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난장판이 벌어지기 2시간 전, 인근 지하철역에선 조합원들을 총회장으로 실어나를 승합차가 운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시각 또 다른 역에선 정체불명의 관광버스 2대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40명가량 태운 이 버스도, 총회장으로 향합니다.
″(지역주택 조합원 아니세요?)″
″조합원 아냐, 아니야.″
″(조합원도 아닌데 여기 왜 오신 거예요?)″
″아니, 한 번 와 보라고 그러니까 와 본 거지.″
조합원이 아니라던 이 남성, 총회장에는 버젓이 나타납니다.
현장에서 만난 또 다른 남성은 버스를 타면 일당을 쳐준대서 왔다고 털어놓습니다.
[김 모 씨]
″15만 원 용돈 준대서 그냥 왔습니다. 참가회비 명목으로 15만 원 준다 그래서.″
이 지역주택조합에서 1,500세대 규모 아파트를 짓겠다는 부지입니다.
수도권 아파트를 1억 원대에 마련할 수 있다며 조합원을 모집한 지 어느새 8년째, 그런데 아직 첫 삽도 못 뜨고 있습니다.
갈등의 배경이 된 ′가짜 조합원′ 논란은 사실일까.
취재진은 이 조합 실무를 맡은 업무대행사 회장의 녹취를 입수했습니다.
느닷없이 ′돼지머리′가 등장합니다.
[녹취록(2020년 3월 25일)☎]
[정 모 씨 (지역주택조합 업무대행사 회장)/[조합 관계자]
″돼지머리′ 하는 데 돈을, 뭐 우리 회사 돈을 먼저 줬어요. 조합원 최종 수는 1,300명 유지를 할 거예요.″
″(자신 있으세요?)″
″그럼요. 그거는 타짜예요, 제가″
현재 3백 명 수준인 ′돼지머리′를 5백50명까지 늘리겠다고 장담합니다.
[녹취록(2020년 3월 25일)☎]
[정 모 씨 (지역주택조합 업무대행사 회장)]
″우리가 더 써가지고 가게 되면 전부 한, 550명인데, 돼지머리 써가지고 사기꾼이라고 얘기하시면 일단 안 되고...″
몸통 없이 머리만 있는 걸 빗댄 속칭 ′돼지머리′.
돈 주고 이름만 빌려 조작해낸 ′가짜 조합원′을 가리키는 겁니다.
[김극성 조합원 가족]
″머리만 빌려달라 해갖고 하는 게 그게 ′돼지머리′예요. 분양판에서 하는 속된 말이에요.″
″(왜 돼지머리라고 그래요?)″
″얼굴만, 이름만 있으니까 돈은 아무것도 안 냈으니까.″
이 업무대행사의 내부 문건을 보면, ′돼지머리′ 1명을 데려오면 많게는 1백만 원씩, 모집책들에게 모두 2억 7천만 원을 지급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취재진이 만난 이 가짜 조합원들은 조합 일은 알지도 못한다고 털어놓습니다.
[박 모 씨 (가짜 조합원)]
″술 먹다 그냥 뭐 얼떨결에 조합원 만드는데 그거 좀 해달라고..″
[김 모 씨 (가짜 조합원)]
″옛날부터 돈 내고 하는 건 안 하거든.″
″(어디인지는 아세요?)″
″몰라. 가본 적도 없고.″
심지어 조합의 예전 감사마저 ′돼지머리′ 조합원이었습니다.
[백 모 씨 (가짜 조합원 / 전 조합 감사)]
″(어르신이 감사도 하셨잖아요. 감사?)″
″감사는 얘(업무대행사 회장)가 그냥 넣더라고 거기다가. 에이, 난 그런 거 머리 쓰는 것, 내 나이가 먹어서 미쳤다고 그걸 해?″
업무대행사가 돈까지 줘가며 ′돼지머리′를 모은 이유, 먼저 조합원 숫자를 부풀려 사업이 잘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라고 고백합니다.
[녹취록(2020년 3월 25일)☎]
[정 모 씨 (지역주택조합 업무대행사 회장)]
″(지역주택조합을) 아무리 광고해도 믿지를 안 해. 착공 들어갈지 안 들어갈지 모르는데 내가 (계약금) 3천만원 넣겠냐? 안 넣는다고.″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돼지머리′로 확보한 조합원 수만큼 표를 그대로 가져가 조합을 맘대로 휘두를 수 있습니다.
[녹취록(2020년 5월 9일☎)]
[정 모 씨 (지역주택조합 업무대행사 회장])
″(돼지머리) 명단을 내가 가지고 있고, 서면 결의는 우리가 만들 수 있으니까. 돼지머리 하는데 그거는 비밀로 해주셔야 돼. ″
[조합원 A]
″(당연하죠)″
[조합원 B]
″그럼 집행부 다 교체할 수 있다는 얘기죠?″
″(예)″
논란이 된 지난달 총회에선 실제로 새 조합장이 선출됐습니다.
녹취 내용 그대로 조합 집행부가 바뀐 겁니다.
신임 조합장은 업무대행사 정 회장에게 맞장구를 치며 대화하던 바로 그 조합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 조합장은 사업이 지연되면 한 달 이자만 3억 원 씩 나간다면서, ′돼지머리는 고마운 존재′라고 주장했습니다.
[최 모 씨 / 신임 조합장]
″착한 돼지 갖고 잡으면 뭐해.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변 모 씨 /조합 관계자]
″사람한테 산 사람한테 진상해 준다는 뜻이 돼지머리라는 거.″
(몸통 없이?)
″네, 몸통 없이.″
″(그 산 사람은 진짜 조합원인 거예요?)″
″네. 그러니까 그걸 죽여 갖고 우리 산 사람을 살리는 거죠.″
′돼지머리′를 동원한 업무대행사 측은 이전 조합 집행부로부터 100억 원을 지급받기로 해 논란은 더 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