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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주혁
과로의 증거도 안 남는다 - 포괄임금제와 억울한 죽음들
입력 | 2022-06-07 20:13 수정 | 2022-06-07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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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어제 한국 사회의 과로를 부추기는 주범, 포괄임금제 문제를 보도해드렸는데요.
우리나라 대기업 10곳 중 6곳이, 사무직들에게 이 포괄임금제를 적용합니다.
포괄임금제를 하면 일주일에 몇 시간을 일하는지 따지지 않는데, 이게 문제입니다.
일하다 쓰러지더라도 ′내가 과중한 노동을 했다′는 중요한 증거가 남지 않기 때문에 산재도 인정받지 못하는 억울한 죽음들을 만드는 겁니다.
차주혁 기자가 보도합니다.
◀ 리포트 ▶
2020년 4월, 마흔여섯 살 이동주 씨가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2주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인은 뇌동맥류 파열이었습니다.
[故 이동주 씨 부인]
″연휴라든지 휴가라든지 뭐 명절이라든지는 마음 놓고 놀아본 적은 없던 것 같아요. 아이들 데리고 하다못해 캠핑을 가더라도 노트북을 가지고 가서 업무를 했을 정도니까요.″
이 씨는 IT 기업의 데이터센터 책임자였습니다.
24시간 서버를 관리했습니다.
유족들은 산재를 신청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과로사로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회사에 기록된 이 씨의 3개월 평균 노동시간은 일주일에 44시간.
만성 과로의 최소 기준인 주52시간보다 짧았기 때문입니다.
[근로복지공단 담당자]
″자료를 보면 근무를 오버한 내용이 하나도 없어요. 이 자료에.″
이 씨의 노동시간은 왜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을까?
포괄임금제 때문입니다.
이 씨는 휴일과 연장 노동 수당을 모두 연봉에 미리 포함하는 근로계약을 맺었습니다.
심지어 회사 대표도 ″이 씨가 야간과 휴일에도 응급대기와 조치를 해야 해 건강에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진술했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故 이동주 씨 부인]
″근로계약서 상에도 근무 시간은 명시되어 있지만 근로 형태는 항시 대기라고 되어 있거든요. 그러면 24시간 대기라는 업무거든요.″
포괄임금제는 과로와 공짜 노동의 주범입니다.
MBC가 지난 1월 보도한 현대차 디자이너 故 이찬희 씨도 포괄임금제로 일했습니다.
이 씨 역시 공식 노동시간이 산재 기준보다 적다는 이유로, 산재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실제로는 얼마나 일했을까?
현대차가 MBC 보도 이후 외부 전문가들에게 의뢰한 진상조사 보고서.
이정식 현 고용노동부 장관도 교수 신분으로 참여했습니다.
컴퓨터 포렌식을 통해 휴일에 출근해 회사에서 밤을 샌 것으로 확인됐지만, 이 씨가 직접 입력한 근무기록에 이 시간은 빠져 있습니다.
[현대차 남양연구소 직원]
″벌써 딱 ′야근, 특근 최대한 줄여주세요′ 그러면 실제로 그렇게 일 했어도 그렇게 찍기 힘들죠. 누가 거기서 ′나 야근′ 이러고 찍겠어요.″
포괄임금제를 하고 있는 많은 대기업들이 다 비슷하다고 합니다.
[현대제철 직원]
″신청 자체를 거의 안 하는, 못하는 분위기인 거죠. ′시간외 근무를 올리지 마라′ 아니면 ′이런 걸 왜 올려? 그냥 고정OT(초과근무수당) 받잖아.′″
이렇게 노동시간이 누락되면, 과로를 증명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증거가 사라집니다.
[권호현/변호사]
″엄밀하게 근태 기록을, 출퇴근 기록을 안 하게 되면서 실제로 재해신청을 할 때 그거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져 버리죠.″
고용노동부 스스로도 포괄임금제가 ″장시간 노동을 고착화하고, 실제 일한 만큼 임금을 못 받게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새 정부는 오히려 이런 식의 유연한 노동을 확대하겠다는 걸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김종진/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사실은 국가가 지난 수십 년 동안 관행적으로 이뤄진 포괄임금제 법률 위반을 방치한 겁니다. 가장 먼저 해야될 게 포괄임금제 폐지, 그리고 법률적 근로감독이 필요하다고 보죠.″
MBC뉴스 차주혁입니다.
영상편집 : 유다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