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스크이지호

[현장 36.5] 72년의 잊지 못할 그리움, 여전히 남은 이산가족

입력 | 2022-08-20 20:25   수정 | 2022-08-20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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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꼭 4년 전 오늘, 금강산에서 남북의 이산가족들이 눈물의 상봉을 했었는데요.

그 날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의 만남도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상봉을 신청한 13만여 명 중에 이제는 4만 명 정도만 생존해 있는데요.

오늘 현장365에서는 기약 없는 만남을 눈물로 기다리고 있는 이산가족들을 이지호 영상기자가 만나봤습니다.

◀ 리포트 ▶

[2018년 8월 20일 뉴스데스크]
″계단을 통해서 올라오는 가족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습니다. 혈육의 정을 아주 많이 느끼는 그런...″

[김광호/86세/2018 이산가족 상봉자]
″나이가 있으니까 얘도 죽지 않았겠나... 겨우 조카들이나 만나겠지 했는데, 어! 동생이 살아있다는 소식이 오더라고요. (동생이랑) 큰 살구나무에 올라가서 거기서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나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

[김광호/86세/2018 이산가족 상봉자]
″그 말을 했던 거 같아요. 야 참 네가 오래 살아서 참 기쁘다.″

[김광호/86세/2018 이산가족 상봉자]
″마지막 기회를 잡았다. 운이 좋았다고밖에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드는 거죠. 흔들 때 좀 뭉클하더라고. 야 이제 헤어지면 또 언제 만나느냐...″

큰 누님, 둘째 누님, 이건 나, 동생 덕삼이.

[오덕근/87세/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이산가족 상봉도 안 되고 있고 또 시간이 흘러가기 때문에 노인들은 자꾸 돌아가시고. 뭐 우리도 언제 가는지도 모르는데... 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슬프고 비참하죠.″

올해로 아흔셋이 된 오해옥 할머니.

남동생과 헤어진 후 7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불쑥 떠오르는 동생 생각에 속절없는 눈물만 흘립니다.

[오해옥/93세/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오광식이가 동생인데요. ″누나 나 학교 안 갈래″ 그러면 내가 ″가야 해″ 그러면서 내가 업고 다녔던 그 생각이 나고요.″

귀엽기만 하던 동생 오광식 씨도 이미 여든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가 됐습니다.

이제 남매에게 허락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오해옥/93세/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광식아, 잘살고 있겠지? 광식아, 보고 싶구나...이 좋은 세상에 이렇게 남북이 가로막혀 우리 못 보고...너 보고 싶어서 달님한테 물어본단다. 우리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