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6-07 14:37 수정 | 2020-06-07 14:43
″일본 월강추격대대와 독립투쟁 최초의 전면전을 벌여 빛나는 승리를 거뒀다.″
오늘로 정확히 100주년을 맞는 ′봉오동 전투′를 문재인 대통령은 SNS 메시지를 통해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거기에 더해 ″무장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승리″라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문 대통령이 강조한 대목은 하나 더 있습니다. 봉오동 전투를 역사적 대승으로 이끈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조국으로 봉환하겠다는 약속이 바로 그것입니다.
<′역사적 대승′ 봉오동 전투>
1919년 3·1운동 이후 독립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맡게 됩니다. 특히 여러 개의 무장 독립군 부대가 만주에 창설됐습니다. 그중 두각을 드러낸 것이 바로 ′머슴 출신 의병장′ 홍범도 장군의 부대였습니다. 만주에 머무르던 독립군 부대의 한반도 내 진공 작전 역시 홍 장군과 그 부대가 처음으로 성공했습니다.
1920년 6월 4일, 홍 장군 부대는 두만강을 건너 함경북도에 있던 일본군 초소를 습격했습니다. 이 공격은 초소에 있던 일본군의 몰살로 이어졌습니다. 봉오동 전투의 서막이자, 일본군이 ′독립군 토벌′에 나서게 된 결정적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일본은 최정예부대인 ′월강추격대대′에 독립군 토벌 임무를 맡깁니다.
군인과 물자가 넉넉하지 못했던 상황, 홍 장군은 최소 군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고민의 결과는 3면이 가파른 산으로 둘러싸인 봉오동의 지형을 이용하는 것. 결국 독립군은 봉오동 골짜기에 진을 친 채 일본군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일본군 157명 사망·3백여 명 부상>
1920년 6월 7일 오후 1시쯤, 독립군의 끈질긴 유인책에 홀리듯 뒤쫓아온 일본군이 봉오동 안에 들어서던 그 순간, 고지 꼭대기에 있던 홍 장군의 지시로 3면에 매복한 독립군이 일제히 사격을 개시했습니다.
결과는 대승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 자료에 따르면 일본군 전사자는 157명, 중경상을 포함한 부상자는 3백여 명에 달한 반면, 독립군 피해는 전사 4명, 부상자 2명에 불과했습니다. 대한민국 독립군의 역사적인 첫 승리였습니다.
<′영웅′의 초라한 말년>
승리의 기쁨도 잠시, 일본군의 탄압은 오히려 심해졌습니다. 북간도 일대에 거주하던 우리 동포 3천5백여 명이 일본에 의해 살해당한 ′경신대참변′마저 벌어지자 독립군 역시 근거지를 러시아 땅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김좌진·이청천 장군 등은 이후 다시 만주로 나왔지만, 홍범도 장군의 경우 러시아 땅에 머무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던 1937년, 스탈린은 연해주 일대의 조선인을 모두 중앙아시아로 이주시켰습니다. 이른바 ′고려인 강제이주정책′에 홍 장군 역시 카자흐스탄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홍 장군은 집단농장 관리인, 극장 경비인을 하며 말년을 보내다 결국 1943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불과 2년도 남기지 않았던 시점이었습니다.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 장군의 유해가 카자흐스탄 땅에 머물고 있는 이유입니다.
<문 대통령 ″홍 장군 유해 모셔올 것″>
올해 3·1절 기념식, 문 대통령은 ″온 국민이 기뻐할 소식을 전하겠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의 승리를 이끈 평민 출신 위대한 독립군 대장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드디어 국내로 모셔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홍 장군 유해 봉환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습니다. 지난해 4월 카자흐스탄을 국빈 방문한 문 대통령이 홍 장군 유해 봉환을 요청했고, 카자흐스탄 정부 역시 협조를 약속했던 겁니다.
그런데 3개월여가 지난 오늘, 문 대통령이 ″홍 장군 유해를 조국으로 모셔와 최고의 예우로 보답하겠다″고 다시 한번 강조한 이유는 뭘까요. 불가항력적 이유가 있었습니다. 전 세계로 확산된 코로나 19가 홍 장군 유해 봉환 역시 지연시켰던 겁니다. 정부는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되는 대로, 늦어도 올해 말까지는 홍 장군 유해 봉환을 마무리지을 계획으로 카자흐스탄 측과 협의를 하고 있습니다.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의 의미는 청와대가 어제 제65회 현충일 추념식의 주제,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당신을 기억합니다″와도 맥이 닿아 있습니다. 애국의 현장에서 나라를 지켜낸 평범하면서 위대한 국민을 국가가 잊지 않고 반드시 기억하고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말 뿐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