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스크구나연

[집중취재M] 성별 다르고 태어난 해의 띠 몰라도‥대출 내주는 은행들

입력 | 2022-07-18 20:29   수정 | 2022-07-18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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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쉽고 간편한 비대면 금융 서비스.

신분증 사진만 있으면 계좌 개설은 물론이고 거액의 대출까지 받을 수 있게 됐죠.

이런 비대면 대출의 빈틈을 파고드는 사기 사건들, 저희도 여러 번 보도해 드린 바 있는데, 여전히 나아진 건 없었습니다.

피해를 입고도 1년이 넘게 조사와 소송에 시달리고 있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구나연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 리포트 ▶

50대 여성 김 모 씨는 작년 9월, 난데없이 1억 원 넘게 빚이 있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자녀의 휴대전화 상담 때문에 방문했던 휴대전화 판매점 직원이 문제였습니다.

상담 당시 김 씨의 신분증을 몰래 촬영한 뒤, 신분증 사진을 이용해 계좌 개설은 물론 휴대전화까지 만들어 대출을 받은 겁니다.

[김 모 씨/금융사기 피해자]
″범인이 하나를 더 만든 거죠. (휴대전화가) 제 명의니까 본인 인증을 하고, 신분증 촬영본으로 대출을 발생시키고.″

피해자 김 씨는 여성인데, 신분증을 도용한 판매점 직원은 남성.

성별조차 다른데 어떻게 금융기관에서 계좌를 개설하고 억대의 대출까지 받은 걸까.

당시 본인확인을 위해 은행 직원이 전화를 걸었지만, 판매점 직원은 태연하게 도용한 신분증을 보며 여자 목소리를 흉내내 답했습니다.

[콜센터 직원 - 가해자]
″<성함, 주민등록번호 불러주세요.> 김00, 000000-2000000 <고객님, 띠가 무슨 띠세요?> 띠 말씀하시는 거예요? <네… 여보세요?>″

은행 직원이 갑자기 태어난 해의 띠를 묻자 연결이 끊긴 것처럼 전화를 끊었다가 검색한 뒤 답변하기도 합니다.

[콜센터 직원 - 가해자]
″<네, 전화가 끊어져서.> 지하여서 잘 안 들렸어요. <띠가 무슨 띠세요?> 소띠입니다.″

다행히 판매점 직원이 경찰에 붙잡혔지만 김 씨는 빌리지도 않은 1억 원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 올까 봐 지금도 조마조마합니다.

신분증 실물을 촬영한 사진은 물론, 사진을 다시 촬영한 사진만 보고 금융기관들이 거액을 대출해준 사례도 있습니다.

한 인터넷 전문은행의 경우인데, 공지에선 ″사본이나 임시 신분증은 안 된다″고 돼 있습니다.

하지만 신분증 촬영본만 갖고도 계좌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피해자 촬영 영상]
″넘어가 져. <넘어가 진다고?> 어. <참나.> 대출 이것도 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거잖아.″

심지어 분실신고가 이뤄진 신분증 촬영본으로 대출이 이뤄진 경우도 있습니다.

인공지능 등을 활용한 비대면 인증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지만, 아직까지는 촬영된 신분증이 실물인지 복사본인지 판독하지 못하는 겁니다.

[김호윤 변호사/경실련]
″사람을 확인하는 기술이 아직 안 도입된 상태에서… (비대면 절차에서) 사람을 확인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이런 사이 신분증을 도용당하거나 휴대전화나 컴퓨터에 저장해둔 사진을 분실 또는 해킹당해 거액의 금융사기 피해를 입는 경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금융기관은 물론 당국도 피해 구제에 소극적이어서, 소송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MBC뉴스 구나연입니다.

영상취재: 이관호 / 영상편집: 이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