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스크한지은

[현장 36.5] 손녀처럼 보이겠지만‥우리 이장님

입력 | 2024-02-10 20:27   수정 | 2024-02-10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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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전남 완도의 한 시골 마을에는 올해 스물여섯의 앳된 이장님이 있습니다.

손녀뻘 이장이지만 마을 어르신들은 ′이젠 이장님 없인 못 산다′고 할 정도로 의지하고 또 예뻐하신다고 하는데요.

디자이너를 꿈꾸던 청년이 서울살이를 접고 고향 지킴이가 된 사연, 궁금하시죠?

한지은 영상기자가 유솔 씨의 하루를 함께했습니다.

◀ 리포트 ▶

″용암리 이장입니다. 보건소에서 치매 검사를 올 예정이니 용암리 경로당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시골 마을에 울려 퍼지는 앳된 목소리.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김유솔 26세/용암리 이장]
″올해로 26살이고요, 용암리라는 마을의 이장을 맡고 있는 김유솔입니다.″

″한번 나 여기서 떨어질 뻔했어″
″그렇게 하지 마시고 다음에는 그냥 저한테 말하세요. 아니 이렇게 풀이 너무 많이 자라는 거는 읍사무소에서 말해서…″
″어쨌든 난 이 일만 해주면″
″만고땡이에요?″
″짱!″

″이거 경로당에 갖다 놓으라고요?″
″거기(경로당)에서 먹기로 했어.″
″오늘 문어숙회도 있고 아주…″
″노났다 (횡재했다)″
″맛있는 냄새 나는데?″

경로당에 들러 점심을 함께하는 건 이제 이장님에게도, 어르신들에게도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는데요.

″(문어가) 너무 커서 조금…″
″음, 진짜 맛있다!″

같이 밥을 먹다 보니 어느새 식구가 된 걸까요?

어르신들에겐 젊은 이장님이 큰 의지가 됩니다.

″이렇게 나오면 다른 건 안 보인다는 거잖아요.″
″응, 응!″
″자 이거는, 밑으로 내려버려.″
″내려부러~″
″내려불면 이렇게 다 나와.″

[용암리 마을 어르신들]
″이장님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몰라요. 물어볼 거 있으면 아기(자식)들한테 전화 안 하고 이장이 알아서 다 해줘 버리니까요. 든든해요.″
″무조건!″
″무조건 좋아요.″

6년간의 짧지 않은 서울 생활을 접고 내려온 고향 완도.

그 이유가 궁금한데요.

[김유솔 26세/용암리 이장]
″(서울에서는) 잘한다는 칭찬을 그렇게 많이 들을 수가 없었어요, 평소에는. 그렇다고 제가 열심히 안 살았던 건 더더욱 아닌데도 남들보다 더 잘해 보여야 되고, 더 튀어 보여야 되고. 그런 거에 급급하면서 살고…완도에서는 칭찬을 또 산더미처럼 받거든요. 그런 거에 힘입어서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장으로서의 업무를 마친 유솔 씨는 평범한 20대 청년으로 돌아옵니다.

[김유솔 26세/용암리 이장]
″계절마다 새를 보러 다니거든요. 완도가 아무것도 없어도 아무거나 할 수 있는 곳이라서 그래서 더 좋은 것 같아요.″

[김유진/용암리 이장 동생]
″<넌 다시 서울 안 가고 싶어?> 도시에서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없고, 그럼에도 책임은 내가 져야 되고. 이런 경우가 좀 있었다 보니까…그래도 도시에서 보단 (완도에 와서) 선택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지지 않았나… <응, 맞아.>″

자신을 따뜻하게 품어준 고향을 오래도록 지켜나가겠다는 젊은 이장님.

[김유솔 26세/용암리 이장]
″저만 도움을 드린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되게 많은데, 저는 알게 모르게 어르신들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고 있거든요. 그 어르신들과 똑같은 어른이 저도 돼서 마을을 계속 유지해 나가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 정도로 사실은 완도가 너무 좋아져 버려서 이제 어디 못 가요.″

취재·구성: 한지은 / AD: 허예지 / 영상편집: 류다예 / 디자인: 전채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