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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인
[바로간다] 노인을 위한 은행은 없다‥"디지털 지점이 겁나요"
입력 | 2021-12-16 20:25 수정 | 2021-12-16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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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
바로간다, 인권사회팀 정혜인 기자입니다.
추운 날씨지만 이곳 신한은행 본점 앞에는 어르신들이 나와있습니다.
어르신들의 요구는 한 가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 있는 은행 지점을, 디지털지점으로 바꾸지 말아 달라는 겁니다.
어르신들은 디지털지점이 되면, 입출금 같은 간단한 일조차 보기 어려워질 거라 우려하고 있는데요.
왜 어르신들이 두려워하는 건지, 어르신들과 함께 이미 설치된 디지털지점을 바로 찾아가봤습니다.
◀ 리포트 ▶
83살 한난수 할머니와 함께 계좌를 만들러 가까운 은행 지점을 찾아갔습니다.
안내 직원 1명 뿐인 디지털지점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디지털 데스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직원과 얼굴을 맞대는 대신, 화면 속 은행원과 원격으로 상담합니다.
[한난수/83살]
″돋보기가 없어서 이 글씨가 안 보여요.″
서명을 입력할 차례.
왼쪽에 이름을 쓰고 오른쪽에 서명하는 건데, 실수로 왼쪽에 서명을 했습니다.
″고객님 여기요 (왼쪽에) 성함을 써주셔야 해요. 한(서명)이 아니라 성함을… <아…>″
잘 알아듣지 못해 3번이나 잘못된 곳에 서명을 했고 기자가 알려주고서야 바로 잡았습니다.
″잘 안되네…″
결국 계좌하나 만드는데 20분 넘게 걸렸습니다.
″얼른 얼른 알아들어야 되는데, 지금 아무튼 뭐든지 낯설죠. 우리들도 막 속상해요.″
무인 주문대 앞에 선 82살 김태하 할아버지.
화면을 눌러 음식을 고르는 게 어색합니다.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카드) 빼내주세요?″
음식을 고르자 결제가 말썽입니다.
″<카드를 투입구에 끝까지 밀어 넣어주십시오.> 이거 끝까지 밀어 넣었는데, 왜 자꾸만 끝까지 밀어 넣으라고 그래?″
몇 번의 실패 끝에 ′찰칵′, 카드가 제대로 꽂혔습니다.
[김태하/82살]
″그런 거 익숙하지가 않아. 그냥 말로다 ′냉면이요, 불고기′로 시키면 간단한데…″
커피를 마시는 것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주문하기를 눌러주세요> 주문? 뭘 눌러? 뭘? 주문을 누르라고 그래?″
여러 잔을 시키려는데, 추가가 안 됩니다.
″더 안 찍혀, 왜? 두 잔이라고 나와야 하는데… <여기 플러스 누르면 될 것 같은데요?> 그래? 아 되네~″
부지런히 걸어가는 70대 할머니,
5분 거리 은행 지점이 폐쇄된 뒤 횡단보도를 5번이나 건너 20분을 가야 합니다.
[장거리 은행고객]
″여름이나 겨울에는 추워서 더워서 나쁘죠. 오늘은 비가 와서 그런지 무릎이 아프네요.″
그런데 고생스럽게 먼 길을 찾아온 이유는 스마트폰 은행 앱을 설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뭐 인증을 하라 그러고, 번호가 자꾸 틀렸다고 그러고… 은행 가서 해 달라 그러면 되겠다 싶어가지고 왔어요.″
상대와 얼굴을 맞대는 게 익숙한 어르신들은 차가운 기계 화면이 낯섭니다.
[김태하/82살]
″사람이 있으면 뭐하다가 모르면 물어 라도 보잖아. 그런 게 없으면 겁나잖아. 뭐, 이체 잘못해서 내 돈이 쑥 빠져나간다든지…″
[장영자/77살]
″나는 카드로는 안 써요. 내가 그냥 현찰 박치기지. 현찰로 하지.″
2015년 4천 3백여 곳이던 5대 은행 점포수는 이제 3천 3백여 곳.
무려 1천 개가 줄었습니다.
점원 없는 무인 편의점이 천 개가 넘었고 무인 판매대는 올해 국내에서 3만대나 팔려나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난수/83살]
″(잘 안 되면) ′어떡하지 내가 이러다가 무너지나′ 이런 두려움이 생겨요. 내가 나이 먹어보니까 그런 거에 압박감을 느껴요.″
변화는 어쩔 수 없다해도, 금융서비스 같이 공공성이 강한 분야에선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강형구/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
″적응하기가 어려운 이런 금융층이 있습니다. 찾아가서 은행 업무를 도와주든지…. 적극적으로 금융 교육을 하든지…″
34년간 자리를 지킨 지점, 창구 직원들이 기계로 바뀐다는 소식,
혹시 은행 일 보기 어려워질까 겁이 나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한 울 거리로 나섰습니다.
[권성회/82살]
″우리 보고 (모두 디지털로) 하라면 하겠습니까? 참 어려운 일이에요. 34년간 동고동락하다가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그런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바로간다, 정혜인입니다.
영상취재: 허원철 / 영상편집: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