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을 켜봤지만 자세히 봐야 아파트 창문이 겨우 보이고, 숫자가 표시돼있어야 할 승강기 앞 화면도 불이 꺼져 있습니다.
15층 거주자인 아들과 아버지는, 휴대전화 불빛에 의지해 한 층 한 층 걸어 올라갑니다.
<i> ″지금 몇 층이야?″
″4층″ </i>
어제 밤 8시쯤,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5500여 세대 아파트에서 전력 공급이 끊겼습니다.
전기가 끊기면서 때마침 승강기 안에 있던 주민은 16명은 갇힌 상태가 됐습니다.
현장에 도착한 소방구조대원들이 승강기를 수색해 문을 연 뒤에야 이들은 겨우 빠져나왔습니다.
전원이 끊기면서 의료기기를 사용하던 주민들도 큰 불편을 겪었습니다.
집에서 전원을 연결해 인공호흡기를 사용중이던 고령자 2명은 예비배터리 덕분에 큰 사고를 막았습니다.
소방당국은 인공호흡기 사용자들을 위해 발전기를 배치했습니다.
정전 사고가 난지 하루가 지났지만 주민 대부분은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i>[박성영/아파트 주민]
″집에서 TV 보고 있었는데 예고도 없이 정전되더라고. 소방서에서 앵앵거리는 소리하고 경찰 차들이 다니면서 불을 켜고‥전쟁 치르는 것처럼 컴컴하게 암흑이‥시커멓더라고.″
[김영옥/아파트 주민]
″잠이 안 오더라구요. 그냥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불이 없으니까 천지가 깜깜하잖아요. 불안해 노인네들은. 얼굴이 퉁퉁 붓고 아침에 일어나니까 정신이 없더라고요.″ </i>
서울에 한파 특보가 발효된 어젯밤, 때아닌 정전에 난방과 온수 공급도 모두 멈췄습니다.
주민들은 실내에서 외투까지 껴입어야 했습니다.
<i>[아파트 주민]
″아이도 그냥 외투 입고, 양말 신고 슬리퍼 신고. 저도 아예 외투 입고, 어디 피난을 가야 되나 싶어가지고‥″ </i>
갑작스레 발생한 대규모 정전은 발생 후 약 3시간 40분 뒤인 밤 11시 40분쯤 완전히 복구됐습니다.
도심 속 대단지 아파트에 어쩌다 대규모 정전이 발생한 걸까. 원인은 노후 변압기였습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과 한국전력에 따르면 1988년 아파트 준공 이후 바뀐 적이 없는 변압기와 그 안의 ′절연유′, 그러니까 전기 반응을 저지해줘야 하는 기름의 효능이 저하된 것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절연유가 제 기능을 못하니 변압기 안의 고압 장치들이 줄줄이 전기 반응을 일으켰고, 결국 변압기에 구멍까지 뚫리며 고장이 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알고보니, 이 아파트는 변압기를 비롯한 수도·전기 시설 노후화로 지난 2019년에도 한차례 대규모 정전 소동을 겪은 적 있었습니다.
밤 사이 추위에 떨었던 주민들은 노후 시설 전면 교체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전 측은 해당 아파트의 비상 변압기를 통해 지금은 정상적으로 전력을 공급 중이라고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