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앵커: 추성춘,백지연

경찰, 울산 현대중공업 근로자 697명 연행 조사[이선명]

입력 | 1989-03-30   수정 | 1989-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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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울산 현대중공업 근로자 697명 연행 조사]

● 앵커: 경찰은 오늘 새벽 5시 반부터 울산 현대 중공업 농성 현장에 병력을 대량 투입해서 농성 근로자들을 강제 해산 시키고 697명을 연행해서 지금 조사하고 있습니다.

7시간에 걸친 경찰의 강제 해산 작전과 연행 근로자 수사 소식, 특별 취재반의 이선명 기자가 먼저 보도합니다.

● 기자: 유조차와 프로판 가스, 그리고 각종 쇠 구조물 등으로 무장한 채 경찰이 침입할 경우 막대한 인명 피해가 예상되었던 현대 중공업 농성 현장은 오늘 새벽 막상 경찰이 진입하기 이전에 농성 근로자들이 대부분 도피함으로써 커다란 마찰 없이 일단락 졌습니다.

경찰의 강제 해산은 오늘 새벽 5시 경찰 병력 70개 중대 9천여 명을 집중 배치한 뒤 정문에서 밤새 농성을 하던 근로자 가족 50여 명을 해산 시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경찰은 새벽 5시 20분 자진 해산을 촉구하는 안내 방송을 한 뒤 10분 뒤인 5시 30분, 다연발 최루탄 200여 발을 농성장에 쏘아 대며 해산 작전을 펴 30분만에 새벽 6시, 별다른 저항 없이 잔류 농성 근로자 24명을 연행하고서 끝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농성 근로자들은 어제부터 경찰의 강경 진압 소식이 전해지자 경찰이 투입되기 3시간 전인 새벽 1시 40분, 대부분 공장 뒷문을 통해 대피했습니다.

파업 주도 근로자 3백여 명은 새벽 2시쯤 1km쯤 떨어진 독신자 기숙사인 오자불소로 들어가 제 2의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이들 근로자 3백여 명은 아침 7시 반부터 경찰 병력 2천여 명과 대치한 채 5시간 동안 완강히 저항하다가 낮 12시 반 최루탄을 쏘아 대며 강제 해산을 시작한 경찰에 차례로 연행되어 40분 만인 오후 1시쯤 대부분 해산되었습니다.

그러나 해산 과정에서 경찰이 마구 쏜 최루탄으로 인근 주택가에는 최루가스 때문에 몰려 나온 주민들이 근로자와 함께 경찰에 항의하는 투석 시위를 벌였으며 연행과정에서 근로자와 전경 등 모두 54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한편 검찰은 울산 지청 정민수 지청 검사 등 검사 5명으로 수사 전담반을 구성해 놓고 있으며 오자불 숙소에 대한 압수 수색 영장을 발부 받은 경찰은 오늘 하루 농성 장에서 근로자 697명의 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검찰과 경찰은 이 가운데 사전 구속 영장이 발부된 이원구 씨 등 9명을 포함해서 파업핵심 근로자 187명을 모두 구속하기로 했습니다.

무려 109동안 긴 파업의 시간을 보내온 현대 중공업 파업 사태는 경찰의 강제 해산으로 일단락 된 듯 보이지만 예상된 무더기 투석과 경찰의 과잉 진압, 그리고 파업 주모자 조차 놓친 채 제 2의 농성을 유발시킨 허점 등으로 또 다른 파업의 불씨는 계속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MBC뉴스 이선명입니다.

(이선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