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스크손하늘, 지윤수

[집중취재M] 강남 한복판 '정체불명' 병원‥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입력 | 2022-04-01 20:27   수정 | 2022-04-01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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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서울 강남 한복판, 주민들조차 정체를 모르던 한 병원이 최근 갑자기 문을 닫고는, 원장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이 병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저희가 취재를 해봤더니, 원장이 여성들에게 수면 마취제를 투약해 왔고, 이 중에 여러 명을 성폭행한 정황도 확인돼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먼저 손하늘 기자가 전해 드리겠습니다.

◀ 리포트 ▶

′로데오거리′로 불리는 서울 압구정의 번화가입니다.

각종 음식점과 술집이 들어선 골목 사이로 병원 간판이 보입니다.

흰색 바탕에 파란색 꽃이 그려진 간판, 밑에는 빨간색 글씨로 이름만 적혀 있습니다.

전화번호도, 진료과목도 없습니다.

흔한 홍보용 입간판도 없고, 병원이 있는 건물인데 약국은 보이지 않습니다.

인터넷에는 병원 전화번호가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걸어봤더니 먹통입니다.

[안내 음성]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인터넷에는 정신건강의학과로 소개했지만 막상 관할 보건소에는 내과라고 진료과목을 신고한 이 병원.

이 곳에서 십 년 가량 영업해왔는데도 주변에선 정체를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인근 상인]
″그냥 의원, 진짜 ′의원′이라고만 되어 있어서‥ <무슨 과를 진료한다?> 그런 게 없었어요. 아예 정체를 몰라요.″

병원으로 올라가 봤습니다.

철제 출입문은 굳게 잠겨 있습니다.

″실례합니다.″

응답 없는 출입문 옆에는 포장용 종이 상자만 잔뜩 쌓여 있습니다.

″원장이 진료를 보던 병원은 지금은 이렇게 병원 이름만 흔적이 남겨져 있고 다른 업체가 사무실로 쓰고 있습니다.″

확인해 보니 병원은 석 달 전쯤 폐업했고, 그 자리에 의류 쇼핑몰 사무실이 들어와 있었던 겁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
″그 분 나가셨어요. 이제 그만 두셨어요, 병원은. 사무실로 바뀌었어요. 미국으로 (간다는) 그런 말씀은 있으셨는데‥″

십여 년을 운영하던 병원을 갑자기 닫고 외국에 나가려 했다는 건데, 단서를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인근 상인]
″(원장님이) 안 좋게 되어서 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피해자 분들이 다수가 모여서‥″

MBC 취재 결과, 52살 남성인 병원장 강 모씨는 사전 예약제로 비밀리에 병원을 운영하면서,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전신마취 유도제를 투약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특히 일부 여성 환자들을 상대로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성폭행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경찰이 현재까지 파악한 피해자는 최소 4명.

경찰은 원장 강 씨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병원도 압수수색해 진료기록부 등을 토대로 추가 범죄 여부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강 씨는 ″합의 하에 성관계를 했다″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취재진은 병원 전화번호로 연락을 시도하고 원장과 연락이 닿는다는 지인을 통해서도 해명을 요구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습니다.

MBC뉴스 손하늘입니다.

영상취재: 윤병순/영상편집: 고무근

◀ 앵커 ▶

오늘 이 병원 원장에 대한 영장심사가 이뤄졌고, 잠시 뒤면 구속 여부가 결정되는데요.

이 원장은 3년 전에도 전신 마취 유도제를 과다 투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논란이 일자, 간판만 바꿔서 영업을 계속 하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지윤수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오늘 오전, 서울 서부지방법원.

회색 정장을 입고 고개를 숙인 원장 강 씨가 수사관들에게 팔을 잡힌 채 법원을 나섭니다.

전신마취 유도제, ′에토미데이트′를 여성 환자들에게 치료가 아닌 목적으로 상습 투여하고, 일부는 성폭행한 혐의로 영장이 청구돼 법원의 실질심사를 받은 겁니다.

[강모 씨]
″<성폭행 혐의 인정하십니까> … <에토미데이트 왜 투여하신 거예요?> … <피해자들이 여러 명인데 죄송한 마음 안 드세요?> … ″

하지만 끝까지 답은 없었습니다.

강 씨는 지난 2019년에도 같은 전신마취 유도제, ′에토미데이트′를 원래 용도가 아닌 수면제 목적 등으로 상습 투여한 정황이 알려져 논란을 빚었습니다.

당시 강 씨는 영업을 중단하는 듯했지만, 불과 열흘 만에 병원 간판만 지금의 이름으로 바꿔 달아 영업을 재개했습니다.

또 진료과목을 피부과에서 내과로 변경하고, 같은 방식으로 약물 투여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서울 강남구청 관계자]
″2019년 7월 10일날 의료기관 명칭변경 사항이 있어서. 내과로 (바꿔) 등록돼 있다고 하네요.″

강 씨는 또 관할 보건소 등의 규제를 피하려고, 효과가 비슷한 ′프로포폴′ 대신 ′에토미데이트′를 써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둘 다 수면 마취 효과가 있지만 프로포폴의 경우는 마약류로 분류돼 있어, 보건당국이 유통 이력은 물론 폐기 용량까지 점검하기 때문입니다.

[김성협/건국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프로포폴을 찾던 사람들이 대안을 찾은 게 에토미데이트인 거죠. 환자가 잠을 자게 되고 호흡을 잃게 되는 약 중에서 규제를 안 받는 유일한 약물일 수 있거든요.″

대검찰청은 앞서 2016년, 보건당국과 협의해 ′에토미데이트′를 마약류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고, 그 사이 ′에토미데이트′ 수입량은 해마다 급증하고 있습니다.

MBC뉴스 지윤수입니다.

영상취재: 위동원/영상편집: 조기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