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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진의 세계는]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의 러시아 편들기

입력 | 2022-04-15 09:12   수정 | 2022-04-15 09:12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러시아와 거리를 두지 못하는 중국의 속내는?</strong>

우크라이나에서의 잔혹한 만행으로 국제 사회의 공적이 된 러시아와 ′공범′이라는 비판까지 받게 된 중국의 속내는 지금 아주 복잡합니다.

중국의 러시아 감싸기는 미국과 맞서기 위해 러시아가 필요하기 때문이라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좀 부족합니다.

미국과 유럽에 비하면 중국에게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수치만 놓고 보면 그리 크지는 않기 때문이죠.

러시아의 경제력은 중국의 광둥성 수준이고 중국의 교역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수입량의 3%, 수출량의 2%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러시아와의 연대는 전 세계의 반러 동맹으로부터 중국이 소외되는 상황을 만들고 있고, 우크라이나 침공은 중국의 숙원인 일대일로 구상을 위기에 빠뜨렸습니다.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유럽과 더 긴밀한 관계를 맺으려 했던 시진핑 주석의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졌죠.

그런데도 중국은 왜 러시아와 좀처럼 거리를 두지 못하는 걸까요?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달러 패권 도전′의 핵심 파트너 러시아</strong>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달러′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가능할 겁니다.

절대적인 기축 통화인 달러는 군사력과 함께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게 하는 기둥이죠.

러시아는 이런 미국 달러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왔습니다.

2012년, 러시아의 랴브코프 외무장관은 기축 통화인 달러에 대한 러시아의 우려를 발표했고, 러시아는 2개의 금융 인프라를 구축하기 시작합니다.

비자나, 마스터 같은 카드 결제를 대체하는 결제 시스템을 만들고, SWIFT라는 기존 국제결제망과는 별도의 러시아 버전 국제결제망, SPFS를 만들기 시작한 거죠.

국제 결제대금의 절반 이상은 미국 주도의 국제결제망인 SWIFT(Society for Worldwide Interbank Financial Telecommunications)를 통해 이뤄집니다.

여기에서 차단되는 국가는 무역이나 투자, 송금에 엄청난 지장을 받기 때문에 여기에서 퇴출하는 제재가 ′금융 핵무기′로 불리는 거죠.

제재를 대비라도 한 듯 러시아는 2017년부터 러시아 버전 SWIFT, SPFS의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여기엔 벨라루스와 아르메니아의 은행들을 포함해 독일과 스위스 소재 러시아 은행 등 수백 개의 은행들이 연결돼 있어서 제재에도 불구하고 제한적이나마 기업과 개인이 글로벌 마켓에 접속할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는 중국을 여기에 끌어들이기 위해 중국과 협상을 해왔습니다.

러시아와 중국이 주도하는 반서방, 반 달러 ′통화 연대′를 치밀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던 거죠.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가 결국은 러시아와 중국의 ′반 달러′ 경제 블록의 형성을 가속하는 부작용이 있을 거라는 우려는 그래서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부터 나왔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꾸준히 ′탈 달러′ 추진해 온 러시아</strong>

러시아는 미국의 제재에 대비해 달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노력을 계속해왔습니다.

2018년부터 러시아 은행은 외환 보유고에서 달러의 비중을 줄이고 금과 유로, 위안의 비중을 늘려왔습니다.

2018년 3월에서 5월 사이엔 미국의 국채 보유액도 960억 달러에서 150억 달러로 줄였습니다.

이 무렵부터 푸틴은 달러를 대체하는 대안 통화도 개발하기로 했고, 여기에 맞춰 러시아의 메이저 에너지 회사들은 달러 사용을 중단합니다.

러시아 최대의 가스, 석유회사인 로즈네프는 2019년에 모든 수출 계약을 달러에서 유로로 전환하는 등 중국과 러시아의 무역에서 유로가 달러를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이런 시도는 중국이 없었다면 아마도 불가능했을 겁니다.

러시아 은행에 따르면 러시아 대중 수출의 83%가 유로로 결제됩니다.

달러 영향권에서 벗어나려는 중국과 러시아의 밀착이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한 거죠.

러시아는 정부가 보증하는 디지털 화폐인 ′디지털 루블′도 도입하려고 합니다.

′디지털 루블′을 쓰면 달러로 환전할 필요가 없으니 달러 시스템을 우회해 직접 거래가 가능합니다.

미국에 도전하려면 달러의 힘을 빼야 하고, 이를 위해 달러 의존도를 줄이자는 데엔 중국과 러시아의 이해가 일치합니다.

이런 공감대가 러시아와 중국을 더욱 밀착하게 했습니다.

2019년에 중국과 러시아는 양국 무역액의 50%까지 양국 통화의 사용을 늘리기로 합의했습니다.

두 나라의 통화 스와프는 서로에 대한 무역과 투자를 촉진해서, 이를 통해 러시아는 2014년 크름 반도 병합 이후 서방으로부터 가해진 제재를 돌파할 수 있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달러 벗어나자′는 반가운 제의</strong>

중국도 ′달러 패권′에 도전하기 위해 뭉치자는 러시아의 제의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러시아와의 통화 동맹은 미국 주도의 서방 중심 금융시스템에서 벗어나 위안화 중심 금융결제시스템을 확장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죠.

러시아와의 연대를 통해 외환보유 수단으로서 위안화의 위상도 높이고, 달러에 맞서 중국의 통화 주권도 강화할 수 있다고 기대합니다.

중국도 역시 달러를 우회해 직접 국제 결제를 하기 위한 디지털 위안화 도입에 몰두하면서 필사적으로 ′달러 의존도′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런 중국에게 작년 러시아의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서방의 결제시스템에 대한 의존도를 함께 줄여나가자고 설득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옛소련 국가들로 구성된 유라시아 경제공동체나 브릭스, 상하이협력기구(러시아·중국·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에 2017년 인도·파키스탄 추가) 같은 서방과 거리를 둔 다자 협력체를 통해, 탈달러화를 추진하고 화폐 주권을 확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유로 이런 러시아와 거리를 둔다면 중국으로선 미국과 경쟁하기 위해 필수적인 ′탈 달러화′에 심각한 차질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전쟁이 애초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러시아는 ′국제 사회의 악마′가 돼버렸고, 중국은 그런 러시아의 편을 계속 들 수도, 그렇다고 선을 그을 수도 없는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하게 된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