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5-08 09:37 수정 | 2022-05-08 09:42
몽환적이고 기괴하면서도 사랑을 담은 독창적인 작품으로 새 장르를 개척한 팀 버튼 감독. 〈비틀쥬스〉 〈크리스마스의 악몽〉 〈유령신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의 작품을 통해 판타지 영화의 세계적 거장의 자리를 지켜왔죠. 팀 버튼의 스타일을 일컫는 ′버트네스크(Burtonesque)′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팬덤은 공고하게 구축돼 있습니다.
그가 한국을 찾았습니다. 10년 만입니다. 이번엔 영화가 아닌, ′특별전시회′로 한국 관객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팀 버튼 감독을 따로 만났습니다. 시차로 고생해 잠을 설쳤다면서도, 타고난 이야기꾼답게 작품세계와 한국에 대한 인상 등을 친절하게 전해줬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한국의 창의적 ′바이브′가 기억에 남아″</strong>
′팀 버튼의 세계′. 이번 특별전시회의 제목입니다. 그의 작품세계를 볼 수 있는 월드투어의 첫 시작을 한국에서 끊은,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그러자 ′창의적 바이브′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사람들도 정말 좋았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창의적인 바이브(분위기)가 아주 강했기 때문에 한국에 꼭 다시 오고 싶었어요. 삶에서 되도록 많은 영감을 더 많이 받고 싶잖아요. 그래서 10년 동안 계속 돌아오고 싶었죠.″
그러고보니 10년 전, 한국을 방문한 팀 버튼의 모습이 담긴 사진 몇 장이 꽤 알려졌습니다. 광장시장에서 빈대떡을 먹고 있던 사진인데요. 당시의 그 맛을 기억하고 있었을까요?
″누가 말해줬어요. 당시 사진에 찍힌 제 모습이 마치 붙잡힌 야생동물 같더군요. 사진 있으신 분은 좀 보여주세요. 빈대떡을 먹은 기억이 나요. 이번에 와서 아직 먹지 않았는데, 말해주셔서 감사해요. 지금 딱 빈대떡 먹고 싶은 기분이거든요.″
사실 팀 버튼 감독 만나기 전 광장시장 들러 빈대떡 몇 장을 사갈까 하다 말았는데, 대답을 듣고나서 살짝 후회가 들기도 했습니다. 그 밖에도 그는 한국에 대한 좋은 기억을 웃음과 함께 이어나갔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모든 캐릭터에서 제 모습을 봐요.″</strong>
수첩 한 장 쭉 찢어 그린 습작. 팀 버튼 머릿 속 상상의 파편이 종이에 옮겨지는 순간입니다. 그의 세계가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하겠죠. 이와 같은, 작품의 출발점은 전시장 곳곳에 널려 있었습니다. 문득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가 궁금해졌습니다.
″〈가위손〉에 나오는 ′에드워드′나 〈크리스마스의 악몽〉의 잭 스켈링턴 같은 캐릭터들에 개인적으로 애착이 갑니다. 그렇지만 모든 캐릭터들에 애착을 가지려고 해요. 제가 창조한 캐릭터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배트맨>처럼 이미 알려진 캐릭터인지 여부는 상관없어요. 모든 캐릭터에서 내 모습을 보기 때문이죠. 캐릭터들을 진심으로, 마음으로 느끼려고 해요.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건 그래서 캐릭터들과의 감정적인 연결이 아닐까 합니다.″
이 대목에서 꽤 인상적인 전시물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팀 버튼 감독이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제작할 당시 주연배우 조니 뎁에게 보낸 손편지였는데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조니에게, 초콜릿 방에 들어갈 때 이런 대사 어떨까. ′이 방의 모든 것은 다 먹을 수 있어요. 심지어 저까지 먹어도 되죠. 하지만 그러면 대부분의 사회에서 용납하지 않는 카니발리즘(식인행위)으로 문제가 되겠죠.′ 괜찮은 거 같으면 알려줘. 팀이 보냄″
캐릭터 자체 뿐 아니라,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와의 따뜻한 교감 역시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습니다.
′버트네스크′라는 단어가 만들어질 만큼 열광적 지지를 받는 그의 작품세계의 근간에는 바로 상상력이 있을 겁니다. 60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실현해 나가는 그에게 ′스스로 생각하는 나이′를 묻는 게 그리 실례는 아닐 거라 생각했습니다. 재밌는 질문이라며 웃음 지은 그는 ″나이를 잊었다″고 입을 뗐습니다.
″난 내가 실제 몇 살인지도 잊어버렸어요.″
아이가 된다는 건 정말 흥미로운 일이라고도 했습니다.
″아이에게는 모든 게 새롭고, 모든 게 자신보다 크고, 모든 게 처음 보는 것들이죠. 마치 모든 걸 처음 보는 것처럼, 기존에 있던 것과 다른 것을 보는 것처럼, 혹은 낯선 것을 보는 것처럼 말이에요. 창조의 과정에서 중요한 건 나이가 들어간다 해도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 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거에요.″
영화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하는 이유로 ′아이′를 떠올렸던 것과도 겹쳐 들렸습니다. 아이처럼 생각해 작품을 만들고, 작품이 이뤄지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용기와 영감을 얻었으면 하는 진심이 전해졌습니다.
″지난 몇 년 간 관심을 뒀던 건, 아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었어요. ′나 그림 그릴 수 있어. 나 그림 그릴 줄 알아′ 같은 것이죠. 그럼 그림 그리는 걸 즐기게 될 거에요. 만약 그렇게 시작해 좋은 일이 생긴다면 정말 좋겠죠? 그렇지 않다고 해도 아름다움과 힘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거니까 의미가 있을 거에요.″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좋아하는 걸 계속 하세요.″</strong>
팀 버튼 감독은 자기의 업무 공간까지 통째로 가져와 한국 관객에게 공개했습니다. 실제로는 더 더럽다고 하면서요. 그만큼 좀 더 많은 걸 공유하고 싶다는 뜻일 텐데요. 이번 특별전에서 한국 관객들이 특히 주목해 봤으면 하는, 말하자면 작가로서의 욕심 같은 것도 궁금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아주 위대한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제 작품이 굉장히 사람들에게 연결되어 있고, 그냥 좋아하는 게 있으면 계속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누가 그림을 못 그린다고 말해도 그냥 그리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어떤 방식으로라도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해 무언가 창조하라고요. 제 전시회가 사람들에게 그런 의미에서의 영감을 준다면, 제게는 가장 의미있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갓 착륙한 우주선 같다′고 표현한 그는 그 우주선에 어울릴 만한 조형물을 만들어 선물로 가져왔습니다.
특별전 ′팀 버튼의 세계′ 개막식을 보고 떠난 그는 이제 또하나의 새로운 도전에 나섭니다. 올해 가을 넷플릭스 시리즈 ′웬즈데이′로 돌아오는 건데요. ″시리즈물은 처음″이라 긴장이 된다면서도 ″굉장히 애착을 가지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며 기대감도 함께 내비쳤습니다.
팀 버튼의 작품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이번 전시회는 9월12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배움터 지하2층 디자인전시관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