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소련의 아프간 침공 이래로 미국이 아프간 문제를 다룰 때는 파키스탄이 함께 했습니다.
미소 냉전 시기인 당시, 미국은 자신들이 베트남에서 그랬던 것처럼 소련을 아프간에서 수렁에 빠뜨리려고 소련과 무장투쟁을 벌이는 무자헤딘(아프간 무장 게릴라 조직)에게 파키스탄을 통해 무기와 자금을 지원했죠.
지리적으로도 내륙국가인 아프간으로의 보급은 해상으로부터 파키스탄을 거쳐 이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프간 아래, 파키스탄 왼쪽은 미국의 적성국인 이란이고, 위쪽으로는 우즈벡, 타지키스탄 등이 아프간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미국으로선 파키스탄이 아프간으로의 유일한 통로인 셈이죠.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파키스탄의 이중 플레이</strong>
하지만 파키스탄은 실제로는 미국과 탈레반 사이에서 이중 플레이를 해왔습니다.
파키스탄은 왜 그랬을까요?
여기엔 불구대천의 앙숙인 인도와 파키스탄의 대립이 배후에 있습니다.
파키스탄은 다양한 민족이 섞여 있는 이 지역에서 인도가 민족적 갈등을 부채질해서 파키스탄을 분열시키려고 배후에서 끊임없이 획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족 갈등을 이용해 파키스탄과 아프간 접경 지역에서의 반정부 봉기를 부채질해서 결국 파키스탄을 흔들려고 든다는 겁니다.
이 경우 아프간의 내부 상황 관리가 안 된다면 파키스탄은 영토가 위협받는 골치 아픈 상황에 처할 수도 있는 거죠.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미국 도움으로 미국을 물리쳤다″…파키스탄-탈레반의 밀월</strong>
파키스탄은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는 근본주의 무자헤딘, 탈레반이 결국 접경지역 민족주의의 분출을 억누르고 인도의 영향력을 제거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탈레반의 존재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파키스탄은 사실 탈레반을 제외하면 아프간의 다른 여러 세력과는 별다른 연줄이 없을 정도로 탈레반과는 특수 관계에 있습니다.
파키스탄 정보기관인 ISI의 수장이었던 하미드 굴은, 2014년에 9.11 이후 ISI가 어떤 식으로 탈레반을 타격하기 위한 미국의 지원을 받아 탈레반을 도로 지원했는지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미국은 아프간 침공으로 탈레반을 몰아낸 뒤엔, 알카에다를 신경 쓰느라 아프간 이슬람 조직은 당분간 내버려 두기로 결정했는데, 이런 약간의 진공 상태를 ISI가 어떻게 활용했는지도 소상히 털어놨습니다.
그는 ″파키스탄 정보기관 ISI는 미국의 도움으로 소련을 패퇴시켰고, 다시 미국의 도움으로 미국을 이겼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탈레반을 제거하라는 미국의 지원을 힘입어 탈레반이 미국을 공격하는 현실을 정학하게 표현한 거죠.
미국은 인도의 위협에서 비롯된 파키스탄의 이런 복잡한 계산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파키스탄의 이중 플레이를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파키스탄은 탈레반과의 밀월을 몇 년 동안 계속 부인해 왔고요, 미국은 다 알면서도 파키스탄을 막 대할 수는 없는 처지였던 거죠.
미국은 탈레반과 카타르 도하에서 만나 아프간 철군 관련 협상을 했는데, 이때 미국 측과 탈레반 지도자들의 만남을 주선해준 것도 파키스탄 정보부, ISI입니다.
이 합의는, 탈레반이 아프간 정부와 대화한다라든가 아프간 지역이 미국에 대한 테러 공격을 위해 사용되지 않는다는 등의 다소 공허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미국으로선 결국 믿을 수 없는 친구를 믿을 수밖에 없거나, 믿는 척하면서 20년 전쟁을 함께 끌어온 셈이죠.
적과의 동침과도 비슷한 파키스탄과의 이런 기묘한 관계는 미국이 아프간 전쟁에서 패배한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