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3-22 22:30 수정 | 2022-03-22 22:34
- 가파르게 오른 서울 집값, 오른 대출 금리에 깊어진 고민
- 정부의 저금리 기조에 집값 절반 이상을 대출로 충당한 20~30세대
22일 밤 PD수첩 <빚과 부동산, 끝은 어디인가>에서는 지난 몇 년 동안 가파르게 상승한 부동산 시장을 살펴본다. 3월 16일 美 연방준비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제로금리 시대는 끝이 났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떨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진 지난 2년 동안 세계 각국은 경기부양책으로 예산을 편성했다. 시장에 천문학적인 돈이 풀리자 주식, 가상화폐,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상승했다. 작년 기준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1862조 천억 원이 되었고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4.2%로 우리 국민이 1년 동안 일을 해도 갚기 어려운 금액이 되었다. 증가 속도도 가팔라 세계 주요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리를 올리고 대출 조이기에 들어갔다.
임정호(가명) 씨네 가족은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 딸아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서울로 이사를 계획 중인데 마땅한 곳이 없었다. 집을 팔고 가거나 세를 놓고 전셋집을 구해도 추가 대출은 필요한 상황. 서울 집값은 가파르게 올랐는데, 저금리 서민 주택담보대출이 가능했던 6억 원 이하의 아파트는 지난해 기준으로 열 채 중 하나만 남아있었다. 임씨는 부동산을 찾았다. 부동산 중개인이 소개해준 아파트는 7, 8억 원의 상당. 반전세 또한 7억 원대의 금액이었다. 문제는 대출 금리가 계속 오르고 있다는 것. 서울 아파트로 이사를 가려면 임씨는 전세자금 대출 2억 원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되면 기존 대출 1억 원이 있기 때문에 그가 매달 내야 하는 이자만 해도 2백만 원에 가까웠다. 임 씨의 상황은 복잡해졌다.
2020년 3월 코로나19로 사상 처음 0% 대로 떨어졌던 기준금리는, 지난해부터 세 차례 인상돼 지금은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자 시중 은행들도 잇따라 대출 금리를 올렸다. 3월 16일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연내 여섯 차례 추가 인상을 통해 기준금리를 1.9%까지 올리겠다고 예고했다. 지난 2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는 1982년 이후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기 때문이었다. 코로나19 여파로 글로벌 공급망 악화와 원자재 가격 상승, 구인난에 따른 임금 상승이 미국의 물가를 급격히 끌어올렸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모든 나라 각 경제주체의 부채가 증가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며 “저금리 때문에 전 세계 자산 가격의 거품이 발생했고 우리 가계가 돈을 많이 빌려 쓰는 것은 소비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주로 집값이 많이 오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2년 가까이 이어진 저금리 기조 속에 집값의 절반 이상을 대출로 충당한 20~30대가 3년 사이 두 배로 증가했다. 전국 아파트 가격이 19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한 지난해. 서울에선 이른바 ‘노도강’이라 불리는 노원구, 도봉구, 강북구의 상승세가 가팔랐다. 하지만 21년 말부터 분위기는 바뀌었다. 호가를 낮춘 급매물들이 속속 등장했다. 한 공인중개사는 “거의 24평대 기준으로 1억 원 이상 빠졌다”라고 말했다.
김경민 서울대 교수(도시계획 전공)는 “작년에 0.5% 이자율이 0.75가 됐고 8월에 나왔던 뉴스를 보면 ‘이자는 올렸는데 주택 가격 안 꺾였네?’였다”라고 하며 “시장 상황에서 참여자들의 행위를 보면 과거에 가격이 올랐으면 앞으로도 오를 거라고 생각하고 있고 하지만 시장 자체의 펀더멘털(경제의 기초여건)은 바뀌었기 때문에 가격 자체는 작년 11월에 서울은 다 꺾였다”라고 분석했다.
중저가 소형 아파트가 밀집해 지난 2년간 20~30대의 매수세가 몰렸던 강북구의 한 아파트 단지. 국민주택규모 이하 1200여 세대의 부동산 등기부 등본과 자금조달계획서를 토대로 거래 내역을 전수 조사해보았다. 2년 동안 187세대의 집주인이 바뀌었고 이중 20~30세대는 154명에 달했다. 그중 취재에 응한 서른 중반의 결혼 4년 차 부부는 주택담보대출을 받고 모자란 돈은 신용대출을 이용했다고 했다. 그들은 각오하고 시작했는데 금리가 계속 오르니까 스트레스가 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부부는 원리금을 갚는데 번 돈의 삼분의 일 가량을 사용하고 있었다.
갭투자의 현장은 어떨까? 직장을 관두고 유튜버로 전업한 이 씨, 그는 스물아홉의 나이에 벌써 아파트 두 채를 보유하고 있었다. 다주택자인 그가 찾는 건 공시가 1억 원 미만의 소형 아파트. 집을 여러 채 사도 취득세가 중과되지 않아서였다. 이 씨에겐 전세가 잘 나가는 집인지가 가장 중요했다. 그래야 실투자금이 적게 들기 때문. 장석호 공인중개사는 “전세자금 대출 한도를 현 정부 들어서 전세자금의 80%까지 늘려줬고 제로금리를 가져다 놨기 때문에 이자 부담이 없다는 것. 임대인들은 대출금 없이 집을 살 수 있는 구조가 됐다”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런 전세보증금은 가계부채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는 거였다. 서영수 키움증권 이사는 “임대보증금은 사적 부채라고 하는데 이런 부분들이 상당히 가계부채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게 (가계부채 통계에) 제외된 거”라고 밝혔다. “미국 같은 경우에는 (주택담보) 대출을 받을 때 다른 대출을 이용할 수 없어요. 오직 주택담보대출 그것만 이용을 해서 DSR(총부채 원리금 상환비율)과 LTV(담보가치 대비 대출 비율)를 적용받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집을 구매할 때 주택담보대출, 임대 보증금, 신용대출 심지어 전세자금 대출 등을 이용해 레버리지를 80에서 100%까지 일으키는 게 대부분의 현실이다. 이런 상태에서 개인의 상환능력을 판단하는 것은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거였다.
통계 사각지대에 있는 전세보증금은 가계부채의 뇌관이 되고 있었다. 빌라 전세를 들어간 한 부부는 우연히 가압류 사실을 알게 됐는데, 집주인은 전화도 받지 않는 상황이었다. 집주인을 상대로 전세반환 소송을 진행하던 중, 기가 막힌 사실도 알게 됐는데 전세보증금을 떼일 위기에 처한 집은 한두 세대가 아니었다. 세입자는 대부분 신혼부부. 알고 보니 집주인은 같은 사람이었다. 보유한 집이 100채가 넘을 거라는 말도 들려왔다. 집주인은 현재 연락이 두절된 상태. 그가 여러 채의 집을 보유할 수 있었던 동력은 결국 세입자들의 전세보증금이었다.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고도 급증하고 있다.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대신 갚아준 금액은 2018년 583억 원에서 지난해 5,034억 원으로 4년 새 여덟 배 넘게 늘어있었다.
미국이 연내 6차례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예고하면서 한국은행 역시 금리를 추가 인상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서둘러 구조조정에 들어가지 않으면 빚으로 지은 집이 빚 폭탄으로 몸집을 불려서 한국 경제 전반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거품 낀 부동산 시장을 연착륙시켜 충격을 최소화할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