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곽동건

"아! 명치 쪽이 내려앉는 느낌"‥미혼모 외상손님 찾아간 사장

입력 | 2023-05-03 15:47   수정 | 2023-05-03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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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밤 10시쯤 한 음식점에 배달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참치마요밥 두 개에 야채죽 하나로 1만 4천5백 원.

그런데 주문 요청 사항에 적힌 문구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미혼모에 임신 중인데, 너무 배가 고프지만 당장 돈이 없다″는 손님.

″염치없지만 부탁드려 본다″며 ″만약 주문된다면 돈은 다음 주말 전에 이체해 드리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업주는 뭔가 신경이 쓰였다고 합니다.

[김 모 씨/음식점 사장]
″원래는 그런… 입금이 되지 않은 주문에 대해서는 (음식을) 보내주지 않았어요. 근데 왠지 저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는데… 제가 직원에게 ′야 이거는 거짓말이라서 내가 속는 한이 있더라도 보내주는 게 낫겠다′ 이렇게 해서…″

그래서 손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김 모 씨/음식점 사장]
″′음식 보내드릴 테니까 맛있게 드시고 연락 부탁드린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정말 죄송하다′고 하면서 목소리가 굉장히 어려 보였거든요. 막 통화하시면서도 감사하다는 말을 하면서 동시에 울음이 터지셔서 막 이렇게 울었어요.″

그 뒤에도 손님의 목소리가 자꾸 생각났던 사장은 차라리 손님이 거짓말을 한 것이라도 좋으니 미혼모가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김 모 씨/음식점 사장]
″와이프랑 두 딸이 있는데 그런 부분에서 좀 감정 이입이 된 것 같기도 하고요.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만약에 정말 거짓이 아니라면, 혼자 임신 중인 미혼모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그것 또한 마음이 불편할 것 같고…″

그리고 이틀 뒤, 이 손님에게서 장문의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사장님 덕분에 음식을 잘 먹고 있다″며 ″아직 부모님에게도 임신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도 갑자기 못하게 된 상황에서 어쩔 줄 몰라 염치없게 부탁드렸는데, 정말 감사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돈이 들어왔다″며 곧바로 음식값을 보냈습니다.

미혼모를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든 사장은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며 울먹이던 여성을 설득해, 부인과 함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만나 보니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살고 있던 손님, 19살 미혼모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몇 년 전 학생 시절부터 가게에 자주 와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곤 했던, 사장도 기억하는 얼굴이었습니다.

[김 모 씨/음식점 사장]
″항상 큰 목소리로 인사하면서 항상 웃으면서 다 먹고 나면 정리를 항상 해놓고… 이런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어릴 때부터 봤던 친구라 ′아 너였냐′고 이러면서 좀 약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여기 명치 쪽에서… ′하필 왜 너일까′ 이런 생각에…″

울컥했던 건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김 모 씨/음식점 사장]
″보내줬던 음식들이 밀폐용기에 조금씩 조금씩 나눠서 담겨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거 양 얼마나 된다고 이렇게… 나눠 놓은 거야′ 이랬더니 ′주중에 돈이 언제 들어올지 몰라서 배고플 때마다 조금씩 먹으려고 남겨 놓았다′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사장은 미역국을 직접 끓여줬고, 아내는 조만간 가까운 산부인과부터 같이 가보기로 했습니다.

또 이 여성에게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면 자신의 가게에서 간단한 재료 손질이라도 하루 2시간 정도 아르바이트로 해보겠냐고 제안했습니다.

[김 모 씨/음식점 사장]
″출산을 하기까지라도 좀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어서 일단은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한에서 최대한 생각을 했는데… ′시켜만 주시면 너무 열심히 하고 싶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흔쾌히. 저랑 와이프랑 같이 도울 수 있는 부분에서는 최대한 안전하게 출산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최대한 돕고 싶습니다.″

이런 내용을 자영업자커뮤니티에도 올린 사장은 글을 보고 부정적인 반응이나 의심도 많았다면서, 있는 그대로 알리고 싶어서 인터뷰에 응했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