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PD수첩팀

[PD수첩] 필수 의료분야 전공의 부족과 소아청소년과의 위기

입력 | 2023-01-17 22:50   수정 | 2023-01-17 22:50
- OECD 38개 회원국 중 대한민국 합계 출산율 최하위 기록, 낮은 의료수가와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 이후 소아청소년과의 기피 현상 계속돼
- 지난 5년간 폐업한 소아청소년과만 662곳, 19개의 임상과 중에서 10년 전보다 진료비가 감소한 건 소아청소년과가 유일해

17일 밤 PD수첩 <골든타임, 위기의 소아청소년과>에서는 필수 의료과목인 소아청소년과 의료진 공백이 낳은 소아 의료체계 위기와 수도권으로 장거리 진료를 다니게 된 중증소아환자들의 현실을 취재했다. 2023년 전반기 소아청소년과의 전공의 모집 정원은 207명. 소아청소년과에 지원한 레지던트는 33명으로 15.9%의 가장 낮은 지원율을 보였다. 모집 정원을 채운 수련병원은 전국에 단 두 곳에 불과했다. 박진성 강원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은 ″전국적으로도 전공의 정원을 채운 병원은 한 손으로 꼽는다″라며 아주 큰 위기라고 견해를 밝혔다.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동네 소아과들은 문을 닫기 시작했다. 지난 5년간 폐업한 소아청소년과만 662곳, 7년 넘게 경기도에서 소아청소년과를 운영했던 한 원장도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1년 전 병원 문을 닫았다. 19개의 임상과 중 10년 전보다 진료비가 감소한 건 소아청소년과가 유일했다.
2017년 이대목동병원에서 신생아 사망 사건이 일어났는데, 당시 신생아중환자실을 담당했던 의료진들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았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이 사건이 전공의 지원율 감소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 주장하고 있다. 2018년 101%였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해를 거듭할수록 급격히 감소해 2023년에는 15.9%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낮은 의료 수가와 저출생이라는 구조적 문제 속에서 팬데믹까지 겹치며 소아 의료체계의 위기는 연쇄적으로 진행되었다.
소아청소년과의 세부 진료 과목 중, 소아혈액종양 분야의 현실은 더욱 열악했다. 제작진이 만난 소아암 환아 어머니는 전주에서 서울로, 왕복 8시간 장거리 진료를 다닐 수밖에 없는 어려움을 전했다. 실제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의 조사에 따르면, 2022년 전북 지역의 소아혈액종양전문의는 단 두 명. 집을 떠나 소아암부모회에서 운영하는 쉼터에서 생활하는 어머니는 아이가 아픈 것도 무서웠지만, 집 근처 병원에서 치료가 어렵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항암을 투석할 수가 있는데 응급상황에서 대처할 의사가 없다″고 해서 다음날 바로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 응급실로 오게 됐다고 밝혔다.

해마다 많게는 1,500여 명이 소아암 진단을 받지만, 소아암 완치율은 80%가 넘었다. 신규 환자를 포함해 매년 만여 명이 소아암 치료를 받지만, 이들을 돌볼 의사는 턱없이 부족했다. 소아암 전문의는 전국에 67명뿐, 수도권에 42명이 몰려있고 절반은 10년 내 정년을 앞둔 상황. 소아외과 의사는 숫자가 더 적어서 전국적으로 50여 명에 불과했다. PD수첩팀이 만난 전남대학교병원 소아외과 전문의 이주연 교수, 그녀는 전남지역에서 한 명밖에 없는 소아외과 의사다 보니 365일, 24시간 대기상태라고 설명했다.
PD수첩팀은 17년 전에 비슷한 상황을 먼저 경험한 일본의 사례를 통해 그 대안을 살펴보았다. 후쿠오카 시(市)에 위치한 소아과의원을 운영하는 우에야마 원장, 그는 1965년 아버지가 개원한 소아청소년과를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평균 환자 수는 60명 안팎. 어린이 환자는 진료비 월 500엔을 내면 다음 진료부터 돈이 들지 않았다. 심지어 3세 미만은 무료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우에야마 원장 소아과의원에는 모두 여덟 명의 직원이 있지만, 한국보다 높은 의료수가 덕분에 무리 없이 운영을 할 수 있었다. 성인과 소아 환자의 진찰료가 크게 다르지 않은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환자의 연령과 근무 시간에 따라 가산점이 차등 부여되며 의료 수가체계도 2년마다 현실을 반영해 개정하고 있다. PD수첩팀은 야마나시 현 코후시에 위치한 지역의료센터를 통해 진료 시간이 끝난 뒤 발생할 수 있는 소아 응급환자 대비체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가벼운 질병이나 경증 환자는 초기 응급의료센터에서 담당하고, 입원이 필요한 환자들은 2차 의료기관인 지역병원으로, 고위험군은 대학병원으로 연결되는 방식이었다. 지난 10년간 한 해 평균 2만 2천여 명이 이용한 이곳은 2021년 사업비가 한화로 45억 원. 100% 야마나시현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2022년 12월 보건복지부는 소아청소년과를 비롯한 필수 의료분야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의 손실을 사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이전에 의사들의 반발로 논의가 중단됐던 ′의사 정원 확대′ 계획도 추진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당장의 의료 공백을 메우기엔 충분치 않다는 전문가의 지적도 있었다.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인력 배치는 의대 정원 확대부터 시장에 나올 때까지 12년이 소요된다. 12년 후의 우리나라 의료 환경과 인구 구조가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관해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라는 것. 현장 의료진들은 전담 전문의 지원 등과 같은 즉각적인 정부의 대책을 촉구했으며, 당장 의료 공백을 채워야 앞으로 닥쳐올 심각한 진료 대란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소장은 우리가 회복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은 지났다고 설명했다.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하고 게임이 끝나는 극장골을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이를 키우기 좋은 나라는 아이들이 아파도 되는 나라일 것이다. 마음 놓고 아이를 낳으라고 말하기 전에. 아이들이 아프면 마음 놓고 치료받을 수 있는 나라를 먼저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