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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인터뷰] "한국이 싫다", 그럼 어떻게 할까

입력 | 2015-09-30 15:03   수정 | 2015-09-30 17:36
베스트셀러 <한국이 싫어서>의 작가 장강명을 만났다. 만 40살 소설가는 말라있었다. 바지가 펄럭거렸다. 61kg이라고 했다. 그는 점심밥도 적게 먹었다. 비교가 됐다. 이쪽을 쳐다보는 것 같아 배에 힘을 줬다.
시비조로 물었다. 당신은 왜 말랐냐. 덜 먹기 때문이냐. 집필의 고통이냐.
″집안 일 때문″이라고 했다. 장강명의 현직은, 전업주부 겸 소설가다.


소설가 장강명은 :
1975년 생. 동아일보 기자로 11년 일했다. 자살을 저항의 수단으로 삼는 청년들을 소재로 한 소설 <표백(2011)>으로 등단해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했다.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 문학상, <2세대 댓글부대>로 4.3 평화문학상,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 작가상을 각각 수상했다.
″한국이 싫어″ 떠나는 20대의 이야기 <한국이 싫어서(2015)>가 출간 3개월 만에 7쇄에 돌입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 대열에 올랐다. 2년 전 신문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이자 주부″임을 선언했던 그는, 물청소를 자주 안 해도 되는 ′건식(乾式) 화장실′ 전도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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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줄거리는 :
금융회사 신용카드 승인팀에서 근무하는 20대 여성 ′계나′는 사표를 제출한다. ″명문대를 나오지 않았고, 경쟁력도 없는 인간이자 2등 시민이며, 멸종돼야 할 동물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가족과 애인을 뿌리치고 호주 이민을 떠난 계나는 국수가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학원을 다니고 회계학 학위까지 받는다. 하지만 그녀에게 호주는 또 다른 정글이었다…



왜, ″한국이 싫어?″
<한국이 싫어서>는 도발적인 제목이다. 20대 여성이 회사를 그만두고 가족, 애인과 이별하며 호주로 이민 가는 내용을 다뤘다. 굴곡 없는 줄거리, 사실적이고 세밀한 묘사, 잘 읽히는 간결한 문장, ″읽고 나면 독자의 삶을 과거와는 다른 곳으로 옮겨놓는 능력을 갖춘″ 작품(문학평론가 허희)이란 평가를 받았다.

호평으로 시작되는 인터뷰는 늘 어색하다. 큰 소리 내어 함께 웃었다. 매우 어색해졌다.

Q. 왜 하필 <한국이 싫어서>인가.
A. 인터넷 뉴스 사이트의 ″이민가고 싶다″는 댓글들이 계기가 됐다. 한국이 싫어 떠나는 사람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 때(2014년) 마침 소치 동계 올림픽이 열렸다.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선수가 메달을 싹쓸이했고, 한국 선수들은 대부분 탈락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거꾸로, 안현수에게 뭔가 동질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끼더라. 제목을 ″한국이 싫어서″ 정도로 세게 정해도 무리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Q. ″제목이 좀 지나쳤다″, 이런 반응 없었나?
A. 아예 없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훨씬 없었다. 그래서 놀랐다. 40, 50대나 그 이상 노년층이라고 해도, ′이렇게 살기 좋은 나라가 어디 있냐′는 말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피곤한 사회이고 스트레스 강도가 아주 심한 사회라는 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젊은 층의 불만의 목소리가 불편해서 반박하는 정도?
나도 <한국이 싫어서>라는 제목이 파격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출판될 즈음 공교롭게 ′헬 조선′같은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자기가 태어난 나라를 ′헬(hell 지옥)′이라 부르고, 심지어 대한민국이라는 말도 안 붙이고 ″이건 근대국가가 아니라 전근대 국가, 조선이야″라고 부르는 현상, 또 여기에 통쾌해하는 젊은이들이 있는 상황. 이것에 비해 <한국이 싫어서>는 정말 온건해 보이더라.

Q. 독자들은 무엇에 열광했을까.
A. 울고 싶은데 뺨때려준 책 아닐까? 어느 인터넷 서점의 독자층을 살펴봤는데, 주로 20, 30대 여성 독자들이 많이 샀다고 하더라. 이 얘기 누가 해줬으면 좋겠는데 누가 하니까, 갑자기 ′울컥′하면서 감정 해소를 많이 했던 것 같다. 다들 스트레스를 왕창 받고 있고, 항의하고 싶은 거다. 한국사회에 대해서.
나 진짜 이 사회가 싫다, 이 말을 하고 싶은데, 이미 SNS나 인터넷 게시판에서 많이 했는데, 그런 음지에서 떠돌다가 갑자기 양지로, 번듯한 책 모양으로, 깔끔하게 인쇄된 형태로 얘기기 나오니까, 양지에도 우리 얘기가 나왔구나, 하면서 대리만족을 느끼지 않았나 싶다.



나는 한국을 싫어하지 않는다

더 물어야 했다. 얘기가 그냥 이대로 끝났다면, 장강명은 여러 번 공격받았을지 모른다. 젊은 세대의 ′좌절 유행′에 편승한 것 아니냐는 식으로.

Q. 당신도 ″한국이 싫어서″ 이 책을 쓴 건가.
A. 나는 한국이 싫다고 말하면 안 되는 사람이다. 한국이 싫다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 책임감을 느껴야 되는, ″한국을 이렇게 만든″ 사람 쪽에 있다. 나 자신을 대단하게 여기는 게 아니라, 나까지 구조 탓을 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싶지 않았다. 소설 쓰는 사람으로서 한국사회에 문제를 던지되, 조금이라도 개선되는 방향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싶었다.
분통을 터뜨리는 20,30대를 두고 그 옆에서 같이 분노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20,30대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젊은 세대들이 ″한국이 싫다″고 아파하며 외치는 와중에 작가인 나는 뭘 했나, 앞으로 뭘 해야 하나, 뭘 얘기해야 하나, 자문하고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누렸던 여러 가지 것들, 직장, 졸업 학교, 어느 모로 보나 나는 한국의 기득권이었다. 이 책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알겠는데도 궁금했다. 구체적으로 뭘 얘기하고 싶었을까.
Q.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나?
A. 첫째. 입시와 학벌, 취업준비와 또 학벌. 스펙이나 집안 배경 지역 등등. 이런 얘기에 스트레스와 상처받는 사람들, 그런 얘기에 매몰돼 얄팍해지거나 초라해지는 사람들, ′이거 너무 부조리하지 않아?′라고 분통 터뜨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둘째. 그 부조리가 엄청나지만, 어찌됐든 살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면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뭔가를 시도해보자′고 한 거다. 깊디깊은 자기 연민에 빠지지만 말고.



′떠난다′에 밑줄 금지
신문기자 출신인 장강명은 쓰기 전에 장기 취재를 한다. 저자 후기에 학술논문처럼 인용이나 영감(靈感)의 ′출처′도 밝혀놓는다. <한국이 싫어서>도 실제 호주 유학생과 이민자의 인터뷰가 바탕이 됐다. 한국이 싫어서, 용기 있게 이민을 간다고 해도, 그곳 역시 ″2등 시민으로 취급받는 굴레와 차별″이 있을 수 있다. 낙원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Q. 그러니까. 떠나는 게 답이 될까?
A. 독자들이 수긍할 수 없는 극단적인 질문을 던진 뒤에, 책을 다 읽고 나면 그 질문을 생각하는, 그런 얘기를 쓰고 싶었다. 한국이 싫다, 진짜 한국이 살기 힘든 곳이구나,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지? 이런 생각부터 하게끔 만드는 것이 나의 목적이었다. 다 같이 떠나버리자, 선동하는 것은 나의 목적이 아니다.
주인공 ′계나′의 얘기로 하자면, 익숙한 불행이 아닌 낯선 환경을 찾아 떠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었다. 다만, 한국이 싫은 건 싫은 건데, 모든 문제를 다 한국 탓으로 돌리면서 또는 사회 탓으로 돌리면서 자기 연민에 빠지지는 말자, 그런 얘기도 좀 하고 싶었다.

Q. ″한국이 싫어서, ( )한다″에 들어갈 말은?
A. 책 초반부는 ″한국이 싫어서″로 시작하는데, 끝날 때는 주인공 계나가 한국을 싫어하지 않는다. 약간 무관심한 상태가 된다.
주인공은 한국을 두 번 떠난다. 두 번째 떠날 때는 한국이 싫어서 떠나는 게 아니라 자기를 찾으려고 떠나는 거다. 일단은 ″한국이 싫어서, 한국이 싫지만, 그래도 뭘 한다″가 좋다고 본다. “한국이 싫은데, 아무것도 안 한다”가 있을 것이고, ″한국이 싫어서(싫어도), 뭘 한다″가 있을 것이다.

Q. 당신의 메시지는, 훈계와 뭐가 다른가.
A. 「세상이 잘못됐는데 왜 가만히 있냐. 왜 너희들은 돌을 들지 않냐」, 이런 목소리가 있고. 「너희는 참 나약해빠졌다. 불평할 여유가 있으면 그 시간에 노력을 더 해라」, 이런 목소리도 있을 것이다. 또 「20대에 미쳐라, 30대에 다시 한 번 미쳐라, 40대에 또 미쳐라」, 이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모두 20, 30대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얘기다. 정답도 아니다. 익숙하고 뻔한 훈계와 독설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철학을 갖고 자아를 단단하게 만드는 기회로 만들어보자는 얘기를 덧붙이고 싶었다.
내가 속해 있는 한국은 ′복원시켜야 할′ 공동체다. 이 소설도 공동체 복원 작업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탈북자, 언론 문제 등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을 준비 중인 그는, 인생을 걸고 베스트셀러를 계속 내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소설을 쓰는 첫 번째 이유가 돈은 아니다. 세 번째 이유쯤 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인생을 걸고 어떤 일을 할 때, 세 번째 이유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이 밥벌이의 싸움을 피하면서 다른 방식으로는 현실에 참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첫 번째, 두 번째 전장을 가벼이 여긴다는 의미가 아님을 잘 알아주시리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어떤 곳이냐고 물었다. (작품 소재가 끊임없이 나와) ′좋은 곳′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취재 · 글 : 장준성
촬영 · 편집 : 최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