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앵커: 추성춘,백지연

이태원 공동 묘지 유관순 열사 묘소 일본인에 의해 훼손[홍순관]

입력 | 1989-02-28   수정 | 1989-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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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공동묘지 유관순 열사 묘소 일본인에 의해 훼손]

● 앵커: 3.1운동 당시 일본 제국주의의 모진 고문으로 숨진 뒤 서울 이태원 공동묘지에 매장됐던 유관순 열사 묘소가 일제에 의해서 파헤쳐졌다는 사실이 기록과 증언으로 밝혀졌습니다.

홍순관 기자가 보도하겠습니다.

● 기자: 유관순 열사의 묘는 왜 없는가?

소박하지만 지극히 당연한 이 의문이 유관순 열사가 순국한지 69년, 3.1운동이 일어난 지 70년 만에 불고 있습니다.

3.1운동 이듬해인 1920년 10월 21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일제의 잔혹한 고문에 못 이겨 순국한 유관순 열사의 시신은 모교인 이화학당 월터 교장의 주선으로 당시 서울 이태원의 공동묘지에 안장됐습니다.

그러나 후에 일제가 이 일대 공동묘지를 군용지로 사용하기 위해 현재의 망우리 공동묘지로 강제 이장을 시키는 과정에서 쓴지 1년도 되지 않은 유관순 열사의 묘를 무연고 묘로 처리해 열사의 묘소를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자취를 찾을 길이 없지만 1920년대 공동묘지였던 이곳 이태원 일대가 참혹했던 유관순 열사의 시신이 묻혀 지고 일인들에 의해 파헤쳐졌던 바로 그 장소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현재 한글학회 이사인 84살 유재한 옹이 3.1운동의 여파가 잠잠해진 1925년부터 유관순 열사의 최후를 밝히기 위해 당시 상황을 목격했던 이화학당의 월터 교장과 졸업생, 그리고 유족들을 차례로 만나 확인한 사실을 적어 놓았다가 최근 이 기록을 내놓으면서 밝혀졌습니다.

● 유재한 옹(한글학회 이사): 이태원 공동묘지에 묻었는데 그러한 후에 오라버니 되는 관옥 씨가 1년 후에 가서 보니까 다 없어지고, 왜 그렇게 없어졌느냐 하니까 군용지로 쓰기 위해서 없앴다.

● 기자: 유관순 열사의 묘소에 관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최근 유관순 열사 기념 사업회 등에서는 유 열사의 유적이 있는 충남 철원군 병천면에 초헌 묘를 써 뒤늦게나마 후대의 무심함을 사죄하고 고혼을 달래기로 했습니다.

MBC뉴스 홍순관입니다.

(홍순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