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공윤선

[서초동M본부] 남자 손님에 원피스 입힌 유흥주점 결국 '유죄'…'풍속 영업'의 한계는?

입력 | 2020-06-01 11:18   수정 | 2020-06-01 13:32
# ″남자손님들에게 소위 ′커플룩′이라며 원피스 입힌 유흥주점″

2015년 10월, 남자 3명이 청주의 한 유흥업소를 찾았습니다.

먼저 방에 자리를 잡은 남자 손님들.

10분 뒤 3명의 여성 종업원들이 원피스 차림으로 방에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입은 원피스와 비슷한 모양의 여성용 원피스를 한 벌씩 더 들고 있었습니다.

소위 ′커플룩′이라고 해서 남자 손님들에게 갈아 입힐 옷이었습니다.

재질이 얇고 미끄러운 소재의 원피스, 남자가 입더라도 여유 공간이 남을 정도로 사이즈가 크고 헐렁했습니다.

남자 손님 중 2명은 속옷도 벗은 채 원피스를 입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시간 뒤 경찰관들이 유흥주점에 들이닥쳤습니다.

당시 남자 손님들은 여성용 원피스를 입은채 여성 종업원들의 몸을 만지고 있었습니다.

이 일로, 해당 유흥주점은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풍속영업규제에 관한 법률 3조 2항 ′음란행위를 하게 하거나, 이를 알선 또는 제공하는 행위′ 에 해당한단 겁니다.

# 1심 ″유죄″ 2심 ″무죄″ …형사처벌에 해당하는 음란행위란?

1심을 맡은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은 해당 유흥업소의 영업을 ′음란 행위 알선′으로 보고 업주 등에게 벌금형을 선고했습니다.

[1심 판결문 中]
″유흥 주점 손님으로 온 김00 등 3명에게 여성용 원피스를 제공하여 입게 하고 위 여성종업원들로 하여금 그들의 00을 위 손님들이 만지게 하는 방법으로 유흥을 돋우는 접객행위를 하게 함으로써 음란행위를 알선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인 춘천지방법원 제1형사부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1심의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한 겁니다.

재판부는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처벌 가능한 음란행위′ 해석에 좀 더 신중을 가했습니다.

′음란 행위′란 성욕을 자극하거나 흥분 또는 만족시키는 행위로서 일반인의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치고 선량한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음란′이란 개념이 사회와 시대적 변화에 따라 달라지고 개인의 사생활 행복추구권과도 깊게 연관되는 문제로 국가 형벌권이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개입하기엔 적절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대법원 판례 한 가지를 적시했습니다.

형사처벌이 되는 ′음란 행위′에 해당하려면 단순히 일반인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다는 정도를 넘어서서 사회적으로 유해한 영향을 끼칠 위험성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인 방법에 의하여 성적 부위를 노출하거나 성적 행위를 표현한 것으로서, 사회 평균인의 입장에서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였다고 평가될 수 있어야 한다 - (대법원 2009. 2. 26. 선고 2006도3119 판결 참조).

이런 판례를 적용해 볼 때 ′남자 손님에게 원피스를 제공하고, 손님들이 여성 종업원의 신체를 만진 것은 인정되나 손님 스스로 만진 것에 불과하고 ′사회적으로 유해한 영향을 끼칠 위험성이 있다′고 평가 할 정도로 노골적인 방법에 의한 음란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한 겁니다.
# 5년여 만에 ″음란행위 알선이 맞다″

무죄로 뒤집힌 2심 판결에 검사가 불복하면서 해당 유흥업소의 영업 방식은 대법원의 판결까지 받게 됐습니다.

판결은 또 한 번 뒤집어졌습니다.

대법원이 지난 4월 29일, 사건 발생 5년여 만에 원심을 파기하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춘천지방법원에 환송한겁니다.

대법원은 해당 유흥주점의 영업 방식을 좀 더 세세히 살펴 ′음란 행위 알선′에 해당하는 지를 판단했습니다.

먼저 법률에서 허용하는 풍속영업이 기준이 어디까지인지를 따졌습니다.

[식품위생법 시행령 제21조, 제22조]
풍속영업에 해당하는 유흥주점 영업은 유흥종사자를 두거나 유흥시설을 설치할 수 있고 손님이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행위가 허용되는 영업인데, 이때 유흥종사자란 손님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노래 또는 춤으로 손님의 유흥을 돋우는 부녀자를 말한다.

이런 기준에서 봤을 때 여성용 원피스를 비치하고, 손님들에게 이를 갈아입게 한 상태에서 유흥을 돋우게 하는 해당 주점의 영업 방식이 매우 이례적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이를 적극적인 ′알선′ 행위로 판단했습니다.

게다가 손님들이 속옷을 벗고 원피스를 입은점, 방이 폐쇄적인 공간이라는 점, 나아가 경찰 단속이 뒤늦게 이뤄졌다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음란 행위로 나아갈 가능성이 컸다는 점을 들어 풍속규제법 위반이라고 판결했습니다.

# 성적 자기결정권 추구 VS 미풍양속 보존

풍속영업규제법의 적용 범위는 생각보다 넓습니다.

유흥주점 뿐 아니라 비디오방, 노래방, 숙박업, 콜라텍, 무도학원 등이 모두 해당됩니다.

선량한 풍속을 해치거나 청소년의 건전한 육성을 저해하는 행위를 규제해 미풍양속을 보존하기 위해 법을 제정한 건데요.

규제대상이 되는 ′음란 행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가 늘 논란이 됩니다.

너무 과도하게 처벌할 경우 개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 또는 행복 추구권이 부당하게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법원 역시 개인의 성적 결정권 보장과 미풍양속 보존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성인용품점에서 여성 성기 모양의 성생활 보조용품을 전시 판매하는 것과 관련된 판결이 대표적입니다.

2000년 초까지만 해도 대법원은 여성 성기 모양의 남성용 성생활 보조용품에 대해 ″사회통념상 선량한 성적 도의 관념에 반한다″며 음란물로 간주해 풍속영업규제법에 따라 처벌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엔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업주에 대해 지방법원이 ″남성의 성적 흥분이나 만족을 위해 여성 성기를 재현했다는 것만으로 음란물이라고 단정할 수 없으며 개인이 이런 기구를 구매해 활용하는 것은 성적 자기결정권 또는 행복추구권 측면에서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며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경우에 성적 자기결정권이 우선되는 건 아닙니다.

돈을 내면 객실의 TV를 통해 남녀의 성행위가 묘사된 음란 영상을 볼 수 있도록 한 모텔 업주, 처벌 대상일까요?

법원은 해당 업주에게 풍속영업규제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했습니다.

업주측은 해당 영상에 모자이크가 돼 있고, 일반 가정의 성인 채널에서도 볼 수 있는 영상이라는 점을 들어 음란물을 배포 알선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죠.

하지만 재판부는 ″해당 영상이 모자이크가 완벽하게 돼 있지 않고, 적나라하게 성적 부위를 표현하고 있어 ′음란물′에 해당한다″며 ″투숙객이 업주 관여 없이 스스로 음란물을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처벌 대상이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앞서 남자 손님에게 원피스 입히는 행위를 ′적극적′인 음란행위 알선으로 해석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 ′리얼돌 체험방′ 영업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최근 프로축구팀 FC서울 경기에 소위 ′리얼돌′ 을 마치 응원단원인 양 앉혀놨다 큰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지난해 6월 대법원은 ″성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사용을 목적으로 한 성기구의 수입 자체를 금지할 법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며 ′리얼돌′ 수입에 대해 법적 제재가 불가함을 시사했는데요.

이에 따라 전국 주요 도심에는 리얼돌 판매 업소와 체험방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리얼돌 체험방 자체가 신종 사업이라 명확치 않지만, 기존 성인용품점처럼 풍속영업 규제법 대상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리얼돌 체험방′의 영업이 불법인지 여부는 법원에서 가려진 적이 없는데요.

앞으로 이 영업의 불법성 여부를 법원이 판단해야 할 때가 온다면 어떤 기준에서, 어떤 판결이 내려질 지도 관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