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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형
태극기 만세운동했던 19살‥일제 판결문에 숨겨진 독립투사들
입력 | 2022-03-01 20:25 수정 | 2022-03-01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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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한 대학 연구소가 일제 강점기 시절 판결문과 기록들을 분석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 투사 4백 22명을 찾아냈습니다.
일본 헌병대의 만행에 저항하다 총살되거나 옥살이를 했음에도 조명받지 못했던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를, 김민형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삭발한 머리에 짙은색 수의을 입고 굳게 입을 다문 한 남성.
이름은 조명원, 광무 5년, 즉 1901년 7월 2일생으로 당시 나이 19살입니다.
키는 5척 3촌 2분, 157cm에 신분이 ′양반′이라고 적혀 있는데 보안법 위반으로 1년 6개월 동안 서대문감옥에 수감됐습니다.
항일 운동이 한창이던 1919년 3월, 인천 용유도 마을 광장에서 태극기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됐습니다.
조선총독부가 만든걸로 추정되는 감시 대상 인물 관리카드와 판결문으로 103년 만에야 행적이 확인됐습니다.
역시 항일운동을 한 삼형제의 기록입니다.
1919년 4월 8일, 큰형 조백선은 독립만세운동을 조사하러 나온 일본 헌병대에 항의하다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스물 여섯살 동생 조정삼이 형을 쏜 헌병을 새끼줄로 묶고 때렸다가 체포됐고, 막내 조정상은 쓰러진 큰형을 업고가다 다른 헌병대에 붙잡혔습니다.
두 동생은 ′죄없는 형을 죽인 정당방위′라고 항변했지만 2년, 3년 동안 옥살이를 했습니다.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가 일제의 판결문과 신문기사 수십만 쪽의 일부를 분석한 결과, 이렇게 알려지지 않은 독립투사 4백22명이 새롭게 확인됐습니다.
대부분 농민, 중고등학생 같은 평범한 인물들이었습니다.
[이태룡/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장]
″나라를 잃지 않으려고 또는 되찾기 위해서 싸웠던 사람들이거든요. 그분들의 공적을 찾고 기리는 것은 국민된 자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생존자는 없고, 후손들도 연락이 닿지 않고 있습니다.
이 연구소는 아직도 기록 속에 숨겨진 인물들이 적지 않다면서, 이번에 발굴한 4백여명을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로 신청할 예정입니다.
MBC뉴스 김민형입니다.
영상취재: 전승현/영상편집: 배우진/영상출처: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