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앵커: 추성춘,백지연
천안문 광장 민주화 시위 이후[이현규]
입력 | 1989-07-31 수정 | 1989-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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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광장 민주화 시위 이후]
● 앵커: 북경의 계엄당국이 천안문 사태 유혈진압 이후 처음으로 문화방송 취재팀에게 천안문광장을 비롯한 북경시내에 대한 공개취재를 허용했습니다.
북경당국의 이 같은 취재허용은 중국사태 이후 땅에 떨어진 자신들의 이미지를 회복해 보려는 의도로 생각이 됩니다.
이현규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 특파원: 천안문광장은 이제 민주화의 열기 대신 한여름의 뙤약볕이 넓은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올 여름 북경은 가뭄의 지속으로 무더위가 계속돼 계엄초병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계엄당국은 지난 4일부터 열 명 이상의 단체에 한해 신고를 받고 천안문광장의 입장을 허용했습니다.
관람객들은 기념비 곁으로 다가가 무언가 열심히 찾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총탄자국 등 그날의 흔적들은 지금 모두 지워졌습니다.
광장 바닥엔 희미한 탱크자국과 불탄 흔적만이 여기저기 남아있습니다.
북경시와 계엄군은 또 지난주부터 안정회복을 과시하듯 천안문 등 북경명소에 군인들을 드러내놓고 단체관람까지 지키고 있습니다.
● 장백발(북경시 부시장): 북경시민들은 이제 혼란 대신 안정과 단결을 바라고 있다.
● 특파원: 도심의 주요길목에는 초병들이 배치돼 있으나 시민들은 이들을 별로 의식치 않는 표정입니다.
● 카렌, 한(성진공사 북경소장): 영향이 굉장히 오래 남을 것 같이 생각이 됐는데 지금 가만히 보니까 이 중국인들이 그 뭔가 쉽게 그것을 잊어가면서 생활하는 게 참 저도 놀랍게 보고 있습니다.
● 특파원: 그러나 사건의 후유증은 지금 북경의 호텔과 택시 등 외국인 상대의 전 업계에 심각하게 미쳐 수입이 절반이하까지 뚝 떨어졌으며 30% 이상의 감원 업체도 여럿 생겨났습니다.
때마침 북경의 명소 북해공원에서는 건국 40주년 맞이 등회가 성대하게 막을 열어 밤늦도록 시민들의 발길을 멎게 했지만 자정이 넘자 시내 주요 길목에서는 검문이 시작돼 북경이 계엄 하에 있음을 일깨우게 했습니다.
북경에서 MBC 뉴스 이현규입니다.
(이현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