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4-26 22:46 수정 | 2022-04-26 22:46
- 2001년 <장애인과 지하철을 탑시다>시위와 2021년 12월부터 2022년까지 이어진 <출근길 지하철 탑시다>시위. 두 시위의 방식과 시민들의 반응은 거울처럼 같았다
- 전국의 발달장애인 중 80%는 성인, 발달장애인 가족들이 24시간 지원체계를 원하는 이유는?
26일 밤 PD수첩 <우리가 장애인을 볼 수 없는 이유>에서는 최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일명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로 정치권에서 주목받고 있는 장애인 이동권과 권리예산 문제 및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들의 대해 알아본다. 오이도역 휠체어 리프트 추락사고 이후 21년 동안 그들이 주장하는 문제점과 지금 다시 장애인 권리가 논란의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한 장애인 단체가 2001년 3월 9일 <장애인과 지하철을 탑시다>로 지하철 연착 시위를 벌였다. 2001년 있었던 오이도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 참사 이후 장애인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시위를 벌인 것. 당시 지하철에 탑승해 있던 시민들의 반응은 “(시민들을) 볼모로 이렇게 해도 되는 거예요?”라며 불만을 표했다. 불법 시위라며 욕설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21년의 시간이 지나고 2021년 12월. 장애인 권리예산을 요구하며 시작된 <출근길 지하철 탑시다>는 2022년까지 이어졌다. 장애인 단체의 시위로 지하철이 1시간 이상 연착되기도 했다. 그들의 시위 방식과 시민들의 반응은 2001년 때와 동일했다. 시민들은 자신의 바쁜 출근길을 방해하고 있다고 소리쳤다. 꼴값한다고 비난하거나 욕하는 반응도 같았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장애인들의 요구 사항과 시위 방식,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같았다.
과거 기갑 탱크부대에 근무했었던 이원준 씨. 그는 11년 전 자전거 동호인 라이딩 행사 때 사고로 척수장애 판정을 받았다. 목 아래로는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황. 그는 앞으로 평생 휠체어를 타야 했다. 이씨는 가족의 도움으로 휠체어에 오를 수 있었다. 그는 고개로 조정할 수 있는 ‘특수전동휠체어’를 장만했다. 장애 인식 개선 강사로 활동하는 이씨는 현재 한 사회복지재단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채널의 MC로도 활동하고 있었다. 그가 출근할 때 이용하는 대중교통은 지하철. 그는 사지를 못 쓰기 때문에 지하철 출입구를 통과할 때와 엘리베이터를 부를 때 주변 사람의 도움이 절실하다. 근처에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 혼자 20분 넘게 기다린 때도 있었다. 그는 과거 무서웠던 경험도 전했다. “(열차와 승강장) 간격이 10센티미터가 안 됐을 거예요. 단차 간격 때문에 겁이 나서 지하철 4대를 보냈어요” 세 차례 환승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엘리베이터는 고장 나 있었다. 결국 그는 역무원을 호출해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하철 역사 275개 중 254곳이 장애인이 타인의 도움 없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는 곳. 하지만 엘리베이터 한 대가 고장 났을 뿐인데 이동의 불편함은 바로 드러났다.
뇌병변 1급 장애를 지닌 장애경 씨. 그의 목표는 장애 인식 개선 강사. 수업을 위해 장애인 콜택시를 부르지만, 상담원은 그의 인근에 62명의 대기자가 있다고 알렸다. 장씨의 활동지원사는 “한 시간이 될 수도 있고 20분이 될 수도 있다”며 얼마나 대기하게 될지 예상할 수 없다고 했다. 법정 기준에 장애인 콜택시는 150명당 한 대. 현실은 180명당 한 대로 83.4% 수준. 결국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저상버스를 탈 수 있었다. 휠체어가 탈 수 있는 저상버스는 전국 기준 버스 4대 중 한 대로 아직 부족했다.
지난 13일 박경석 전장연 대표와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가 한 TV 생방송에서 만났다. 당시 이준석 대표는 장애인들이 출근하면서 지하철의 지연이 생기는 부분은 사회적으로 용인된다고 봤다. 하지만 고의로 지하철 문을 막은 건 무조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경석 대표는 집회와 시위는 의도가 있고 그것은 문제를 개선시키기 위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라고 반론했다. ‘전장연’에서 권리예산을 요구하며 시작된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이준석 대표가 SNS에 언급한 건 지난달 25일이었다. “서울 지하철의 수백만 승객이 특정 단체의 인질이 되지 않도록 조치해야 된다는 것” 당 최고위원회에서는 그들의 시위 방식을 비문명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준석 대표가 장애인단체의 시위를 연일 공개적으로 비난하면서 관심에서 멀어지던 논란이 다시 뜨거워졌다.
장애인단체가 계속해서 과격한 시위를 하는 이유는 뭘까? 그들은 지켜지지 않은 약속에 대해 말했다. 과거 이명박 서울시장은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 추락사고 이후 2004년까지 모든 지하철에 승강기를 설치하고 저상버스 등을 도입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후 2015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2022년까지 모든 역에 엘리베이터 설치 및 2025년까지 저상버스 100% 도입 등 같은 약속을 했지만, 두 약속 모두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저상버스 도입률은 2020년 기준 전국 27.8% 서울 57.8%. 2007년부터 2011년까지 31.5%의 저상버스를 도입하겠다던 정부의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5개년 계획>의 수치에 못 미치는 결과를 보였다. 그 사이 2001년부터 지금까지 열여섯 명의 장애인들이 휠체어 리프트 사고로 죽거나 다쳤다. ‘전장연’ 박경석 대표는 시민들이 느낄 출근길의 불편함을 왜 모르겠냐며 말을 전했다. 그는 기획재정부 앞에 갔지만, 사무관 한 명 보지 못하고 천오백만 원 벌금을 받았던 경험을 전했다. 이어서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나기 위해 집 앞에서 기다린 일, 청와대 앞과 국회를 몇 번 오갔지만, 결국 쫓겨났다고 밝혔다.
장애인 딸을 둔 홍윤희 씨. 그는 딸을 위해 장애인 이동권 운동에 뛰어들었다. 출생 이후 암 투병을 해야 했던 딸은 후유증으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홍씨는 딸을 키우며 장애인들이 느낀 불편함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남편은 아이가 어른이 되면 장애인이 살기 좋아질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알아요. 실질적인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그게 가능하다는 걸요. 저절로 좋아진 거는 없어요” 홍씨는 장애인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지도를 제작하고 있다. 자원봉사자들과 다니며 휠체어로 이용 가능한 편의시설들을 조사해 장애인 역세권 지도로 완성했다. 장애인 이동권 외에도 거리엔 많은 장벽이 있었다. 휠체어가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경사로도 장벽 중에 하나였다. 경사가 너무 가팔라 혼자 올라갈 수 없다는 것. 단차로 생기는 턱이 존재하는 경우에도 휠체어 혼자 넘어갈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애인 복지 시스템이 있다 보니 (장애인들이) 움직이는 동선이 있어요. 그런데 그 동선이 우리와 다른 거예요. 비장애인의 일상과 다른 거죠”라고 상황을 분석했다.
스물여섯의 최중증 발달장애인 김제선 씨. 그는 사진 찍는 게 취미다. 약속 시간보다 한두 시간 일찍 출발한 어머니는 김씨를 위해 여러 번 주행 경로를 수정했다. 아들이 원하는 곳을 모두 거쳐야 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목적지는 집에서 15분 거리의 복지관. 김씨는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최중증 발달장애인 낮 활동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었다. 김씨가 복지관에 가면 4시간에서 6시간 어머니에게 개인 시간이 생긴다. 어머니가 유일하게 본인을 위해 병원도 가고 카페를 가거나 밥을 사 먹을 수 있는 휴식 시간. 어머니는 아들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기뻤다. 하지만 프로그램 종료가 두 달 남으면서 어머니는 아들 김씨를 오롯이 떠안아야 하는 것에 힘들어했다. 전국의 발달장애인은 26만 8천여 명. 이중 80%가 성인이지만, 정부의 각종 지원 서비스는 학생 때 집중되고 성인이 되면 가족들의 몫이었다.
부모들의 호소로 2014년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됐지만, 예산 부족으로 제대로 진척되지 못했다. 2018년 4월 발달장애 아이를 둔 부모들은 국가책임제를 촉구하며 삭발식과 삼보일배를 진행했다. 같은 해 문재인 대통령은 발달장애인 가족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을 발표했지만 올해 예산은 그 절반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일상생활이 어려운 장애인을 돕는 활동 보조사 제도. 경중과 중증에 따른 급여 차이가 얼마 없기 때문에 최중증 발달장애인들은 활동 보조사를 구하기 어려웠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예산 규모가 어떤 경제 산업 쪽은 OECD 국가 중에서 거의 1위 수준이지만, 특히 장애인 복지 같은 경우 OECD 국가 평균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지난 19일에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 550여 명이 24시간 지원 대책을 촉구하며 단체 삭발을 진행했다. 그들은 발달장애인과 가족이 여전히 절벽 앞에 서있다고 호소했다. 김종옥 전국 장애인 부모연대 이사는 “고통에 빠져있다는 걸 안다면 10년 후가 아니라 할 수 있는 것부터 말해야”한다고 생각을 밝혔다.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의하면 전체 장애인의 99%가 활동이 자유롭지 못해 집에 머무르는 재가 장애인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장애인을 돌보는 건 고스란히 가족의 몫이었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원하는 건 본인들이 없는 세상에서도 자녀들이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장애인이라서 안타깝고 베풀어야 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인 것이다. 우리 모두 나이가 들면 몸에 불편한 곳이 생기듯 고령화 시대의 간병과 돌봄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장애인이 편해지면 모두가 편해질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