣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불만이라든지 또 걔네가 사회를 보는 거라든지 미래를 걱정하는 거라든지. 이런 것들을 전부 모아서 작가가 써서 그것을 내가 실현해서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껴서 자기가 하지 못한 일 또 하고 싶은 일 이것을 한번 내놓는 거죠, 무대에.
◀ 앵커 ▶
예술을 통해서 아이들을 치유하신 거 같습니다.
◀ 최불암 배우 ▶
그렇죠, 아이들 치유보다도 그 아이들의 생리를 파악해서 나머지는 각 단체들. 또 저도 가입한 단체도 있습니다만 제로캠프 이런 데서 그것을 파악해서 어떻게 인도하면 되겠다 하는, 걔들의 불만 욕구 또 미래, 이런 것들을 연구해서 내놓는 작업이죠.
◀ 앵커 ▶
어떻게 해 보시니까 아이들의 변화 같은 것을 좀.
◀ 최불암 배우 ▶
그게 제일 빠를 것이라고 보는데, 힘듭니다, 사실.
◀ 앵커 ▶
어떻게.
◀ 최불암 배우 ▶
누구를 가장 큰 역할을 시키느냐 적게 시키느냐 이런 분별. 그리고 요즘은 뮤지컬 쪽을 많이 아니까 노래라든지 춤이라든지 이런 것들에 익숙하지 못하니까 시간이 좀 오래 걸리고. 그리고 그것이 객석에서 만족할 일은 없지만 그 불만 사항을 모두 수집해서 요점을 무대에서 토로하는 것, 이런 문제가 좀 어려웠습니다.
◀ 앵커 ▶
아이들이 그런데 가시적으로 변하는 건 좀 느끼시나요, 어떻습니까?
◀ 최불암 배우 ▶
그거는 무형적으로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일 많이 출소하고 난 다음에도 제일 많이 찾아오는 것이 바로 연극하던 아이들, 얘들이 제일 많이 옵니다. 그런데 이 영향력이 얼마나 크냐 하면요. 연극은 진행되면서 코러스가 한 100명 된다 하면 100명 그 아이가 다 연극에 휩쓸려서 그 정서를 타고 넘어가거든요. 순화된다고 할까.
◀ 앵커 ▶
순화된다고.
◀ 최불암 배우 ▶
순화되고 또 걔네의 불만 사항을 모두 취합해서 가지고 있는 어떤 무기가 되는 거죠.
◀ 앵커 ▶
아이들의 생각을 수집할 수 있다 이런 말씀이시죠. 그런데 비행 청소년 아이들 말고도 선생님은 예술 교육 같은 것도 굉장히 관심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 최불암 배우 ▶
그게 예술 교육을 통해서 만든 아이들이죠. 만든다는 이야기는 좀 뭐하고 같이 동화되고 서슴없이 격리됨 없이 그냥 서로 소통해서 솔직해지고. 또 어느 인물을 대상으로 해서 자기가 인물을 만들어내면 자기를 잊어버리고 그 인물에 가까이 갈 수도 있고 그 인물과 동화될 수도 있어서 좋은 거죠.
◀ 앵커 ▶
아이들하고 소통 수단으로는 예술이 최고라고 보시는 건가요?
◀ 최불암 배우 ▶
글쎄요, 최고라고 볼 수는 없지만 제가 한 것 중에는 제일 효과적이다, 이렇게 보기는 합니다.
◀ 앵커 ▶
효과적이다.
◀ 최불암 배우 ▶
그런데 선생이 가서 가르친다 이거보다 빠른 게 자기가 실현해 볼 수 있다. 롤 모델이 될 수 있다 하는 그런 느낌이 크죠.
◀ 앵커 ▶
그런데 어떤 연극하시거나 과거에 무슨 드라마 하시거나 이게 아이들한테 신경을 쓰시는 데 계기가 되신 건가요, 아니면.
◀ 최불암 배우 ▶
그거보다는요, 아이들을 보는 시간이 조금 전 달랐습니다. 수사반장 하면서, 우리 MBC 드라마 수사반장 하면서.
◀ 앵커 ▶
어마어마한 드라마였죠.
◀ 최불암 배우 ▶
지금도 제 대표작이 뭐냐 물어보신다면 수사반장이 바로 나오는데.
◀ 앵커 ▶
시청률이 70%.
◀ 최불암 배우 ▶
애정을 가졌던 작품이죠. 그때 강남이 한창 아파트도 세워지고 모두 발전해 나가는 단계에서 그 사고가 생겼는데, 최중락 씨라는 분이, 그분은 후반에 들어오신 분이지만 그분이 전화를 하면.
◀ 앵커 ▶
경찰 말씀하시는 거죠?
◀ 최불암 배우 ▶
경찰이죠. 그렇죠.
◀ 앵커 ▶
최 선생님 역할의 모델이 되신 그 분 말씀하시는 거죠?
◀ 최불암 배우 ▶
그렇죠. 그런데 그 전에 박보영 씨라고 있고 수사계, 또 신가일 씨라고 초동수사를 잘하시는 분. 이찬희 씨, 이런 분들이 자리 잡고 계셨다가 안 되겠다. 실제로 이 사람들과 경찰과의 관계가 더 가까우려면 최중락 씨가 필요하다. 이래서 현직에 계신 수사 경찰이 저희를 인도했죠.
◀ 앵커 ▶
그러면 현장도 가보시고 한 건가요?
◀ 최불암 배우 ▶
그럼요. 경찰대학까지 나왔으니까.
◀ 앵커 ▶
최 선생님도 찍으실 때 어떤 사건 현장 같은 데에도 가보시고 이러셨나요?
◀ 최불암 배우 ▶
그냥 교육시키는 거예요, 현장에 나와서 봐라. 가보니까 아이가 아파트 밑에서 1층 그 밑에서 얼어서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보는데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고. 저는 하여튼 오금이 저도 저려서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얼어 죽는 일이 있나, 20세기 들어서 이게 무슨 일인가 참 슬픈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양반이, 최중락 씨가 하는 말이 이 양반이 비닐을 덮어놨어요. 비닐은 어떻게 있었던 거 같아.
◀ 앵커 ▶
그게 몇 년도.
◀ 최불암 배우 ▶
그게 72년도인가 그래요. 그러니까 애가 얼음 속에서 나온 것처럼 돼 있어요. 그리고 그 비닐을 벗겨 보니까 코하고 맞닿아서 이렇게 돼 있는데 콧물이 나오고 눈물이 나왔는지 이게 얼어붙어 있는데 그 형상이, 꿈속에서도 이런 현상이 없을 텐데 하면서 처절함을 느꼈죠. 그런데 최중락 씨가 누구 하나 담요라도 덮어줄 사람이 없어, 이 비정한 사회가 왜 이렇게 됐느냐. 옛날에는 거적데기라고 하죠? 거적데기 뭔지 모르죠?
◀ 앵커 ▶
대략은.
◀ 최불암 배우 ▶
가마 푼 거란 말이에요. 그거라도 씌워 놓는데 이거를 보고 신고만 할 줄 알지 누구 하나 담요 한 장 덮어줄 사람이 없나 하는데 걔한테 담요를 덮어줄 수 있는, 그 느낌이 제가 컸던 모양이에요. 그때부터 아이들이라면 이거 큰일 났구나. 전부 다 아이들만 보면 이거 어떻게 하냐. 방황하는 아이들이나 뭐나 이런 정서를 제가 옮겨 받아서 그래서 가까이 간 것 같아요.
◀ 앵커 ▶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거기에…
◀ 최불암 배우 ▶
저는 그렇게 보거든요. 그리고 역할이 수사반장 할 때 가장 중히 다뤘던 것이 결국은 아이들의 미래거든. 아이들, 갈 곳 없는 아이들을 사회에 보내는 것. 이런 것에 이입이 컸던 것 같아요.
◀ 앵커 ▶
선생님연세가 올해 여쭤봐도 되는 거죠? 여쭤보지 말까요?
◀ 최불암 배우 ▶
제가, 괜찮아요. 1940년으로 인터넷에는 되어 있어요. 그런데 옛날에는 1년 키워 봐서 살면.
◀ 앵커 ▶
39년생이시죠?
◀ 최불암 배우 ▶
39년생이죠.
◀ 앵커 ▶
그러면 우리 연세로 여든.
◀ 최불암 배우 ▶
여든 둘인가요? 쓸 때 없이 나이만 먹었습니다.
◀ 앵커 ▶
어떤 예술 인생, 앞으로…
◀ 최불암 배우 ▶
저는 제 인생은 글쎄요. 어떤 인물을 만들까. 스쳐 지나가는데 저는 제 자신이 어떻게 만든다는 것보다도 훌륭한 사람을 봐서 본받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큽니다. 그리고 하여튼 족적을 많이 남겨서 뒤에 오는 후배들이 거기로 다 쫓아오도록, 편안하게 오도록 하는 생각을, 하여튼 김구 선생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이분이 부강한 나라를 만들고 싶다. 부라는 것은 그냥 먹고 살만하면 되지. 그리고 강이라는 것을 외세의 침입을 막을 수 있으면 된다. 오로지.
◀ 앵커 ▶
문화.
◀ 최불암 배우 ▶
문화, 아주 강한 문화국을 만들어서 문화의 힘으로 자신도 물론이고 또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전달해 주는 그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제가 더듬어서 기억하고 몸에 새기려고 노력하죠.
◀ 앵커 ▶
선생님 얼마 전까지만 해도 꽤 됐죠, 최불암 시리즈라고 농담 많이 하시고.
◀ 최불암 배우 ▶
그렇죠.
◀ 앵커 ▶
요새는 또 무슨 게임 광고를… 아직까지도 상업적으로나 화제성 면에서나 굉장한, 이런 말씀 좀 그렇지만 상품 가치를 가지고 계신 거 같습니다. 그게 어디에서?
◀ 최불암 배우 ▶
아이들이나 청소년이 게임을 많이 하죠. 저희 아이들도 하는 거를 제가 봤습니다만 그런데 이게 외국 문화가 잠식해서 자꾸 우리 게임을 이겨버린다고 해요. 그런데 그 전에 왔을 때는 내가 아이들하고 무슨 게임을 해. 내가 뭘 어떻게 알아. 나는 도저히 파악을 못 했는데 그 말에 아, 그래? 그러고는 깜짝 놀랐어요. 이것이 정부 정책 사업이기도 하고 이것이 IT 산업의 가장 큰 베이직이 될 만한 일이니까. 그런데 외국에서 들어오는 이 게임 때문에 우리 것이 없어진다는 뭐 이런 위험성을 가지고 얘기하기 때문에. 그래? 그러면 내 힘으로 막을 수 있나 했더니 가서 많이 재미있게 시리즈처럼 재미있게 해 주면 된다. 그래서 좋다. 하자 그래서 실현된 겁니다.
◀ 앵커 ▶
그런데 최 선생님, 어느 부분 때문에. 예를 들어서 옛날에 약간 유머러스한 최불암 시리즈도 나오고. 이게 어느 부분이라고 보세요, 본인께서는?
◀ 최불암 배우 ▶
글쎄요, 그게 참 파악이 힘든데요. 저는.
◀ 앵커 ▶
굉장히 근엄하시고 언뜻 보면.
◀ 최불암 배우 ▶
아니에요, 그렇지도 않아요. 저를 보면 재미있는 모양이에요. 대학 교수가, 그 양반이 나한테 오더니 학교에서 서울대학인데, 서울대학이었어요. 학교에서 네 이야기를 한다고 해요. 내 얘기가 어떤 얘기인데? 그랬더니 최불암 시리즈라고, 나온다고. 그래? 그거 무슨, 내가 학생들 입에 오를 일이 있나 그랬는데 나중에 구체적으로 알아보니까 나중에 내가 선임되고 그랬을 때. 그때는 테트리스, 막 이런 거 나올 때. 그래서 그것도 받아 보고 그랬는데 인쇄소가 아니라 출판사에서 찾아왔어. 그거를 책을 내겠다고 해요. 그게 어떤 얘기인데?
◀ 앵커 ▶
그때 보셨습니까?
◀ 최불암 배우 ▶
그때 보니까 재미있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하고 좀 야하기도 하고 그래요. 그런데 이것도 청소년들이 많이 볼 만화 같아요. 만화가 아니라 책 같아요. 그래서 그래, 학교에서 말 안 듣고 이런 놈들 재미있게 교육 될 소지가 있겠다, 그래서 하시오. 초상권, 성명권 이거 다 가져가서 해라.
◀ 앵커 ▶
모든 판단의 중심에 아이들이.
◀ 최불암 배우 ▶
글쎄 말이야, 왜 그런지는 저도 잘 모르지만 그렇게 갔습니다.
◀ 앵커 ▶
선생님, 시간은 다 됐는데요. 마지막으로 한국에 있는 한국 음식은 전문가로서 섭렵하고 계신데 어느 음식이 가장 맞으십니까? 한국 음식.
◀ 최불암 배우 ▶
저는 전부 다 맞있죠. 다, 지역적 특성에 따라서 또 식재료에 따라서 다른 맛이 나오고 하는데요. 잘 안 먹어서 그러는지, 제가 금강산에 갔습니다. 한 5, 6년 됐죠. 가는데 산기슭 밑에 무슨 동네에 와서 식사를 하는데 뚝배기에 거의 반을 된장을 깔고. 그다음에 오이, 고추, 가지, 이런 걸 이렇게 세로로 썰어서 거기에 꽂았어요, 이렇게 쭉. 그리고 밥에 찐 모양이에요. 그런데 그거를 된장에 찍었던 거를 찍어서 이렇게 먹는데 이게 한국이기는 한국이구나 하고 처음 느꼈어요. 이것이 우리 대한민국, 한국인의 정체성이 여기 모두 모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