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김상훈

[서초동M본부] '여성'이 된 아빠‥대법원은 '기본권'을 선택했다

입력 | 2022-11-26 09:00   수정 | 2022-11-26 09:14
<b style=″font-family:none;″>자신의 몸을 혐오하는 사람들</b>

트랜스젠더(Transgender). 자신이 타고난 생물학적 성과 반대의 성적 정체성을 지녀, 육체적인 성과 정신적으로 느끼는 성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도 낯설지 않은 단어죠.

자신이 뭔가 다르다는 느낌은 시간을 두고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내가 왜 여자가 아닌 남자로 태어났을까′, ′나는 커서 언니처럼 가슴이 나오는 걸까′, ′나는 저주받은 것이 아닐까′. 주변에 속하지 않는다는 불일치감과 위화감, 그리고 자신에 몸에 대한 혐오감이 뒤따른다고 합니다.

네다섯 살 때 자신이 여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깜짝 놀랐다는 이부터, 이십대가 되어서야 자신의 성 정체성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던 이. 또 결혼하고 아이를 낳다보면 괜찮을 거라는 주위의 충고를 따라, 혼란스러운 삶을 이어가다 뒤늦게 트랜스젠더임을 받아들였다는 사람까지. 사연은 제각각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호기심이나 변덕 때문에 성 전환을 고민하진 않는다는 점은 분명해보입니다. 바로 스스로를 인식하는 ′성′으로 살고 싶다는 최소한의 욕구 때문이죠.

그래서 트랜스젠더 대다수는 성 정체성과 외적 모습을 일치시키고 싶어합니다. 성 전환 수술을 받거나 호르몬 치료를 받습니다. 여기에 더해 법적인 성별을 바꾸는 절차를 밟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외양과 다르게 부여된 주민번호 ′1′ 또는 ′2′가 주홍 글씨처럼 박혀, 일상생활을 쫓아다니게 됩니다. 일반적인 취업과 학교 생활을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우리 대법원이 지난 2006년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 대법권 13명 전원의 의견 일치로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 인정판결을 내린 것도 이 때문입니다. 당시 대법원은 명백하게 법적인 성별 정정이 트랜스젠더와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함임을 밝혔습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성전환자임이 명백함에도 주민등록번호가 여전히 종전의 성을 따라야 한다면 취업이 제한되는 등 기본권 침해 우려가 있다″며 ″성전환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향유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아빠가 된 뒤 뒤늦게 깨달은 성적 정체성</b>

남자로 태어났지만 스스로를 여성으로 인식하는 A씨도 다르지 않습니다. A씨는 어린 시절부터 남자가 아닌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생각해왔고, 사춘기 때는 남성적으로 변해가는 자신에 고통을 느끼기까지 했습니다.

결심 끝에 여성으로 살기 위해 3년 전 법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미 한해 전 태국에서 자신의 외양을 정체성과 일치시키기 위한 성 확정 수술을 받은 뒤였습니다. 그러나, 1심을 맡은 서울 가정법원은 A씨의 신청을 곧바로 기각했습니다. 심지어 재판부는 A씨를 위하듯 ″빨리 기각할테니 대법원까지 가서 판단을 구해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A씨에게 미성년자인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A씨는 부모의 기대와 주변의 시선 때문에, 결혼한 뒤 두 자녀를 키웠습니다. 그러나 결혼 1년 만에 병원에서 성정체성이 달라 생기는 성정환증 진단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끝내 이혼 한 뒤 성확정 수술을 받고 성별 정정을 신청한 겁니다.

그런데 2006년 대법원 판결 이후 2011년 대법원은 전원합의체를 통해 성별 정정 허용 대상을 제한했습니다. 특히 미성년 자녀에게 정신적 혼란과 충격을 줄 수 있고 사회적 차별과 편견에 노출될 수 있다는 이유로 미성년 자녀가 있으면 성별 정정을 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A씨의 신청을 기각한 1,2심의 판단도 기존 대법원 판례와 같았습니다.
심지어 아빠가 엄마가 되면, 아이들이 동성혼 문제에 노출될 수 있다며, ″친권자로서 기본적인 책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라고 훈계하듯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A씨는 판결문을 두고 상처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부모이기 전에 한 명의 사람으로서, 자신의 성별을 찾고 싶다는 이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b style=″font-family:none;″>11년 만에 달라진 대법원‥판결문엔 ′기본권′만 22번 언급</b>

대법원의 판단은 11년 만에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대법관 1명이 공석인 상황이었지만, 결과는 11대 1.

반대의견을 낸 이동원 대법관 한 명을 제외하고 대법관 11명이 다수의견으로 여성이 된 아빠, A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기본권′이란 단어만 22번 나올 정도로, 대법관들은 트랜스젠더가 인간으로 누려야할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에 주목했습니다. 2심 판결문에는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던 단어들도 자주 언급됐습니다.

′기본권′ 22번
′행복′ 15번
′인권′ 8번
′존엄성′ 7번

먼저 다수의견은 서두에서 ″성전환자도 우리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면서 성별 정정 문제도 기본권 보장과 직결된다고 봤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자녀를 위해서라도 성별 정정 허가해야″</b>

′미성년 자녀의 행복과 이익′을 이유로 성별 정정을 막았던 이전 판례도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다수의견은 ″부모의 성별정정으로 미성년 자녀가 사회적 차별과 편견에 무방비로 노출된다고 단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오히려 ″전환된 성을 바탕으로 정서적 유대관계가 형성돼 있다면, 미성년 자녀를 위해서라도 성별 정정을 허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진일보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특히 기존 판례에 따르려면, 미성년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성정체성과 법적 성별이 다른 상태를 감내해야 하는데, 이는 ″헌법적 요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즉, ″미성년 자녀가 성년에 이를 때까지 이러한 부조리의 상태가 장기간 강요된다면 성전환자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참고 감당해야 하는 고통의 크기나 실존을 위해 부조리에 맞서야 하는 절박함의 강도는 너무나 클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b style=″font-family:none;″>″편견 바로 잡는 것이 국가의 의무″</b>

다수의견은 나아가 성별을 정정한 부모가 있다는 이유로 미성년 자녀가 차별을 당하는 일이 우려된다면, 이를 바로 잡도록 노력해야지 성별 정정을 불허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선 안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차별을 당하는 쪽이 아닌 차별을 하는 쪽을 바로 잡는 것이 국가가 해야할 일이란 겁니다.

″차별하는 쪽의 편견과 몰이해를 바로 잡기 위해 국가가 법률적·제도적으로 노력 해야 하는데, 오히려 ′차별′ 등을 이유로 성별 정정을 불허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대법원은 또 세계인권선언과 유엔 인권이사회를 언급하면서, 독일과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스웨덴, 미국 등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을 허가하고 있고,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는 성전환자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사실을 성별정정을 불허하는 절대적 사유로 취급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기존 판단이 세계적 추세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죠.

다만 이번 대법원 판결은 미성년 자녀가 있으면서 현재는 이혼한 성전환자에게만 적용됩니다. 우리나라는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만약 남녀 부부 중 한 명이 성별을 바꾸면 결과적으로 동성혼 부부가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에도 언제든 성별 정정을 허용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전환자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함과 동시에 미성년 자녀의 복리에 부합하는지를 비례원칙에 따라 실질적으로 판단해 결정해야한다는 의미입니다.

<b style=″font-family:none;″>″성별 정정은 기본권″ 재확인</b>

그럼에도 트랜스젠더이자 A씨를 대리해온 박한희 변호사는 ″성별 정정이 단순히 그냥 법원의 허가나 제도의 어떤 허락 여부가 아니라 개인의 권리로서 누구나 자기의 성별을 표현하고 드러내고 존중받을 수 있는 권리라고 볼 수 있다″면서 ″대법원이 이 부분을 확실하게 짚어준 것의 의미가 굉장히 크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이번 선고를 실시간으로 지켜본 A씨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성 전환자도 동등한 구성원이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라고 낭독할 때, 그동안의 고통을 보상이라도 받듯, 크게 기뻐하며 감동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성소수자단체들은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큰 진전′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이호림 활동가는 ″지금 이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한국과 일본만 가지고 있었던, 예외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도 없었던 요건이 없어졌다″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국제 엠네스티 역시 ″트랜스젠더 권리 인정의 문을 열었다″고 환영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다만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가 경험하는 차별과 낙인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아직 갈 길이 멀다″면서 ″여전히 다양한 외과적 수술을 요구하는 등 굉장히 엄격한 요건에 의해서 법원 판단에 성별 정정이 맡겨져 있는 상태″라고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이 인정된 지 16년.
트랜스젠더의 성폭행 피해가 인정되기 시작한 지 13년.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엔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은커녕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시각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번 판결을 소개하는 보도자료, 가장 마지막에 언급한 ′선언′은 그간 법원의 판단에 상처받은 성소수자들에게 더 큰 의미로 다가오는 듯 합니다.

<b style=″font-family:none;″>″사법은 소수자와 약자를 보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로서의 역할을 할 때 그 존재 의의가 있다″</b>

자료화면 : 유튜브 채널 ′Par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