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7-20 17:24 수정 | 2022-07-20 17:25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한국 외교부 장관, 4년 7개월 만에 일본 방문</strong>
지난주 토요일(7월 16일) 신임 윤덕민 주일대사가 일본으로 입국했습니다. 평일에 부임해야 특파원들도 일하기가 좋습니다.
A사 특파원 : 왜 토요일에 오는 거야...
B사 특파원 : 아, 다음 주에 장관이 오니까 대사가 미리 와 있어야지.
C사 특파원 : 일이 끊이지 않는구먼...
이런 대화들이 오고 갔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 외교부 장관이 4년 7개월 만에 일본을 방문해 대화를 한다는 것 자체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 대화가 없는 것보다는 바람직한 일입니다.
지난 4년 7개월은 ′일본의 불신′, ′한국의 분노′가 극에 달했던 시간입니다. 2018년 1월 문재인 정부의 위안부 합의 파기는 일본 정치권을 넘어 일본 국민들 전체가 ‘한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적반하장격인 일본의 반응에 식민 지배로 오욕의 시절을 보냈던 우리 국민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같은 해 10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배상과 관련해 대법원이 일본 기업의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 명령을 내렸습니다. 일본은 또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끝난 사인인데 한국 대법원이 부당한 판결을 했다′며 불신에 불신을 더했습니다. 처참했던 강제 징용 조선인들의 삶을 잘 알고 있는 우리 국민들은 일본에 대해 더욱 심한 분노를 갖게 됐습니다.
이렇게 ′불신′과 ′분노′의 4년 7개월이 지나갔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日 한국이 먼저 해결책 제시해야
■ 韓 기시다 총리가 나설 차례</strong>
사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수출규제 문제나 무비자 입국 재개 등 우리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주는 중요한 현안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강제징용 배상 문제가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 현안들을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위안부 합의 파기 문제보다도 강제징용 배상 문제가 지금으로선 더 풀기 어려운 숙제가 됐습니다.
박진 장관은 이번 방일에서 ″일본 기업의 현금화(자산압류 및 매각)가 이뤄지기 전에 강제징용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을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얼핏 들으면 우리 정부가 열심히 해법을 찾겠다는 말로만 들립니다. 그래서 박진 장관 방일 기사를 보고 화를 내는 국민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박진 장관의 발언엔 숨은 뜻이 있습니다.
박 장관은 우리 정부가 ′민관협의회′까지 만들고 강제징용 배상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제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일본에게 설명했습니다. 그러니 일본도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해달라는 게 박진 장관이 기시다 총리와 하야시 외무상을 만난 진짜 이유입니다.
양국 국민들이 한 치의 양보도 할 수 없는 예민하고 예민한 과거사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우리 외교부가 일본에 요구한 방안은 나름대로 합리적이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일본입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조문객으로 전락한 박진 장관</strong>
말 그대로 4년 7개월 만에 이웃나라 한국의 외교부 장관이 어려운 발길을 했습니다. 당연히 극진한 대접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황당함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느 나라가 됐건 양국 간 외교장관 회담을 하면 ′모두 발언′이라고 해서 본 회담에 들어가기 전 언론 보도를 위해 덕담을 주고받는 게 관례입니다. 정 할 말이 없다면 날씨 얘기라도 합니다. 그러나 이번 박진-하야시 회담에선 ‘모두 발언’이 없었습니다.
또 양국 외교 장관 회담이 끝나면 서로 협의한 내용을 정리해 공동 기자회견을 합니다. 서로 문구를 조율하고 양국 언어로 오해가 없도록 세심히 준비합니다. 그런데 박진-하야시 회담에선 이 ′공동 기자회견′도 없었습니다.
기시다 총리와의 만남에선 더욱 황당했습니다. 박진 장관과 기시다 총리가 만나는 장면은 아예 촬영이 안 된다는 겁니다. 기자들의 총리 관저 출입도 막아서 멀리서 찍을 수도 없다고 합니다.
박진 장관과 20분 정도 면담한 기시다 총리는 주로 얘기를 듣다가 ′1965년 한일 수교 이후 구축된 우호관계를 기반으로 모든 현안을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 정도를 했다고 합니다.
면담이 끝난 뒤 기시다 총리는 약식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굳은 표정으로 나타난 기시다 총리는 18초짜리 짧은 멘트를 하고는 질문도 받지 않은 채 서둘러 자리를 떠났습니다.
″박진 장관으로부터 윤 대통령의 아베 전 총리 서거에 대한 조의 메시지가 전달되어 제가 감사의 뜻을 전해달라고 말했다. 그런 얘기가 오고갔다″ 시간을 재어 보니 18초입니다.
한 일본 기자가 ′정상회담 얘기가 나왔느냐′고 질문했지만, 총리는 등을 홱 돌리고 가버렸습니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나 위안부 합의 문제 등 한일 간 핵심 현안은 일절 언급하지 않은 겁니다.
결국 기시다 총리에 의해서, 박진 장관은 얼떨결에 ′조문객′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아베 유훈 정치의 시작</strong>
일본은 왜 그랬을까요.
아베 전 총리 때문입니다.
원래 기시다 총리는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끌고 나서 자민당 내 강경파인 ′아베파′를 눌러버리고 자신만의 정치를 펼칠 생각이었습니다. 내각 인사도 자기 마음대로 하고 자민당 당직 인사권도 휘두를 생각이었습니다. 아베의 힘을 뺀 뒤 ′기시다표 정책′들을 내놓을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선거 이틀 전 아베 전 총리가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일본의 부활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 괴한의 총탄에 유명을 달리한′ 아베 전 총리는 지금 일본에선 순교자처럼 추앙받고 있습니다.
아베의 죽음 뒤 구심점을 잃고 몰락할 줄 알았던 보수 강경파도 이런 분위기를 타고 오히려 강력히 결집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생전에 아베 전 총리가 했던 주장과 정책을 마치 ‘유훈’처럼 전파하고 있습니다.
기시다 총리와 하야시 외무상이 박진 장관을 홀대한 건 ‘일본 보수파’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섣불리 한국과 타협하는 모습을 보였다간 보수 강경파들의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광기 어린 일본 보수 강경파들의 분노가 기시다 총리를 향할 경우, 어쩌면 총리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지도 모릅니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따른 일본 기업들의 자산 매각이 이르면 이번 여름에 시작된다고 합니다.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한 한국이나 강경파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일본이나 어려운 숙제를 풀기엔 너무 촉박한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