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뉴스데스크
엠빅뉴스
14F
정치
사회
국제
경제
연예
스포츠
뉴스데스크
차주혁
콜 못 잡는 대리기사‥알고리즘 뒤 '진짜 사용자' 때문?
입력 | 2021-11-19 20:12 수정 | 2021-11-19 20:58
Your browser doesn't support HTML5 video.
◀ 앵커 ▶
대리운전, 음식배달, 택배는 물론 이제는 번역, 청소까지 휴대전화의 앱을 거쳐서 일을 하는, 온라인 매개 노동, 이른바 플랫폼 노동자는 2백만 명이 넘습니다.
하지만 고용주가 따로 없다는 이유로 법은 이들의 노동권을 보호하지 않습니다.
시대에 뒤처진 근로기준법 연속 보도, 노동 문제를 전문 취재하는 차주혁 기자입니다.
◀ 리포트 ▶
목요일 밤 여의도.
대리운전을 하는 김형범 씨의 스마트폰 앱에 콜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잡을 수 없습니다.
손님이 바로 근처인데도 배정이 안 됩니다.
한 시간만에 간신히 콜을 잡아 달려갔지만, 도착하자마자 배차가 취소됐습니다.
[김형범/대리운전 기사]
″빼버렸어요.″
(취소됐다고요?)
″네, 임의적으로 빼버린 거예요, 또. 제가 여기까지 왔는데도 빼버렸어요.″
손님은 넘쳐나고 다른 대리기사들은 다 콜을 잡는데, 유독 김씨는 왜 콜을 못 잡는 걸까?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6월 김 씨는 콜을 받고 달려가다 다리를 다쳐, 손님을 태우지 못했습니다.
대리운전 업체는 곧바로 김씨에게 ′락′, 즉 배차제한을 걸었습니다.
같은 앱을 사용하는 13개 대리운전 업체들이 모두 똑같이 김 씨에게 ′락′을 걸었습니다.
[전직 대리운전 업체 직원]
″기사들을 길들인다고 하거든요. 하루 종일이고 또는 한 달까지도 ′락(Lock)′을 걸어버립니다. 실직을 하게 되는 거죠. 그 시간 순간부터.″
대리운전으로 생계을 꾸리는 김 씨는 사실상 해고됐습니다.
[김형범/대리운전 기사]
″자기들이 임의적으로 올려서 이렇게 사람 살아가는 생계를 완전히 마비를 시키고 있는 겁니다.″
플랫폼 노동.
기업들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다고 광고합니다.
정말 자유로울까?
일단 일을 시작하면, 모든 건 알고리즘이 지시합니다.
어디로 가라.
몇 분 안에 배달해라.
돈은 얼마 받아라.
사용자 대신, 알고리즘이 결정합니다.
[박정훈/라이더유니온 노조위원장]
″왜 이 가격이 됐냐고 물어보면 ′알고리즘이 정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사용자가 없다는 이유로, 플랫폼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라 자영업자 취급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 알고리즘을 짜는 건 결국 사람입니다.
알고리즘 뒤에 진짜 사용자가 숨어있는 겁니다.
[전직 대리운전 업체 직원]
″그게 시스템이나 프로그램으로 가능합니다. 관리자 자체적으로 매뉴얼화가 돼 있고요.″
한국의 플랫폼 노동자는 올해 220만 명.
전체 취업자의 8%를 넘어섰습니다.
기업들은 전통적인 고용이 아니라, 플랫폼 노동을 빠르게 늘리고 있습니다.
대리운전, 음식배달은 물론, 청소, 번역, 컨설팅 같은 일까지 이제 플랫폼에서 거래됩니다.
[김종진/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근로기준법은 기준이 되는 일 하는 사람의 법입니다. 그런데 기업들은 이걸 빠르게 회피하거나 지키지 않아도 되는 방식으로 계약과 고용을 바꾸는 방식인 거죠.″
플랫폼 노동이 논란이 되자, 국회는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나섰습니다.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
법안 이름부터 노동이나 노동자라는 말이 없습니다.
여전히 이들을 노동자로 보지 않겠다는 취지입니다.
[김주환/전국대리운전노조 위원장]
″′플랫폼 노동자들에게는 온전하게 노동 기본권을 보장하지 않고, 뭔가 특별한 영역에 이 틀을 만들겠다.′ 이런 의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반면 다른 나라들에서는 플랫폼 노동자도 노동법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독일 연방노동법원은 플랫폼 종사자가 자영업자라던 1, 2심을 뒤집고, 노동자가 맞다고 최종 판결했습니다.
프랑스, 영국, 스페인, 미국에서도 비슷한 판결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MBC뉴스 차주혁입니다.
영상취재 : 나경운, 남현택 / 영상편집 : 위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