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살에 시간이 멈춰버린 아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참사 생존 학생들은 어느덧 스물여섯 살이 됐습니다.
그 중에는 응급구조사가 돼서 시민들의 생명을 돌보고 있는 장애진 씨도 있습니다.
손지윤 영상기자가 애진 씨의 일터로 찾아가 봤습니다.
◀ 리포트 ▶
“눈 떠 봐요. 눈.”
“나 봐봐. 나 봐. 눈을 떠야 해.”
“피를 토했어요, 어제?”
이른 아침부터 분주한 응급의료센터. 응급구조사 애진 씨의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장애진/응급구조사]
″오늘 투석하는 날인데, 숨쉬기 너무 힘들어지셔서 119 신고해서 바로 내원한 상황이에요.″
“좀 아파요. 미안해요.”
[장애진/응급구조사]
″(환자가) 당뇨 때문에 발이 벌써 이렇게 많이 안 좋은 상태여서 제가 드레싱도 하고.″
[장애진/응급구조사]
″저도 소중한 사람을 잃어본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보호자들을 보면 그때는 좀 마음이 아파요. 유가족분들이 겹쳐 보이거나 그런 경우도 있어서.″
유치원 교사를 꿈꾸던 애진 씨를 이 곳으로 이끈 건 무엇이었을까요?
[장애진/응급구조사]
″세월호참사 이후 좀 더 (저라도) 초기 대응도 하고 싶었고. 진상규명을 하면서 사람들한테 많은 도움을 받아서 돌려주고 싶은 마음에‥″
[장애진/응급구조사]
″지금 벌써 9년이어서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기억하고 계시는구나. 정말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양옥자/고 2학년 7반 허재강 학생 엄마]
″함께 하겠다. 잊지 않기 위해서 왔다. (시민들이) 동행해주는 거로 생각하고요.″
[최지안/응급의료센터 팀장]
″항상 밝고 씩씩해서 사실 이런 일을 겪었다는 것도 몰랐고. 환자를 대할 때 굉장히 적극적으로 열심히 해주는 친구입니다.″
[장애진/응급구조사]
″환자들에게 내 가족처럼 하자고 생각하거든요. 모든 사람이 좀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진상규명을 항상 생각하고, 친구들 생각하면서, 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전 그게 (삶의) 원동력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