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3월, 세계 추상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마크 로스코′ 전을 최초로 기획했습니다.
영부인 시절이던 지난 2023년 4월엔, 한·미 정상회담에 동행해 질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 부인과 워싱턴 국립미술관에서 ′마크 로스코′ 전을 관람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추상화를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대통령실은 국립현대미술관에 보관 중이던 유명 추상화 작품을 빌려 갔습니다.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고 윤형근 화백의 <무제>.
한국 수묵 추상의 거장인 고 서세옥 화백의 작품 <사공과 학>.
역시 대표적 추상화가인 고 김창열 화백의 <회귀> 등을 포함해 모두 95점의 미술품을 순차적으로 빌렸습니다.
대여 기간은 짧게는 두 달에서 길게는 2년 이상이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빌린 95점 중 18점의 작품은 그 목적이 ′전시 개최′로 명시됐습니다.
당시 대통령실과 현대미술관이 주고받은 대여 약정서입니다.
′대통령 비서실 안′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작품 특별전′이란 이름의 전시회를 열어 빌려 간 미술품을 전시하겠다고 돼 있습니다.
[☎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 A]
″<18점이 어떤 명목으로 대여받은 건지 이게 확인이 되나요?> 공개 전시를 일단 목적으로 한다고 신청서를 제출을 했어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작품 특별전′이라는 전시로 빌렸던데 확인해 보셨습니까?> 그건 제가 답변을 해드릴 수 없고요.″
과연 18점의 작품 모두 대여 목적대로 ′전시회′를 여는데 사용됐을까.
지난 2022년 7월 25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약식 기자회견이 열린 용산 대통령실 1층 로비.
발달 장애 예술가들이 그린 작품 15점이 벽에 걸렸습니다.
[윤석열/당시 대통령 (2022년 7월 25일)]
″이것도 내가 몇 년 전에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그 장애인 전시 가서 본 그림이야. 그 작가.″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개최한 것으로 공식 확인되는 유일한 미술품 전시회였습니다.
그런데 이 전시회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빌려 간 미술품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스트레이트>가 확인한 결과,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이 빌려 간 미술품 중 대통령실에 전시됐던 사실이 확인된 건 국무회의실에 걸린 고영훈 화백의 그림 3점.
그리고 지난 2023년 5월, 독일 총리가 대통령실을 방문했을 때 전시했던 고 노은님 화백의 그림 한 점 등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실이 빌려 갔던 작품들은 윤 전 대통령 파면 직후인 지난 5월, 모두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반환됐습니다.
◀ 최경재 기자 ▶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이 ″전시회를 열겠다″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빌려 간 작품들.
전시가 확인된 5점을 뺀 나머지는 전시된 기록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길게는 2년 이상 빌렸는데 과연 어디에 보관하다, 다시 반납한 걸까.
<스트레이트>는 먼저 이 작품들을 직접 빌려 갈 때, 그리고 대여기간을 연장할 때 제출됐던 대통령실의 공문부터 살펴봤습니다.
<B>■ 어디에 전시했나</B>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미술품을 빌린 뒤, 여러 차례 ″작품 반납 일자를 연기해달라″며 공문을 보냈습니다.
대여 기간 연장을 신청할 때는 작품 상태 확인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작품을 설치한 장소가 보이는 사진, 그리고 사진을 촬영한 날짜와 시각을 필수적으로 적어야 합니다.
그런데 대통령실이 대여기간 연장을 신청하면서 낸 작품상태 확인서.
필수 정보와 사진란에 모두 ′보안′이라는 글자만 적혀있습니다.
[류병학/미술평론가]
″상태 확인서가 굉장히 중요하죠. 어디에 배치돼 있고 어떻게 관리되고 있고 거기 컨디션이 어떤지는 굉장히 중요한 상황입니다. 당연히 기재가 돼야 된다라고 저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게 굳이 보안하고 관련이 있을까 싶습니다.″
<스트레이트>는 윤석열 정부 기간 동안 국립현대미술관 작품을 빌려 오는 업무를 담당했던 대통령실 학예사 2명에게 연락해 봤습니다.
″미술품을 대통령실 어디로 가져갔는지″, ″혹시 관저로 가져가진 않았는지″ 물었습니다.
2명 모두 작품을 빌려 온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디에 설치했는지, 또 빌릴 작품은 누가 선정했는지에 대해선 명확히 답하지 않았습니다.
[☎ 박OO/당시 대통령실 학예사]
″<한남동 관저로 가본 사실이 없다고…> 일부 갔을 수도 있는데 전혀 모르겠어요. 한남동 관저가 그분들이 숙식도 하시는 곳이지만 거기도 행사장 같은 게 있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미술품 선정은 누가 하는 거예요?> 정식 행정 절차를 했기 때문에…″
[☎ 김OO/당시 대통령실 학예사]
″(관저에) 들어가면 약간 전통적인 것들로 인테리어 돼 있잖아요. 한지 같은 걸로 꾸며져 있고. 그런 그림을 걸 벽은 없었어요.″
결국, 추상화를 비롯한 미술작품들의 사용처를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은 지난 2023년, 윤 전 대통령 부부가 경복궁 명성황후 처소를 방문한 직후, ″전시용으로 쓰겠다″며 국가유산청에서 공예품 9점을 빌려 갔었습니다.
이 공예품을 빌려 갔던 당시 대통령실 학예사는 최근, 당시 대통령실이 아닌 ″한남동 관저로 왕실 공예품을 가져갔다″고 털어놨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용도로 사용했는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 김OO/당시 대통령실 학예사]
″한남동인가요? 하얀 건물… 관저에서 제가 함부로 드나들 수 없었고요. 입구에 그냥 항상 내려드렸고 거기에 미술품 담당하시고 관저에 드나드시는 분이 근무하세요.″
이 학예사가 지목한 ′관저에 드나드시는 분′은 당시 대통령실 행정요원으로 밝혀졌습니다.
<스트레이트>는 이 행정요원에게 연락해 ″공예품을 왜 한남동 관저에서 사용했는지″, ″무슨 용도로 썼는지″ 등을 물었지만, ″보안사항″이라며 답하지 않았습니다.
[☎ 박OO/당시 대통령실 행정요원]
″<(관저에서) 업무동으로 갔는지 주거동으로 갔는지도 말씀이 어려우신가요?> 예, 죄송합니다. 그걸 알아도 못 하고 보안 사항이라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네요. 아시잖아요.″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국립현대미술관의 작품들이 ″한남동 관저에서 사적으로 사용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정윤희/작가·미술평론가]
″대통령실이라고 하는 이유만으로 장기간 2년 동안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도 알리지 않으면서 갖고 있었다라고 하는 거는 사유화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김준혁/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통령실에서 ′행사를 위해서 빌려 갔다′고 하지만 그것이 어디에 있었는지 모른다라고 하는 것이 제일 큰 문제인 것이죠.″
<스트레이트> 취재 결과, 대통령실이 빌려 갔다 국립현대미술관에 반납한 미술품 중 일부가 훼손된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차규선 작가의 ′풍경′이란 작품 사진에 ′눌림 확인′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균열과 이물질이 발견됐다는 표시도 있습니다.
이 밖에도 돌출, 들뜸, 마모 등 총 7개 결함이 확인된 것으로 판정됐습니다.
황규백 작가의 작품 ′시계′ 1점과 김상구 작가 작품 2점도 비슷한 결함이 발견됐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대통령비서실에 별도의 복원 요청을 하지는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 B]
″상태 변화를 체크를 하는 거는 아주 꼼꼼하게 해야 되기는 하지만 아주 이렇게 바로 수복을 해야 된다거나 그런 필요성이 드러나지는 않았던 그런 정도 등급에 속했던 걸로 기억을 합니다.″
◀ 최경재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의 작품들과 왕실 전승 공예품을 사적으로 이용했다는 의혹.
이 밖에도 윤 전 대통령 부부가 국가문화유산을 이용한 행태 역시, 큰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적법한 절차도 지키지 않았고, 상식을 벗어난 행동까지 거침이 없었습니다.
그 행적을 자세히 취재했습니다.
<B>■ 재현된 ′왕놀이′</B>
국보 224호로 지정된 경복궁 경회루.
지난 2023년 9월 12일, 경회루에 검은색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선글라스를 낀 김건희 씨가 등장했습니다.
그러고는 바로 옆 국보 223호인 근정전에 올랐습니다.
김 씨에게 금거북이를 주고 인사를 청탁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배용 당시 국가교육위원장.
그리고 당시 최응천 국가유산청장과 정용석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이 김 씨와 동행했습니다.
김 씨는 예고 없이 경복궁 근정전에 들어가 임금이 앉는 자리, 어좌에 앉았습니다.
[고정주/전 경복궁 관리소장 (국회 문체위, 10월 29일)]
″이배용 전 위원장님께서 같이 이렇게 손을 잡고 이렇게 전반적인 내용을 주로 설명했던 걸로 기억이 되고요. (김건희 씨가) 어좌에 올라간 부분은 제 기억으로는 올라갔었던 부분이 분명히 있고요.″
역대 대통령을 포함해 그 누구도 근정전에 들어가 어좌에 앉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황평우/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근정전 안에 왜 들어갑니까? 들어간 사람이 없었어요. 저도 삼십 몇 년을 문화재 연구 조사를 하고 보호 운동을 하면서 근정전 들어가 본 게 딱 두 번인가 밖에 안 돼요. 그것도 조사차. 항상 이렇게 예의를 지키고 이러고 들어갔어요. 그런데 거기를 들어가서 이러고 들어가요? 전 그건 상상할 수 없어요.″
특검에 출석한 이 전 위원장은 ″′어좌에 앉으면 신하들 모습이 다 보인다′고 말했더니, 김 씨가 갑자기 계단을 올라 어좌에 털썩 앉았다″고 진술했습니다.
당시 김 씨의 행동을 말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상황일지엔 VIP 방문으로 적혀있었습니다.
[허민/국가유산청장 (국회 문체위, 10월 29일)]
″국민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사적 행위이고 그리고 어느 누구도 해서는 안 될 그런 특혜 사유로 생각됩니다. 다시 한번 사죄드리겠습니다.″
이배용 전 위원장은 특검 조사에서 ″아랍에미리트 국빈 맞이 행사를 앞두고 동선을 점검하는 자리였다″고 진술했지만, 국빈 방문은 8개월 뒤에 이뤄졌고, 아랍에미리트 국왕이 실제 방문한 곳도 경복궁이 아닌 창덕궁이었습니다.
여섯 달 전인 2023년 3월 5일엔 김 씨는 윤 전 대통령과 함께 경복궁에 나타났습니다.
일반 관람이 끝난 오후 5시, 예고 없는 방문이었습니다.
어좌가 있는 근정전에 들른 뒤 경회루 2층에 있는 망루에 올랐다가 다시 향원정을 거쳐 경복궁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건청궁에 도착했습니다.
두 사람은 건청궁에 있는 명성황후의 처소이자 시해당한 장소, 곤녕합 안으로 들어가 수행원 없이 10여 분간 머물었습니다.
곤녕합 역시 평소엔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는 공간입니다.
김 씨가 방문했던 경복궁 공간들을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어좌가 자리 잡은 근정전은 출입문마다 나무로 된 장애물이 설치돼있어 일반 관람객은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경회루와 향원정 역시 자물쇠로 문이 잠겨 있어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건청궁 곤녕합도 사면이 막혀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경복궁 관리 직원]
″<곤녕합이나 이쪽에 다 닫혀 있어서…> 네. 원래는 평상시에는 안에 내부 개방은 안 해요. 1년에 한 번, 한 봄하고 가을 정도에 유료로 신청받아서…″
명성황후 처소를 방문하기 사흘 전인 2023년 3월 2일엔 김 씨가 나 홀로 경복궁 바로 옆 고궁박물관을 찾았습니다.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왕조의궤가 보관된 제2수장고를 10분 정도 둘러봤습니다.
온도와 습도에 민감한 유물을 보존하기 위해 지난 2016년 이후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는데, 김 씨에겐 예외였습니다.
문제는 당일 출입자 명단에도 박물관 담당자 3명의 이름만 있을 뿐, 김 씨의 이름은 기재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기헌/더불어민주당 의원]
″(수장고) 1실은 보지 않았습니다. 1실은 서적 중심이었고요. 2실이 서화 중심이었는데 서화가 많이 보관되어 있는 2수장고에 들어가서 조선(왕조)의궤를 봤다는 것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임금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종묘.
일반인 출입이 전면 금지된 휴관일에 김 씨는 일 년에 두 번 제를 올릴 때만 공개되는 영녕전 신실을 둘러보고, 망묘루에서 외국인 지인과 차를 마시기도 했습니다.
당시 신수진 대통령실 문화체육비서관이 사전 답사해 종묘 신실 개방을 요구했고 종묘 직원들은 대청소에 동원됐습니다.
[임오경/더불어민주당 의원 (국회 문체위, 10월 16일)]
″직원들에게 들기름까지 사용해서 바닥 윤기 나게 닦으라고 청소를 시키고.″
[황평우/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우리 역사에서의 공적인 영역이고 이건 문화재를 보호하고 있다. 이거는 사적 공간이 아니라는 거예요. 공적인 공간이 아무리 대통령 부인이라 하더라도 허가받지 않은 행동,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는 거는 이건 문제가 있는 거죠.″
국가유산청은 정부행사 등을 빌미로 한 국가유산의 사적 이용 논란을 방지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 개선에 착수한 상태입니다.
지난 1961년, 5·16쿠데타 세력은 쿠데타 직후 경복궁 근정전에서 ′혁명 참여 장병′을 위한 위문공연을 열었습니다.
전두환 역시 취임 직후 경복궁 경회루에서 대통령 취임 축하연을 개최했습니다.
권위주의 정권이 권력 과시의 수단으로 궁궐을 사용했던 것처럼 ″김건희 씨 부부 역시 이른바 ′왕 놀이′를 즐긴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