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9-17 15:28 수정 | 2020-09-17 15:33
일본의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운 아베 신조 정권이 지고, 스가 요시히데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일왕의 임명 절차를 거친 뒤 스가 총리의 첫 기자회견이 어젯밤 9시에 총리 관저에서 열렸습니다.
지난해 일본의 일방적인 수출 규제 이후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게 된 만큼, 새 총리가 한국에 대해 어떤 입장을 내놓을 지 한국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스가 총리 취임 기자회견‥ ′한국′ 언급 없어</strong>
하지만 30여분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한국′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외교 및 안전보장 분야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일본)를 둘러싼 환경이 한층 어려워지는 가운데, 기능하는 미일동맹을 기축으로 한 정책을 전개해갈 생각이다. 국익을 지키기 위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전략적으로 추진하는 동시에, 중국, 러시아를 포함한 주변 여러나라와 안정적인 관계를 구축해가고 싶다.″ (9월 16일 스가 총리 취임 기자회견 중)
이와 관련해 오늘 오전 한국 포털에선 ′日 스가, 한국만 쏙 빼′ ′한일관계 언급無′ ′한일관계 언급 패싱한 日 스가′ ′스가, 노골적 코리아 패싱′ 등등의 기사 제목이 줄줄이 등장했습니다.
사실 스가의 이런 입장은 총리 취임 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지난 2일, 스가 총리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에서 ″미일 동맹을 기축으로 하면서 가까운 이웃 나라들과도 관계를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8일 총재 후보 등록 후 소견 발표를 하는 자리에서도 마찬가지.
스가는 ″미일 동맹을 기축으로 정책을 전개하고 있다″며 ″국익을 지키기 위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진하는 동시에 중국을 비롯한 주변 여러나라와 안정적인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총리 취임 회견과 거의 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토론회 답변에서 한 차례 ′한국′ 언급했을 뿐</strong>
유일하게 한국을 직접 언급한 건 지난 12일 열린 일본 기자클럽 토론회서 뿐입니다.
이날 스가는 외교문제에 관한 질문에 ″미일동맹을 기축으로 아시아 국가들과 교류하는 게 중요하다″며, ″중국, 한국을 시작으로 이웃 여러나라와 각각 어려운 문제가 있지만, 양자 택일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이런 나라들과도 잘 교류하고 항상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외교를 해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은 의원내각제 국가라서 다수당 총재가 총리가 되는 만큼, 자민당 총재 선거는 한국의 대통령 선거처럼 국내외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후보자는 기자회견과 토론회 등을 통해 국정 전반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피력하게 됩니다.
그런데 스가 총리는 한국과 한일관계에 대해 원론적이거나 곁다리로 살짝 언급했을 뿐, 제대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아베 총리 취임때는 어땠나 살펴보니…</strong>
과거 아베 신조 총리는 어땠을까요.
먼저 지난 2007년 8월 27일 총리에 오른 아베 총리의 첫 기자회견을 보면, 모두 발언과 질의응답에서 모두 한국 관련 언급은 없었습니다.
2차 집권에 성공해 총리에 오른 2012년 12월 6일 취임 기자회견도 살펴봤습니다.
이때는 아베 총리의 모두 발언과 질의 응답에 ′한국′이 등장합니다.
″국익을 지키고, 주장하는 외교를 회복해야 한다. 일중관계, 일한관계, 그리고 일본의 외교 안전보장의 기반인 미일관계에 많은 과제가 있다.″
″새로 입각한 각료의 면면에 대해 중국, 한국에서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기자)
″외교에 있어서는 국익이 제일이다. 국익을 확보하려는 데에서 때로는 국익이 부딪치는 경우가 있다. 그 때에는 전략적인 외교를 전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아베 2차, 3차 내각 출범 시 ′한국′ 언급</strong>
2014년 12월 아베의 3차 내각이 출범할 때에는 질의응답 과정에서 한일관계 개선에 관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과도 APEC 만찬에서 솔직하게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웃 국가이기에 다양한 과제가 있을 수 있지만, 과제가 있으니 정상회담을 갖고 솔직하게 흉금을 열고 서로 자신의 생각을 얘기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종합해보면 아베 총리는 네 차례의 총리 취임 기자회견 중 두 차례 한국을 언급했고, 그 중 한번은 스스로 모두 발언에서, 한번은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언급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스가 총리, 한국 무시? ′코리아 패싱′?</strong>
그렇다면 어제 취임한 스가 총리는 사실상 한국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으니, 일부 한국 언론 매체들의 기사처럼 한국을 이른바 ′패싱′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스가 총리의 취임 기자회견과 토론회를 보면, 항상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언급하는 문제는 코로나19와 경제입니다.
팬데믹 상황에서 코로나19는 전세계 모든 국가에 가장 심각한 현안일 수 밖에 없는데다, 일본에서는 지난 7월 이후 코로나19 재확산 추세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으면서 확진자가 7만명을 넘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안으로는 영업 단축, 밖으로도 출입국을 제한하면서 일본 경제도 추락하고 있습니다.
2분기 GDP는 전후 최악 수준인 -7.9%를 기록했고, 폐업과 실직이 속출하면서 일본 국민들의 살림살이도 피폐해지고 있습니다.
아베의 취임때와 비교해보면 신임 총리가 방점을 둬야할 문제가 상당히 달라진 셈입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스가, 코로나19와 경제 문제에 방점</strong>
물론 스가 총리가 외교안보 관련 언급을 전혀 안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아베 전 총리가 추구해온 미일동맹, 일본인 납치문제, 시진핑 주석 방일 등 중국과의 관계를 원론적으로 되풀이하고 있을 뿐입니다.
일본 언론들의 관심사도 비슷합니다.
어제 기자회견에서 스가 총리는 모두 5개의 질문을 받았는데 외교안보와 관련된 것은 4번째 일본인 납치문제 뿐이었습니다.
실제 일본에선 최근 한국, 한일관계에 대한 뉴스 자체가 매우 뜸해졌습니다.
이렇게 볼 때, 스가 총리가 어제 기자회견에서 한국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는 의도를 갖고 한국을 경시하고 무시했다고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스가 정권, 한일관계 개선 여부는 불투명</strong>
다만 스가 정권을 맞아 최악인 한일 관계가 개선될 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많습니다.
스가 총리는 공식적으로 아베 정권 계승을 표방했습니다.
외교에 경험이 적은 스가는 외교문제에 대해서는 아베 전 총리와 상의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당장 한일관계 개선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전망이 많습니다만, 스가 정권을 좀 더 지켜볼 필요도 있어 보입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스가 장기집권 등 추이 좀 더 지켜봐야″</strong>
이제 막 임기를 시작한 스가 총리는 당내 기반도 약하고, 선거를 통해 국민의 신임을 받지도 못한 상태입니다.
임기도 일단 아베 총리의 잔여 임기 1년 뿐입니다.
스가 총리가 취임 회견에서 강조한대로 코로나19와 경제를 동시에 잘 챙김으로써 안정적 장기 집권 기반을 마련한다면, 비로소 아베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기 색깔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스가 신임 총리가 이른바 ′스가식 정치′를 시작할 때까지 스가 정권의 일본에게 한국은 ′무시′ 보다는 ′보류′ 상태로 미뤄뒀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다만 당장 한일 간에는 강제징용 관련 일본 전범 기업 자산의 현금화라는 ′시한 폭탄′같은 현안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어서 언제까지 ′보류′해둘 수만은 없는 상황인 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