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스크이재민

끼니 거르고 17시간 일해도…'법 사각지대' 택배기사

입력 | 2018-10-03 20:29   수정 | 2018-10-03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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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비인간적이라고밖에 말하기 힘든 택배 물류센터 아르바이트생들을 노동 환경을 저희 ′바로 간다′에서 세 번에 걸쳐서 보도해 드렸는데요.

아르바이트생뿐 아니라 택배 업계 종사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택배 기사 5만 명도 속도 경쟁에 내몰리면서 살인적인 노동에 시달리고 있지만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재민 기자가 이 택배 기사의 하루를 따라가면서 그 이유를 파헤쳐 봤습니다.

◀ 리포트 ▶

가로등이 꺼지지 않은 아침, 택배 기사 송세명 씨가 집을 나섭니다.

퇴근한 지 6시간 만입니다.

[송세명/택배 기사]
″수험생 때처럼 알람 시계를 잡고 계속 버티는 경우도 있고, 시간을 놓치면 차를 댈 수가 없고…″

화물 터미널에 도착하자 상자가 밀려듭니다.

자판기 커피를 들었다 바로 내려놓고 짐 싣기를 반복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나와서 일을 하지만 이곳 택배 터미널에서 일하는 택배 기사 60명은 모두 법적으로는 근로자가 아닌 개인 사업자입니다.

일반 회사원들처럼 한 직장을 계속 출퇴근해도 택배 대리점과 계약을 맺는 ′특수 고용직′이라 몇 년을 일해도 퇴직금이 없고 교통비·식대·상여금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송세명/택배 기사]
″막장이죠 막장. 돈이 급히 필요한 애들이 와서, 옛날 탄광에 들어가듯이.″

6년차 택배 기사 송 씨의 하루 배달량은 400여 개, 식사는 거르고 화장실은 뛰어서 다녀옵니다.

배달 건수에 따라 700원에서 1천 원을 받기 때문에 하나라도 더 배달해야 합니다.

출근한 지 12시간이 지나 마지막 배송지인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택배 물품은 3분의 1 정도만 배송이 끝난 상태입니다.

[송세명/택배 기사]
(저녁도 거르시는 때가 많겠어요.)
″저녁은 안 먹은 지 오래 됐습니다.″

아홉 동을 더 돌고, 17시간 만에 퇴근합니다.

4시간 일했을 때 30분 쉬고 하루 8시간·일주일 40시간 이상 일하면 초과 근무 수당을 줘야 하는 근로기준법은 다른 세상 얘기입니다.

택배 기사는 산업재해보상보험도 의무 가입 대상이 아닙니다.

[조재철/택배 기사]
″무거운 것을 들다가, 인대가 좀 파열된 적이 있어요. 그럴 때도 아무런 혜택을 받을 수가 없고, 1도 쉴 수가 없어요.″

영국이나 독일은 법으로 특수직 근로자들을 보호하고 일본도 판례로 근로자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사업자로만 보고 있습니다.

[오세경/노무사]
″이분법적인, 근로자냐 근로자가 아니냐에 대한 판단 형태로만 구분하다 보니까 이런 법의 사각지대가 있는 상황이고요.″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07년부터 특수 고용 노동자 권리를 보장하라고 권고했지만 아직은 법으로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MBC뉴스 이재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