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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현
[집중취재M] '직업성 암' 직접 입증하라더니…자료는 "공개불가"
입력 | 2021-03-30 20:52 수정 | 2021-03-31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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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내 일터의 환경이 만들어낸 직업성 암, 그동안 철강이나 전자 같은 중화학 공업에서 흔했다면 이제는 다양한 직종에서 직업성 암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암이 노동 환경 탓이라는 걸 노동자 본인이 증명해야 하고 특히, 우리가 모르는 사이 국회는 기업이 작업 환경의 비밀을 아예 공개하지 말라는 법을 통과시키면서 노동자의 접근을 차단 시켰습니다.
김성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지난해 6월, 2년 넘는 투병 끝에 숨진 고등학교 교사 서울 씨.
사망 원인은 ′꼬리뼈 육종′이라는 희귀암이었습니다.
서 씨는 사망 직전 자신의 암이 3D 프린터와 연관됐다는 말을 자주했습니다.
[서정균/故 서울씨 아버지]
″죽기 한 달 전인데 (아들이 블로그에) 글을 올려놓은 걸 보고 내가 엄청 울었다니까요. ′3D 프린터를 할 때 상당히 유해물질이 많이 나온다. 몸에 아주 안 좋다′(는 내용의 글이었어요.)″
6년 동안 3D 프린터를 특성화고와 과학고의 수업교재로 사용했던 서 씨는 좁고 밀폐된 작업실에서 매주 20시간 이상 작업을 했습니다.
한꺼번에 5대를 사용한 날도 많았습니다.
3D 프린터는 플라스틱 등으로 만든 테이프 형태의 필라멘트를 200도 이상 고온에 녹이는 방식으로 입체 조형물을 만듭니다.
그런데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조사 결과 가장 많이 쓰는 두 종류의 필라멘트에서 모두 톨루엔과 에틸벤젠 등 발암물질이 검출됐습니다.
[서정균/고 서울씨 아버지]
″이 프린터가 나쁘다는 걸 그때만 알았어도 못하게 했겠죠. 나는 ′전혀 이거 하고는 관련이 없다′ 그렇게 생각을 했죠.″
서 씨처럼 3D 프린터를 사용한 고교 교사 2명도 모두 육종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2명의 교사와 서씨의 아버지는 지난달 산재를 신청했지만 승인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숩니다.
3D 프린터의 유해 물질이 육종암의 직접 원인이라는 사실이 의학적으로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최민/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3D 프린터를 사용했던 선생님들 사이에서 세 명이나 발생했다는 것이 우연이라고 보기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거든요. (하지만 아직은) 의학적 인과관계가 명확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16미터 높이의 전신주에 위태롭게 매달려 하청 노동자들이 전기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2만2천볼트가 넘는 초고압 전류가 흐르는 전선을 장갑 낀 손으로 만지는 ′직접활선작업′.
지난 30년간 매일 이 작업을 해온 송석채씨는 지난해 B-세포 림프종, 일종의 혈액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송석채/전신주 배전노동자]
″(전선을 만지면) 머리가 쭈뼛쭈뼛 선다고 그런 느낌이거든요. 털이 다 서가지고.. 딴 직업을 가지지 않고 전기만 해왔기 때문에 그걸로 해서 발병이 된 걸로..″
지난 2년 간 치료비로 3천만원을 쓴 송씨는 생계를 위협받고 있습니다.
[송석채/전신주 배전노동자]
″어렵습니다. 솔직히.. 저보다 집 식구가 더 힘들겠죠. 아들, 딸 둘이에요. (아들, 딸이) 알바를 하긴 하는데 그것 가지고서는..″
원청인 한국전력 측은 혈액암과 직접활선작업 사이의 연관성이 의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보상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한국전력 관계자]
″근로복지공단에서 결정하는 사항은 존중을 하겠다.. (하지만) 아직 전자파가 인체 건강에 대해 과학적으로 입증된 건 없어서..″
지난해 직업성 암을 인정해달라는 신청 건수는 487건, 4년 전보다 2.4배나 급증했는데 직종도 암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직업성 암으로 산재가 인정된 경우는 전체 암 환자의 0.07%, 전 세계 암 환자의 4% 정도를 직업성 암 환자로 추산하는 WHO 통계의 50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국내에서 이렇게 직업성 암이 산재로 인정받기 어려운 건 산재임을 입증할 책임이 암에 걸린 노동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산재보상보험법 116조, 사업주는 노동자가 산재 입증을 위한 자료를 확보할 때 도우라고는 했지만, 돕지 않으면 처벌한다는 등의 강제 조항은 없습니다.
노동자가 입증하라는 것입니다.
반면 프랑스나 독일, 스위스 등은 사업주가 입증하라고 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암에 걸린 노동자는 사업장과 사업주, 병원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산재 입증에 필요한 자료를 달라고 읍소해야 합니다.
자료를 안줘도 과태료 몇 백만원이 전부여서 사업자에게 자료제출을 강제할 수도 없습니다.
[현재순/′직업성 암 119′ 기획국장]
″노동자한테 입증을 하라는 체계이기 때문에 굳이 사업주가 먼저 ′이런 자료 있으니 활용하십시오′ 하는 사업주는 없을 것 아니에요?″
그런데 작년부터는 직업상 암에 대한 노동자의 자료 확보가 훨씬 어려워졌습니다.
피해를 입증할 핵심 자료는 노동자가 어떤 유해물질에 얼마나 노출됐는지를 보여주는 작업환경측정보고서.
국회는 재작년 8월,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12개 산업의 69가지 핵심기술과 관련한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영업비밀로 규정하는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작업환경보고서를 공개하면 3년 이하 징역형에 처해집니다.
이 법에 따라 주요 업종의 작업환경은 영업비밀이 되고 직업상 암 등 산재 입증에 필요한 경우에도 예외가 인정되지 않습니다.
노동자가 산재임을 입증할 핵심 증거자료에 접근할 기회가 봉쇄된 겁니다.
[공유정옥/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새로 만들어지고 논란이 많은 법 때문에 현장을 조사한다든지 정보를 구하기 어려워서 업무 관련성 (암) 판정이 하염없이 지연된다(는 거죠.)″
당시 법안을 통과시킨 국회의원들은 입법 과정의 실수였다며 재개정을 약속했습니다.
[우원식/당시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
″먼저 가장 고려했어야할 국민 건강과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반드시 재개정이 이뤄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아직 법안 개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육체적 고통은 물론 생계비, 치료비 걱정에 피해사실의 입증 책임까지 져야하는 직업성 암 환자들의 고통은 커지만 가고 있습니다.
MBC뉴스 김성현입니다.
(영상취재: 고헌주 / 영상편집: 정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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