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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승
160개의 조선인 추모비‥ 가리고 치우는 일본
입력 | 2022-04-09 20:21 수정 | 2022-04-0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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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일제강점기 때 강제 동원된 조선인 희생자를 기리는 추도비는 일본 전국에 160개가 넘습니다.
대부분 강제 동원을 반성하는 지역 주민들이 세운 추도비인데 우익들의 표적이 돼서 강제 동원 관련한 내용이 없어지고 일부는 철거까지 되는 수난을 겪고 있습니다.
도쿄에서 고현승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도쿄에서 내륙으로 160km 떨어진 나가노현 마츠시로마치, 1944년, 패전 직전 일본은 이곳을 본토결전 최후의 거점으로 정하고 군 최고사령부는 물론 일왕의 거처까지 옮기기 위해 10km가 넘는 방공호를 팠습니다.
강제동원된 조선인은 6천여 명, 가혹한 노동에 내몰려 3백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조선인이 땅굴 벽면에 쓴 글씨가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기타 히데유키 /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 사무국장]
″조선, 한국 노동자가 고향을 그리워하며 ′대구′라고 쓴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1990년대초, 주민들이 사료를 조사하고, 성금도 모아 입구에 추도비를 세웠습니다.
나가노시도 바로 옆에 강제동원 사실을 소개하는 안내판을 설치했는데 18년이 지난 2013년 어느 날, 안내판에 흰색 테이프가 붙었습니다.
[기타 히데유키 /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 사무국장]
″나가노시가 흰색 테이프를 붙여 ′강제적′이라는 부분을 감췄습니다.″
이유는 ′강제연행은 없었다′는 우익들의 항의, 이듬해엔 아예 안내판을 교체했는데, ′조선인과 일본인이 강제적으로 동원됐다고 한다′로 바꾸고, ′반드시 강제적이지는 않았다는 견해가 있다′는 우익의 주장까지 덧붙였습니다.
8년 전 나가노시가 교체한 설명 간판은 지금도 이렇게 그대로 남아있어서, 방문객들은 강제동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군마현에 있는 조선인 추도비는 철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지난 2004년 시민단체 주도로 군마현의 허가를 받아 현립공원 안에 세웠는데, 10년 전부터 우익들의 표적이 됐습니다.
[우익단체 회원(2012년)]
″전쟁 중에 조선인을 강제연행해 일하게 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에 근거한 것입니다.″
군마현은 10년 전 추도비 제막식 등에서 ′강제연행′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트집을 잡아 철거를 결정했습니다.
[후지이 야스히토 / 군마현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
″(추도식) 내빈이 인삿말을 하면서 강제연행이라는 단어를 썼기 때문에 추도집회가 정치적 집회로 변질됐다는 것이 (철거 이유입니다.)″
시민단체들이 소송을 냈지만 지난해 2심에서 패소했습니다.
도치기현 닛코시의 아시오 광산, 총 연장 1천2백km, 4백 년간 채광해온 일본 최대 구리광산으로 폐광 후 관광시설로 꾸몄습니다.
입구에는 사도광산처럼 ′유네스코 새계유산 등록′을 추진한다고 써있습니다.
조선인 2천4백여 명이 끌려와 70여 명이 숨진 현장이지만, 어디에도 설명은 없습니다.
이곳에서 산길을 따라 4km를 들어가자 숲속에 조선인 희생자 위령비가 나옵니다.
20여 년전 시민단체가 세운 희생자 명판엔 김씨 이씨 등 한국 이름이 남아있는데, 방치된 채 썩어버려 글씨조차 알아보기 힘듭니다.
5년 전 재일동포들이 비목을 교체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일제시대 조선인이 강제동원된 현장은 일본 전국에 무려 2천 곳에 이르고, 그런 사실에 근거해 일본인들 주도로 세운 조선인추도비가 확인된 것만 160개가 넘습니다.
우경화된 지금의 일본이 가리고 지우려해도 역사적 진실이 달라질 순 없을 겁니다.
도치기현에서 MBC 뉴스 고현승입니다.
영상취재 : 이장식 김진호(도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