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6-14 22:59 수정 | 2022-08-05 15:29
<b style=″font-family:none;″>- 논문 저자와 전자책 출판, 봉사 단체 설립과 애플리케이션 제작, 미술 전시회까지, 고등학생 한 명이 가진 놀라운 스펙들
- 수천만 원에 논문 대필해주고 장관상까지 만들어준다는 불법적인 해외대학 입시 컨설턴트들</b>
14일 밤 PD수첩 <공정과 허위-아이비리그와 고교생들>에서는 지난 5월 9일 인사 청문회 당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장녀 한씨와 그의 처형 진씨의 자녀들에게 쏟아진 허위 스펙 의혹을 집중 취재했다. 또한 한씨가 다니는 학교는 국내에서 인가받은 인천의 한 국제학교. 국제학교는 해외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대다수다. 그만큼 해외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비인가 국제학교와 입시 컨설턴트 업체가 많이 늘어난 상황. 등록금 혹은 컨설팅 비용으로 수천만 원의 돈이 오가는 그곳에선 일부 불법적인 행위를 하는 곳들도 있었다. 그들은 돈을 받고 학생들의 논문을 대필했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국내 및 국제 대회에서 상을 타게 만들어주겠다고 말한다. 돈으로 허위 스펙을 만들어주는 그들의 실상을 파헤쳐본다.
지난 5월 17일 한동훈 전 검사가 제69대 법무부장관으로 취임했다. 그가 후보자였던 지난 5월 9일 인사 청문회장에서 장녀 한씨와 처형의 조카들에 대한 허위 스펙 논란이 제기됐다. 한 장관의 장녀 한씨는 18살로 고등학교 2학년. 한씨는 3개월간 8개의 논문을 발표한 이력이 있었다. 분야는 의학과 인공지능 및 경제 등으로 다양했다. 그런데 한 신문사에서 그의 한 논문이 케냐 출신의 대필 작가 벤슨에 의해 쓰였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신문사를 통해 벤슨이 보여준 건 자신의 문서 정보와 등록 날짜. 한씨의 논문과 내용이 같았고 논문 등록 날짜는 한씨가 논문을 게재한 날짜보다 20여 일이 빨랐다. 하지만 당시 한 후보자는 벤슨이 해당 신문사에 금전을 요구한 사실을 언급하며 그의 주장을 부인했다. 실제 한씨의 논문을 표절 검사 프로그램에 돌리자 이탈리아, 독일의 원 저자들의 논문을 61.9% 표절한 결과가 나타났다. 이효빈 대학연구윤리협의회 집행이사는 “유사도 검사에서는 보통 20% 미만을” 받는다며 만약 “검사를 해서 20%가 넘으면 (논문에 대해) 동료 심사를 안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한씨는 봉사활동으로 인천시에서 <시의회 의장상>과 <청소년 활동진흥센터장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봉사 시간이 2만 시간에 달하자 의혹이 일었다. 인사 청문회 당시 김영배 국회의원은 2만 시간에 대해 5년 이상 매일 10시간을 봉사 활동해야 가능하다고 밝혔다. PD수첩은 구체적인 봉사기록을 확인하기 위해 해당 기관을 직접 찾아갔다. 그리고 한 센터에서 건네준 2022년도 봉사기록. 이상한 건 서류에 제작진이 방문한 6월 9일 이전의 내용뿐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다음 달 7월까지의 한씨의 서명이 되어있었다. 제작진이 이에 대해 묻자, 센터 관계자는 공문으로 답변하겠다고 했지만, 그는 답변을 보내오지 않았다.
한씨는 미국에 있는 이종사촌들과 함께 시청각 장애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었다고 유튜브에서 소개했다. 이 애플리케이션으로 도움을 요청하면 등록된 봉사자들과 연결돼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 작품은 한씨가 중학생인 2019년 미국의 앱 제작 대회에 출품해 준경승에 진출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런데 애플리케이션 기능 시연 영상에서 등장한 휴대폰 번호. 해당 번호는 실제 애플리케이션을 만든 개발자의 연락처였다. 해당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는 자신이 의뢰를 받았다며 금액 200(만 원) 짜리라고 밝혔다.
지난 5월 16일 세계 최대 온라인 청원 사이트에 ‘한동훈 딸의 스펙 의혹에 대한 미주 한인들의 입장문’이 올라왔다. 미국의 한인 학부모들은 한 장관의 처형 진씨의 자녀 최씨 자매의 의혹에 대해 말했다. 첫째 최윤서(가명)와 둘째 최수진(가명)은 각각 작년과 올해 아이비리그인 펜실베니아대학교 치과 대학에 합격했다. 최씨 자매 스펙에 대해 미주 한인 학부모들은 여러 의혹을 제기했다. 그중 그들을 잘 안다는 어느 학부모. 그는 문자로 동생 최씨의 수상 명단을 보내왔다. 학부모는 “스콜라스틱 글쓰기 경진대회였다며”, “기본 학생 정보를 적게 돼있다”고 했다. 그런데 동생 “최씨는 새너제이 쿠퍼티노의 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도 홈스쿨링을 한다고 적었다”라고 밝혔다. 담임 선생님은 엄마인 진씨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또 자매가 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2019년 미국 물리경시대회 명단에는 소속이 가천대학교로 나와 있었다. 어떻게 된 걸까? 진씨에게 이유를 묻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지만, 진씨는 연락이 닿질 않았다.
최씨 자매는 뉴멕시코 주립대학 이상원 교수의 논문을 표절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었다. 대상 논문은 2021년 최씨 자매와 학생 2명이 함께 쓴 촛불시위를 통해 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들의 논문은 서론 앞부분에 나오는 날짜부터 똑같고 단어 몇 개의 순서만 달랐지 내용은 이상원 교수의 논문과 같았다. 이후 터키의 한 대학교수도 동생 최씨에게 논문을 표절당했다고 밝혔다. 논문 표절률은 75%. 최씨 자매의 스펙 의혹에 논란이 커지자 언니 최윤서 씨는 펜실베니아대학 학생들 채팅방에 입장을 밝혔다. “표절했다는 자신의 논문은 대학 입학 후의 논문”이라며 대학 입학과 관련이 없다는 것. 하지만 반박 주장도 나왔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의 장녀 한씨와 최씨 자매가 만든 온라인 잡지도 다른 기사를 표절했다는 내용. 논문뿐만 아니라, 온라인 잡지의 내용도 다른 기사를 표절해 주기적으로 올렸다는 거였다. 이후 동생 최수진(가명) 씨는 지난 6월 3일에 열린 고등학교 졸업식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PD수첩은 학술 데이터 분석가 강태영 씨와 국내의 국제학교와 외국인학교 학생들의 논문을 분석했다. 강태영 카이스트 경영공학 석사는 “국제학교와 외국인학교의 경우 공저자 소속이 특정 컨설팅 그룹이라고 대놓고 작성된 케이스도 몇 가지” 나왔다고 설명했다. 전국에 교육부로부터 인가받은 국제학교 외에 집계되지 않은 비인가 국제학교가 많다. 비싼 학비가 들어가지만 국제학교마다 내국인 비율이 높았다. 국제학교를 다니면서 해외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입시컨설팅 학원의 도움을 받아 스펙관리를 하고 있었다. 한 입시 컨설팅 학원의 계약서를 확인하니 수강비용은 5,500만 원. 비싼 돈을 투자해 해외대학으로 가는 학생들의 이유는 뭘까? 국내 대학입시에서 논문실적 기재 금지를 발표한 2014년 이후, 논문 수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연구 실적이나 경력 조작으로 우수한 대학에 갈 수 없는 엄정한 입시 사정 시스템이 구축돼 학생 또는 학부모로 하여금 외국 명문 대학에 응시하게 만드는 편법이 변형되고” 있다며 견해를 밝혔다. 김호창 입시 전문가는 “여기는 스펙 제한이 없어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라며 “새로운 스카이캐슬 하나가 만들어진 게 그 시장”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경쟁 사회 속에 어떤 학생은 부모의 지도에 정신없이 스펙을 쌓아가고 어떤 학생은 부모의 지원은 꿈도 못 꾼 채 살아가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공정과 상식을 내세운 현 정부. 우리 사회의 미래인 고등학생들에게 진정한 공정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사회가 우선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