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전 총리는 청년 시절, 고문을 받고 끌려간 군사독재 치하의 법정에서도, 목숨을 다 바쳐 민주화가 될 때까지 싸우겠다며, 전두환 일당의 역사적 범죄에 대해 일갈 할 만큼 강단 있는 인물이었죠.
정치에 입문한 이후에도 정곡을 찌르는 그의 언어에는 변함이 없었고, 최근까지도 한국 정치의 주요장면 곳곳엔 그의 전략뿐 아니라 그의 말이 함께 남아있습니다.
장슬기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 리포트 ▶
젊음을 걸고 독재와 싸우던 청년의 언어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故 이해찬/당시 평화민주당 의원 (1989년 12월)]
″이토록 철면피한 전두환의 위증을 그대로 묵인하고서 우리가 어떻게 국민의 대표라고 자처할 수가 있겠습니까?″
기획통, 전략가, 킹메이커.
7선 의원, 40년 정치 이력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그의 ′말′이었습니다.
타고난 언변으로 교육 개혁의 고삐를 당기도 했지만,
[故 이해찬/당시 교육부 장관 (1998년 10월)]
″학부모님들께서도 ′시험 성적 올리기′라는 경쟁적 교육관에서 탈피해서 우리 자녀들이 적성, 흥미, 특기에 따라 개성을 살리고…″
보수 언론을 독재에 부역한 반역자라고 칭하는 등 때로는 뾰족한 칼이 되기도 했습니다.
[故 이해찬/당시 국무총리 (2004년 10월)]
″역사에 반하는 행위를 하고도 회복시키지 않는 것은 역사에 대한 반역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거칠고 선명한 그의 화법은 이른바 ′버럭 해찬′이라는 별명을 낳았습니다.
[홍준표/당시 한나라당 의원 (2006년 2월)]
″정치자금은 얼마 받았습니까?″
[故 이해찬/당시 국무총리 (2006년 2월)]
″여러분들이 자꾸 의혹을 만들려고 안간힘을 쓰시는데, 제가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인신모욕하지 마십시오!″
그의 말은 갈등의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고,
[故 이해찬/당시 국무총리 (2005년 10월)]
″그 당시에 학생들을 탄압하고 빨갱이로 몰고 하던 사람들이 요즘에 와서 이념적인 정체성 문제를 갖고 주장하는 걸 보면서 참 사람이 살면서 참 별꼴 다 본다.″
때로는 파격적이었습니다.
[故 이해찬/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 (2018년 7월)]
″개혁적인 정치가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최소한 20년 정도는 집권할 수 있는 그런 계획을 가져야 된다.″
논쟁의 중심에 설 때면 그의 거침없는 언변이 오히려 비난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故 이해찬/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2020년 7월, 故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
″<고인에 대한 의혹이 불거졌는데, 혹시 여기에 대해서 당 차원에서 대응하실 계획은 있으신가요?> 그건 예의가 아닙니다! 그런 걸 이 자리에서 예의라고 합니까, 그걸! XX 자식 같으니라고…″
고문 후유증으로 몸은 쇠약해졌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그의 열정은 12.3 내란을 계기로 다시 타올랐습니다.
[故 이해찬/당시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2024년 12월)]
″저는 박정희 독재하고도 싸웠고, 전두환 독재하고도 싸웠는데 이 같잖지도 않은 놈하고 싸우려니까 재미가 없습니다. 정말로 같잖지도 않아요.″
마지막까지 나라를 위해 살다 간 그가 남긴 수많은 어록은 이제 대한민국 현대사의 증언으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