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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승
[집중취재M] 파친코의 '자이니치'‥'조센진'이라고 돌 맞고
입력 | 2022-04-18 20:23 수정 | 2022-04-1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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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드라마를 본 세계 시청자들은 가면 뒤의 일본을 보았다, 정말 실화냐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일본은 손사래를 쳤지만, 실제 재일조선인들은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자이니치′라고 불리며 혹독한 가난으로 배를 곯고, 천대와 조롱을 받으며 삶을 버텨왔습니다.
이들은 특별히 오사카에 많이 터를 잡았고 일본인들이 손대지 않았던 일들만 하며 돈을 벌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파친코였습니다.
고현승 특파원이 오사카에 다녀왔습니다.
◀ 리포트 ▶
1928년 경남 고성 산골에서 태어난 강분도 할머니.
일본으로 징용된 정혼자 가족을 따라 16살 때 시모노세키 연락선을 탔습니다.
17살 남편은 7남매의 장남, 어린 시동생들을 돌보는 집안일을 시작으로 막노동을 전전하던 남편과 함께 정처 없이 떠돌았습니다.
[강분도(94세, 자이니치 1세)]
″애 낳고 나서 또 어디서 일하러 오라고 해서, (남편은) 이런 도랑에 자갈밭에서 일하고, (나는) 30명분 밥을 했습니다.″
조선인이 모여 살던 오사카에 정착했지만 생계는 막막했고,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습니다.
악착같이 모진 세월을 이겨낸 할머니는 서랍장에 고이 간직해온 한복을 꺼내 보입니다.
[강분도(94세, 자이니치 1세)]
″지금 생각하면 꿈인가 뭣인가 모르겠어요.″
배고프고 서럽던 하루하루는 1세대 자이니치의 공통된 기억입니다.
[김연내(84세, 자이니치 1세)]
″조선사람들은 먹을 것도 없고 일도 없고요. (일본 사람들이) 내버리는 데가 있잖아요. 호박 감자 같은 거 주우러 다녔습니다.″
여기에 2등 시민으로 취급받는 차별도 견뎌야 했습니다.
[임용길(99세, 자이니치 1세)]
″공장에서 내놓은 찹쌀떡이 많이 쉬면 곰팡이가 피는데, 나한테 솔로 깨끗이 털어내라고 시켜놓고도 (조선인에게는) 그래도 안 줘요.″
[오부자(76세, 자이니치 2세)]
″(소학교 때) 책상 같은 이런 나무판으로 머리를 팡팡 때렸어요. 조센징 조센징하면서. 집에 돌아갈 때는 돌을 던졌어요.″
조선인을 위한 일자리는 없었고, 할 수 있는 건 일본인들이 하지 않는 장삿일뿐.
그 중 하나가 구슬치기 파친코였습니다.
[김이태(100세, 자이니치 1세)]
″(해방 후에는)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일이 없으니까. (파친코가) 지금은 시설이 굉장하지만 그때는 조그마한 이런 집에서 했거든요.″
파친코와 함께 당시 자이니치들은 소와 돼지의 내장과 고기를 구워 파는 야키니쿠식당을 많이 차렸는데, 지금도 이곳 오사카 츠루하시에는 많은 업소들이 성업 중입니다.
야키니쿠식당에서 파는 곱창구이 ′호르몬′은 관서지방 방언으로 ′호루 모노′ 즉 ′내버린 것′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일본인들이 먹지않아 버린 내장 부위를 자이니치가 요리로 만든 겁니다.
[오룡오(야키니쿠식당 운영, 자이니치 2세)]
″(내장은) 그때는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것밖에는 쉽게 손에 넣을 수 없었습니다. 돈이 없었으니까.″
이런 모진 세월을 견뎌내며 일제 강점기 이후 일본에 남게 된 자이니치는 현재 약 80만 명.
98%가 남한 출신이지만 귀화가 늘면서 한국 국적자는 43만 명, 남과 북 어느 쪽도 택하지 않은 조선적은 2만 6천 명으로 줄었습니다.
[오룡오(자이니치 2세)]
″본명과는 다른 별도의 ′통명′, 일본 이름 같은 이름을 쓰는 자이니치가 많았습니다. 한국인이라는 게 드러나는 게 싫으니까. 차별받는 게 싫으니까.″
정체성을 지키려고 민족단체도 만들고 학교도 세웠지만 남북으로 갈라진 고국은 별 관심이 없었고, 자이니치는 3세에서 4세로 80년이 되도록 대물림된 상처를 보듬은 채 우리 민족의 이방인으로 머물러있습니다.
[김용문(자이니치 3세)]
″(자이니치는)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에 가면 일본인 취급을 받아 한국인도 아닌, 이쪽도 저쪽도 아닌 어중간한 존재입니다.″
오사카에서 MBC뉴스 고현승입니다.
영상취재: 이장식 김진호(도쿄) / 영상편집: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