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스크김상훈

제주 4·3은 재심 중‥70여 년 만에 지운 빨간 줄 "피고인 무죄"

입력 | 2024-04-02 20:37   수정 | 2024-04-02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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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해방 이후 좌우 대립이 극심했던 제주에서는 수많은 주민들이 빨갱이와 폭도로 몰려서 희생이 됐습니다.

정확한 피해 규모조차 알 수 없는 제주 4·3, 내일이면 76년이 되는데요.

제주 주민들은 판결문조차 없는 군사 재판에서 사형에 처해 지거나 감옥으로 보내 졌습니다.

최근 들어서야 4·3 피해자들에 대한 재심이 활발해 졌는데, 70여 년 만에 ′빨갱이′이라는 낙인을 벗게 된 제주 주민들을, 김상훈 기자가 만나고 왔습니다.

◀ 리포트 ▶

1948년, 토벌대는 마을을 불태웠습니다.

오영종 할아버지는 18살이었습니다.

산으로 도망쳐 숨었는데, 이듬해 다리에 총을 맞고 붙잡혔습니다.

난데없이 ′빨갱이′라며 군사재판에 세워졌고, 징역 15년형이 선고됐습니다.

[오영종(94세)/4·3 수형 생존자]
″재판받았을 때는 형기도 모르고 재판 일정도 (모르고)… 트럭으로 가득 실려서 (모르는 데로) 갔어요.″

7년 옥살이 끝에 가석방됐지만, 남은 가족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빨갱이′ 낙인과 경찰의 감시 아래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다 군사재판 70년 만인 2019년, 오 할아버지는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오영종(94세)/4·3 수형 생존자]
″한없이 기쁘지. 지금까지 아무런 죄 없이 살다가, 무죄라고 하니깐 얼마나 기뻐. 그래서 모여서 만세도 부르고‥″

4·3 당시 군사재판을 뒤집은 첫 판결.

이후 정부는 군사재판으로 옥살이를 한 수형자들을, 검찰과 법원이 직권으로 재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11살 나이 가족을 모두 잃은 김축생 씨 자매.

폭도로 몰려 사라진 아버지와 오빠 3명은, 아직도 유해조차 못 찾았습니다.

[김축생(87세)·김신생(91세)/4·3 희생자 유족]
″우리 오빠들 셋 다 죽고, 아버지 다 죽고, 조카들 다 죽고… 이런 집안이 어디 있어요?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저는…″

검찰과 법원은 이들 가족의 재심을 열었고, 자매는 아버지·오빠를 대신해 법정에 섰습니다.

[김축생(87세)/4·3 희생자 유족 (작년 4월)]
″′폭도′라는 말을 들으면 소름이 돋습니다. 저는… 무슨 죄가 있길래, 3살 난 조카들까지 죽여버렸습니까?″

이곳 제주법원 직권 재심 법정인 201호에는 피고인석이 따로 없습니다.

애초에 죄 없는 무고한 희생자들과 그 유족들이 찾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양주호/4·3 희생자 유족(작년 11월)]
″왜 웃드르(중산간) 살았다는 그게 죄가 됩니까? 해안에 살았으면 희생이 안 됐을 것인데… 그것이 어떻게 죄가 되는지…″

[오진원/4·3 희생자 유족 (작년 8월)]
″저희 식구 다섯을 다 죽여버렸습니다. 그때 당시 저는 밥 먹으면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어릴 때라서 (가족들을) 다 죽여버리니까….″

공소장도 판결문도 없는 무법천지 군사재판에선 2천 5백여 명이 유죄였습니다.

이 중 1천 7백여 명이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70년이 지나도록 4·3은 여전히 재심 중입니다.

[강건/4·3 재심 전담재판부 판사(작년 11월)]
″제가 이 사건 기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습니다. 증거가 없습니다. 주문. 피고인들은, 각 무죄.″

MBC뉴스 김상훈입니다.

영상취재: 김준형 / 영상편집: 이화영 / 영상제공: 제주MBC / 음악출처: 윤한 ′4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