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에 들러 점심을 함께하는 건 이제 이장님에게도, 어르신들에게도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는데요.
″(문어가) 너무 커서 조금…″
″음, 진짜 맛있다!″
같이 밥을 먹다 보니 어느새 식구가 된 걸까요?
어르신들에겐 젊은 이장님이 큰 의지가 됩니다.
″이렇게 나오면 다른 건 안 보인다는 거잖아요.″
″응, 응!″
″자 이거는, 밑으로 내려버려.″
″내려부러~″
″내려불면 이렇게 다 나와.″
[용암리 마을 어르신들]
″이장님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몰라요. 물어볼 거 있으면 아기(자식)들한테 전화 안 하고 이장이 알아서 다 해줘 버리니까요. 든든해요.″
″무조건!″
″무조건 좋아요.″
6년간의 짧지 않은 서울 생활을 접고 내려온 고향 완도.
그 이유가 궁금한데요.
[김유솔 26세/용암리 이장]
″(서울에서는) 잘한다는 칭찬을 그렇게 많이 들을 수가 없었어요, 평소에는. 그렇다고 제가 열심히 안 살았던 건 더더욱 아닌데도 남들보다 더 잘해 보여야 되고, 더 튀어 보여야 되고. 그런 거에 급급하면서 살고…완도에서는 칭찬을 또 산더미처럼 받거든요. 그런 거에 힘입어서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장으로서의 업무를 마친 유솔 씨는 평범한 20대 청년으로 돌아옵니다.
[김유솔 26세/용암리 이장]
″계절마다 새를 보러 다니거든요. 완도가 아무것도 없어도 아무거나 할 수 있는 곳이라서 그래서 더 좋은 것 같아요.″
[김유진/용암리 이장 동생]
″<넌 다시 서울 안 가고 싶어?> 도시에서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없고, 그럼에도 책임은 내가 져야 되고. 이런 경우가 좀 있었다 보니까…그래도 도시에서 보단 (완도에 와서) 선택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지지 않았나… <응, 맞아.>″
자신을 따뜻하게 품어준 고향을 오래도록 지켜나가겠다는 젊은 이장님.
[김유솔 26세/용암리 이장]
″저만 도움을 드린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되게 많은데, 저는 알게 모르게 어르신들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고 있거든요. 그 어르신들과 똑같은 어른이 저도 돼서 마을을 계속 유지해 나가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 정도로 사실은 완도가 너무 좋아져 버려서 이제 어디 못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