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최경재

[스트레이트] '국민 인권' 버리고 '尹 인권'

입력 | 2025-10-12 21:12   수정 | 2025-10-12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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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경재 기자 ▶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도록 한 우리 헌법정신.

그런데 엄연히 국가기관인데도 ″이 헌법정신을 정면으로 거스른다″는 비판을 받는 곳이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입니다.

국가조찬기도회 이사이기도 한 안창호 위원장이 취임한 뒤, 극단적 개신교 원리주의에 치우친 인사들이 잇따라 인권위 요직에 추천됐습니다.

바로 ′복음법률가회′라는 단체 인사들이었는데요.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자세히 취재했습니다.

<B>■ ′인권위 접수′ 노렸나</B>

지난달 15일, 국가인권위원회 직원들이 ″안창호 인권위원장에게 인권을 침해당했다″며 인권위에 직접 진정을 냈습니다.

인권위 직원들이 위원장을 상대로 진정을 낸 건 지난 2001년 인권위가 설립된 이후 처음입니다.

[문정호/공무원노조 인권위 지부장 (9월 15일)]
″안창호 위원장이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자격이 미달될 뿐만 아니라 헌법과 국제인권법상 ′인권을 수호하고 보호할 수 없다′고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진정서에 따르면, 안 위원장은 직원들에게 ″동성애자 아니죠?″라며 성적 지향을 묻는가 하면,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는 특정 종교를 비하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이 승진하지 못하는 건 유리 천장 때문이 아니라 무능해서″라는 성차별적 발언을 일삼았고, 여성 직원의 머리를 쓰다듬기까지 했다고 적혀있습니다.

내부 제보를 통해 취합된 안 위원장의 반인권적 언행은 40여 건에 달했습니다.

개신교 장로이자 국가조찬기도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안창호 위원장.

그는 인사청문회 때부터 인권위가 아닌 보수 개신교를 대변하는 듯한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특히 동성애와 관련해선 극단적인 혐오는 물론, 황당한 주장까지 거침없이 내뱉었습니다.

[안창호/당시 국가인권위원장 후보 (국회 운영위 인사청문회, 2024년 9월 3일)]
″′동성애는 사회주의 혁명, 공산주의 혁명의 중요한 핵심적 수단이다′ 이런 주장이 있습니다.″

[안창호/당시 국가인권위원장 후보 - 고민정/더불어민주당 의원 (국회 운영위 인사청문회, 2024년 9월 3일)]
″<′차별금지법이 도입되면 에이즈 등 질병 확산이 우려된다′ 이 말을 들은 그 성소수자든 혹은 에이즈 환자들이든 이분들이 어떤 생각을 하실까요?> 그런 객관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국민들에게 알려줘야지 질병 확산 같은 것도 방지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당시 인사청문회 준비를 도왔던 한 간부는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면서, 안 위원장은 인권위원장이 된 걸 하나님의 뜻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육성철/당시 인권위 홍보협력과장]
″′하나님께서 저를 인권위로 인도하셨습니다. 인권위 앞으로 잘될 겁니다. 목사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런 얘기를 전화상으로 하는 걸 보고서 종교적인 부분에 있어서 자기의 어떤 주관이 강하다면 좀 ′앞으로 걱정되겠다′ 이런 생각이 좀 들었었죠.″

국가인권위법에 명시된 인권위의 설립 목적.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한다.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도록 한다는 조항도 명시돼 있습니다.

이에 따라 과거 인권위는 여러 차례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을 권고해 왔습니다.

하지만 안창호 위원장은 취임 이전부터 줄곧 차별금지법을 악법으로 몰아붙인 인사였습니다.

[안창호/국가인권위원장 (유튜브 ′차별금지법바로알기 아카데미′, 2020년 9월 5일)]
″차별금지법은 국민의 기본권, 자유를 광범위하게 제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동성애를 가증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안 위원장 취임 뒤, 특정 모임 출신의 법률가들이 잇따라 인권위 요직에 임명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복음법률가회′ 라는 보수개신교 법률가 단체였습니다.

이 단체는 지난 2020년 창립 취지문에서, 차별금지법을 대표적인 반복음 악법으로 규정하고 이를 막는 데 헌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윤 전 대통령 탄핵에 적극 반대했던 조배숙 국민의힘 의원이 상임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조배숙/국민의힘 의원·복음법률가회 상임대표 (복음법률가회 창립대회, 2020년 7월 27일)]
″하나님의 복음적인 가치를 부정하는 그런 것들을 찾아내는 게 저희들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변호인이었던 조대현 전 헌법재판관, 전광훈 목사의 멘토로 알려진 김승규 전 국정원장 등이 공동대표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안창호 위원장 역시 공동대표 중 한 명이었습니다.

지난 7월, 국민의힘이 차관급인 인권위 상임위원으로 추천한 지영준 변호사.

복음법률가회 창립대회 당시, 안 위원장, 조배숙 의원 등과 함께 VIP 테이블에서 두 손을 들고 기도하던 인사였습니다.

과거 기독자유통일당 출마 경력 등의 논란으로 지 변호사가 사퇴하자, 국민의힘이 다시 추천한 인사 역시 복음법률가회 소속 이상현 교수였습니다.

이 교수도 성소수자 보호를 반대하는 등 편향된 인식이 논란이 돼 국회 인준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상현/숭실대 국제법무학과 교수 (유튜브 ′코리아인사이트′, 2022년 10월 20일)]
″차별금지의 대상으로 성소수자를 넣게 됐을 때 나타나는 여러 가지 편향적인 어떤 관점들은 우리 사회의 정상적인 어떤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상임위원뿐만이 아닙니다.

안 위원장은 서부지법 폭동 피고인들의 변호인을 맡아 당시의 폭동을 ′항쟁′이라고 했던 연취현 변호사를 인권위 정보인권 전문위원에 임명했고, 성소수자에 대한 보호 정책을 공개적으로 반대해 온 음선필 홍익대 교수를 성차별 전문위원에 위촉하려 했습니다.

이들 역시 모두 복음법률가회 소속이었습니다.

복음법률가회 인사들로 인권위를 장악하려고 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홍성수/숙명여대 법학과 교수·인권법학회장]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고 성소수자 혐오를 계속 이렇게 선동하는 그 세력들이 인권위가 어떻게 보면 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던 거죠. 처음에는 이제 인권위에 대해서 견제하고 반대하고 이런 정도의 그런 분위기 정도였다가 이제 어느 순간에는 아예 ′인권위를 장악하자′ 또는 어떤 ′인권위라는 말 자체를 그냥 빼앗자′라는…″

이렇다 보니, 성소수자들이 부당한 차별을 당했다는 진정은 소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않는 일이 잦아졌다고 합니다.

[최준석/인권위 차별시정국 조사관]
″국장님실에 갔다가 그 의견을 말씀드렸더니 잠시 머뭇머뭇하시다가 ′위원장님이 소위에 상정하는 걸 보류하자십니다′ 그러는 거예요. ′위원장님한테 위임을 받은 권한이니까 위원장님 의견이 그러시면 저는 결재를 못 하겠습니다′라고 해서…″

<스트레이트>는 모임 대표를 맡고 있는 조배숙 의원을 찾아가, 복음법률가회 인사들이 인권위 요직에 추천되는 과정을 물었습니다.

[조배숙/국민의힘 의원·복음법률가회 상임대표]
″우리 당에 원내대표. 원내대표 쪽에서 다 추천을 받아가지고 그래서 결정하죠. 한 사람이 결정하거나 그러지 않아.″

안창호 인권위원장도 찾아가 ′차별금지법 저지′를 내세운 복음법률가회 인사들을 잇따라 인권위에 추천한 건 부적절하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안 위원장은 ″추천 인사 모두 자격이 있는 적격 인사들″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안창호/국가인권위원장]
″<복음법률가회 계신 분들이 자꾸 들어오셔서 인권위에> 아니 그렇게 보지 말고. 그 분들도 다 자격들이 있어요. 다 자격이 있는 분들이고 지금 다양한 시각을 우리가 가져야 되는 거거든요. 그렇게 이해를 하세요.″

◀ 최경재 기자 ▶

대한민국 정부의 인권정책을 담은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인권 보호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가치를 최전선에서 수호해야 하는 기관임에도, 안창호 위원장의 국가인권위는 최고 권력자였던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내란 주도세력의 인권보호를 위해 발 벗고 나섰습니다.

존재 이유 자체를 부정해 버린 국가인권위원회.

<스트레이트>는 먼저, 절박한 심정으로 찾아왔던 한 군인을 당시 인권위가 어떻게 문전박대했는지부터 자세히 전해드리겠습니다.

<B>■ ′국민 인권′ 버리고 ′尹 인권′</B>

지난 2023년 8월 14일, 국방부 검찰단은 ″박정훈 대령이 상부의 지시를 어기고 채 해병 사망사건 수사 기록을 경찰에 이첩했다″며 항명 혐의로 체포영장을 청구했습니다.

바로 이날, 박 대령은 절박한 심정으로 혼자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아갔습니다.

군 인권보호 담당이었던 김용원 인권위 상임위원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닷새 전이었던 8월 9일, 김용원 상임위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박정훈 대령에 대한 수사를 멈출 것을 요구했습니다.

[김용원/인권위 상임위원·군인권보호관 (2023년 8월 9일)]
″수사의 결론이 확정되지 아니한 시점에서 군사법 경찰 관계자의 보직을 해임하거나 직권남용죄 등으로 수사를 개시하는 것은 군 수사기관의 독립성을 크게 저해할 우려가 있으므로…″

자신의 인권을 보호해 주는 취지의 기자회견이었기에, 박 대령은 김용원 위원을 만나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김 위원은 박 대령을 하루 종일 만나지 않았던 걸로 확인됐습니다.

[김창균/당시 인권위 군인권조사관]
″군인권보호국이 좀 만들어진 지 최근이어서 창고 겸 회의실이 있어요. 그래서 그날 창고 겸 회의실에 그냥 하루 종일 있다가 가셨어요. 그러니까 적어도 직원들은 이제 보호관(김용원 위원)이 면담을 하거나 이렇게 해줄 줄 알았는데…″

박정훈 대령은 <스트레이트>와의 통화에서 ″당시 군인권조사국장에게 ′김용원 위원과 전화 통화라도 할 수 없냐′고 요구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김 위원이 절박한 저의 심정을 외면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공개적으로 박정훈 대령을 옹호하던 김용원 위원은 왜 불과 닷새 만에 태도를 180도 바꿨을까.

박 대령이 인권위에 찾아왔던 이날, 김용원 위원은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과 통화했던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김용원/인권위 상임위원 - 윤영덕/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 2023년 11월 8일)]
″<8월 9일과 8월 16일 사이에 국방부 장관과 통화한 적 있으십니까?>…… 제가… <혹시 통화 기록 제출하실 수 있으십니까?> 통화를 한 시점이 언제인지는 잘 기억할 수 없고요, 통화 한 사실은 있습니다.″

특검은 현재 김용원 위원을 피의자로 입건해 이 통화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수사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종섭 장관과의 통화 이후, 김용원 인권위원이 박 대령에 대한 수사 중단을 요청하는 긴급구제건 심의 회의에 불참하면서 정족수 부족으로 회의가 무산됐습니다.

당시 인권위 사무총장 역시 이즈음, 김 위원에 대해 ′태도 변화 감지됨′이라고 자신의 수첩에 적었습니다.

[당시 인권위 사무총장]
″그렇게 강력하게 인권위 입장을 기자회견까지 얘기를 했던 분이 갑자기 어느 날부터는 완전히 180도 달라지고… 국방부 장관과 통화하는 게 사실 원칙적으로 적절하지가 않아요. 일종의 피진정기관이잖아요. 그즈음에 군인권보호관의 태도가 좀 바뀐 거 같다…″

김용원 위원을 직접 찾아가 왜 박정훈 대령을 만나주지 않았는지 물었습니다.

[김용원/인권위 상임위원·군인권보호관]
″<박정훈 대령께서 체포 임박 시점에 인권위를 찾아왔다고 알고 있는데> 나는 지금 박정훈 대령이 인권위에 왔는지 나는 지금 정확하게 지금 잘 모르겠어요. 자료 그거 벌써 2년도 더 지난 이야기잖아요. 나는 지금까지 여기 와서 내가 거리끼는 일, 내가 양심상 부당한 일, 나는 단 한 가지도 한 적 없어.″

그리고 터진 12.3 내란사태.

침묵을 지키던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일주일 뒤 열린 세계인권의날 기념식에서도 계엄과 관련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기념사 초안엔 ″계엄령은 대한민국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 중대한 사안이다″, ″급박한 상황에서도 신중함을 잃지 않은 군인들과 국회, 언론에 깊이 감사드린다″는 문구가 들어있었지만, 안 위원장이 모두 삭제했습니다.

[육성철/당시 인권위 홍보협력과장]
″(초안을) 갖고 올라가서 ′반드시 이 내용을 넣어야 된다′ 그랬더니 저보고 ′위헌이 아니라는 얘기를 점잖은 분들로부터 많이 듣고 있다. 위헌이라는 얘기를 함부로 쓰면 안 된다′ ′이것이 인권침해가 아니면 무엇이 인권침해입니까?′했더니 ′인권침해 함부로 쓰는 거 아니에요′ 또 이러시더라고.″

계엄으로 국민들이 입은 인권 침해를 직권 조사해야한다는 안건은 표결도 없이 기각.

반면 내란 우두머리 혐의의 대통령이 체포되자, 방어권 보장과 불구속 수사를 요구하는 권고안은 내부 절차까지 어겨가며 순식간에 통과시켰습니다.

[이충상/당시 인권위 상임위원 (2월 11일)]
″대통령이 사회적 약자입니다. 내가 재판할 때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은 철저한 약자였습니다.″

[홍성수/숙명여대 법학과 교수·인권법학회장]
″어떤 국가기관보다 인권에 민감해야 될 인권위가 그런 걸 다 제쳐두고 윤석열의 인권부터 챙기고 그거를 먼저 이렇게 절차를 차분히 밟지도 않은 상태에서 긴급하게 이 문제를 처리했다. 이거는 뭐, 어떤 정치적 목적을 배제하고는 설명할 수가 없는…″

윤석열 전 대통령 방어권 보장 안건에 찬성했던 6명 위원들의 면면을 살펴봤습니다.

안창호 위원장을 비롯해, 김용원 위원, 이한별 위원은 윤석열 전 대통령 지명.

이충상, 한석훈 위원은 국민의힘 추천.

대학 교수인 강정혜 위원은 조희대 대법원장 지명이었습니다.

설립 3년 만인 지난 2004년 이후, 세계국가인권기구에서 A등급을 유지하며 모범적 기관으로 평가받아 왔던 국가인권위원회.

하지만 이달 말 세계인권기구는 한국 인권위의 등급 하향 여부를 논의합니다.

독립성과 다양성이 위기에 처했다고 판단하고 특별심사를 열기로 한 겁니다.

[남규선/전 인권위 상임위원]
″특별심사 개시 결정 난 것 자체가 매우 불명예스럽고 인권위로서는 국제적인 위상마저도 추락 된 그런 상황입니다.″

하지만 정작 인권위를 이렇게 만든 인사들은 뭐가 문제냐는 입장입니다.

[김용원/인권위 상임위원·군인권보호관]
″<특별 심사를 받게 됐잖아요.> ′인권위의 등급을 떨어뜨려 달라′고 간절하게 희망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 사람들 소원 들어줘야 되겠죠. 나는 우리 인권위가 간리(세계인권기구)에서 제명돼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서미화/더불어민주당 의원·전 인권위 비상임위원]
″어마어마한 흉기가 돼서 인권위 이름으로 내란 수괴 윤석열을 옹호하고 사회적 약자나 국민의 인권은 말살시키고 있는 그런 실정이라고 보이고요.″

′국민 인권′ 대신 ′윤석열 인권′을 택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인권위.

′인권선진국′을 지향해 온 대한민국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 책임자, 안창호 위원장의 임기는 아직도 2년이 더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