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앵커: 엄기영,백지연
노벨 평화상 수상자 안드레이 사하로프 사망[박수택]
입력 | 1989-12-15 수정 | 1989-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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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평화상 수상자 안드레이 사하로프 사망]
● 앵커: 소련의 반체제 지성인으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던 안드레이 사하로프박사가 오늘 예순여덟 살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핵물리학의 권위자이면서 소련집권세력에 맞서 유배생활도 마다하지 않고 줄기차게 인권투쟁을 벌였던 사하로프박사의 일대기를 박수택 기자가 더듬어봤습니다.
● 기자: 사하로프는 소련에서 페레스트로이카가 성공하려면 1당 독재를 초기해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자신의 뜻을 지지해서 국민들이 보내온 전보뭉치를 고르바초프 서기장에게 보냈습니다.
안드레이 사하로프박사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가족들은 그가 오늘 새벽 심장질환으로 숨졌다고 밝혔습니다.
사하로프는 예순여덟의 삶을 통해 침묵 속의 영달보다는 양심이 주는 고난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53년 10월 소련은 수소폭탄을 개발해서 세계를 놀라게 합니다.
핵개발에 절대적 기여를 한 사하로프는 소련의 영웅이 됐습니다.
그러나 사하로프는 핵무기의 윤리성을 생각하게 되고 집권층에 핵무장 중지를 간하다가 미움을 삽니다.
그래도 신념을 굽히지 않고 인권운동을 펼치면서 반체제의 길로 들어섭니다.
75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되면서 박해는 더 심해졌습니다.
80년 말에는 모든 권익을 박탈당한 채 고르기에서 격리된 유배생활을 강요당합니다.
85년 고르바초프가 집권하자 이듬해 사하로프는 유배생활 6년을 마치고 모스크바로 돌아옵니다.
사하로프는 고르바초프 노선을 하면서도 개혁을 더 빨리 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지난 4월엔 의회에 진출해서 급진 개혁파를 이끌어왔습니다.
그는 평생 갈망해 온 인권옹호와 개혁의 꽃을 미처 못보고 오늘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하로프는 오늘날 세계가 갈망하는 인류양심의 대변자라고 노벨상위원회는 일찍이 말했습니다.
MBC뉴스 박수택입니다.
(박수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