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스크이소현

"제 마음 속에 있는 걸 그려내요"‥장애 딛고 피워낸 산수화

입력 | 2023-11-26 20:22   수정 | 2023-11-2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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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여기 산수화 한 점 보시지요.

시각을 거의 잃고 하반신까지 마비된 작가가 그린 작품이라면 믿어지십니까.

중증 장애의 고통을 딛고 화선지에 영혼을 담아내는 작가가 있습니다.

이소현 기자가 추보배 작가를 만나봤습니다.

◀ 리포트 ▶

웅장하게 펼쳐진 협곡의 풍경.

그 사이로 물줄기를 따라 돛단배가 유유히 흐릅니다.

가을 옷을 입은 한라산 삼각봉 아래, 고즈넉한 집을 지어 자연과 벗삼아 살아갑니다.

마음 속의 풍경, 산수화입니다.

그림을 그린 주인공은 중증 장애를 앓고 있는 추보배 작가입니다.

휠체어에 앉아 돋보기에 의지한 채 붓을 과감하게 휘두르고, 집게로 화선지를 바닥에 옮겨 전체 구도를 잡습니다.

10년 전 뇌수막염으로 쓰러져 하반신 마비에 시각과 청각을 거의 잃었지만 어릴 적 좋아했던 그림에 대한 일념으로 병마의 고통을 견뎠습니다.

쉰이 넘어 뒤늦게 시작했지만 스스로 책과 사진을 보며 하루 10시간 이상 습작을 거듭해 전국 대회에서 10여 차례 입상하는 성과도 이뤘습니다.

[추보배 / 산수화 작가]
″눈이 잘 안 보이고, 색깔도 명도가 강하지 않으면 분간이 안 돼요. 그러니까 진짜 정신력으로 그림을 그리고 제 마음속에 있는 걸 만들어내요.″

그림을 그린다는 이유로 요양원에서 쫓겨나길 수 차례.

옷 한 벌 없이 병원에서 퇴원한 작가는 도움을 받아 그림을 배울 수 있었다며 주변에 선한 영향을 베풀기 시작했습니다.

빌라 복도는 갤러리로 변했고 소외계층과 복지관 등에도 그림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웃들도 거동이 불편한 작가를 도와 그림을 옮기고, 도록을 만드는 등 전시회 준비를 돕고 있습니다.

[이신철 / 주민]
″성한 사람도 못 그리는 어렵다고 하는 산수화를 한 폭에 담는다는 거는 참 어려운 건데 장애를 딛고 그리는 게 본받을 만한 분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그림에 매진한 지 벌써 10년.

′무명의 10년, 산수화로 꽃 피우다′를 주제로 다음 달 9일부터 제주도 문예회관에서 마음 속의 산수화 40여 점을 선보입니다.

전시 이후의 작품은 모두 기증할 계획입니다.

[추보배 / 산수화 작가]
″′아, 이거는 무명 추보배 그림이구나′… 정말 편안하고 아주 사람의 마음을 닮은 아름다운, 편안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산수화를 만들어서 다 내놓겠습니다.″

MBC뉴스 이소현입니다.

영상취재: 박재정 / 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