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곽승규

또 핵 위협한 김정은, 푸틴 보고 배웠나?

입력 | 2022-04-30 07:44   수정 | 2022-04-30 09:58
″적대 세력들에 의해 지속되고 가증되는 핵 위협을 포괄하는 모든 위험한 시도들과 위협적 행동들을 필요하다면 선제적으로 철저히 제압 분쇄하기 위해 우리 혁명 무력의 절대적 우세를 확고히 유지하고 부단히 상향시켜나가야 한다.″

오늘(30일)자 노동신문에 실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발언입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25일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90주년 기념 열병식에선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본 이익을 침탈한다면 우리 핵 무력은 의외의 자기의 둘째가는 사명을 결단코 결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김 위원장이 말하는 근본 이익이라는 게 정확히 뭘 말하는지는 모호합니다.

하지만 오늘 공개된 발언과 종합해보면 결국 북한이 판단하기에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되는 무언가가 있다면 언제든 선제적으로 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김 위원장은 왜 자꾸 이런 강경 발언을 내놓는 걸까요?

이와 관련해 한 가지 주목해서 볼만한 관점이 있습니다.

그의 발언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여주고 있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행동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란 분석인데요.

이런 분석을 내놓은 전문가들의 생각을 자세히 정리해봤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 ″러시아 따라하는 북한″</b>

아산정책연구원의 차두현 수석연구위원은 지난 26일 이런 분석을 내놨습니다.

″김정은은 북한의 ‘근본이익’이 침탈되면 핵억제의 목적을 넘어서도 핵을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핵공격을 받을 경우 이에 자위적 수단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한 전통적인 입장을 벗어나는 것이다.″

차 수석위원의 말처럼 핵은 자국이 공격받았을 경우 이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제한적으로 사용한다는 게 전통적인 인식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최근 한 발 더 나아가고 있습니다.

″(북한의 모습은)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미국이나 나토(NATO) 회원국들에 대해 취하고 있는 입장과 매우 유사하다. 즉, 북한은 상황에 따라 핵을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으며, 앞으로도 필요하다면 더 자유롭게 핵위협을 가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가 이미 좋지 않은 선례를 만든 점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

차 수석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들어봤습니다.

″미국하고 나토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니까 러시아 쪽에서 핵 전력들에 대한 대비 태세를 명령을 내리고 난 다음에 ′지금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한 번도 보지 못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라고 얘기했었잖아요. 이게 사실은 핵 위협이거든요. 그러니까 굉장히 확장적으로 얘기하는 거예요. 핵을 사용하는 불문율은 실제로 공격당했을 땐데, 그냥 내 이익이 침해를 받으면 공격을 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기는 거기 때문에 굉장히 확장적인 개념으로 이제 핵사용을 정의를 하는 거죠.″

실제 러시아는 우크라니아 그리고 미국과 나토로부터 먼저 공격을 당한 적이 없음에도 핵 사용 가능성을 수차례 언급했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차 수석위원은 이런 러시아의 모습을 북한이 보고 따라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렇게 러시아가 한번 길을 열어줬기 때문에 북한이 그대로 따라 하고 있는 거예요. 자기 이익에 침해당하면 핵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선례를 러시아가 보여줬고 북한이 지금 그걸 이용하는 거죠.″
<b style=″font-family:none;″>#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b>

미국 외교 전문가도 차 수석위원과 비슷한 분석을 내놨습니다.

워싱턴포스트의 외교·안보 칼럼니스트인 조시 로긴은 ′김정은은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는 제목의 칼럼을 지난 28일에 발표했습니다.

로긴은 칼럼에서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김정은의 언행이 더욱 공격적으로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면서 ″푸틴이 위험, 억제, 긴장고조, 핵 벼랑 끝 전술에 대한 지정학적 교과서를 다시 쓰면서 그의 제자인 김정은도 이를 학습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이 유럽의 위기에 초점을 맞추는 동안 김정은이 동아시아에서 판돈을 키우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미국 바이든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을 빼닮은 공격적인 표현으로 위협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b style=″font-family:none;″># 새 정부 길들이기?</b>

물론 김 위원장의 위협이 미국만을 향하는 건 아닙니다.

북한과 맞닿아 있는 우리에겐 보다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 4일 김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조선이 우리와 군사적 대결을 선택하는 상황이 온다면 부득이 우리의 핵전투 무력은 자기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게 될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자신들의 핵 개발이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에 맞선 것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던 북한이 ′남조선의 선택′이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핵 무력을 남한을 상대로도 쓸 수 있다고 언급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엔 한 발 더 나아가 ′근본 이익 침탈′이란 모호한 말을 더해 핵 사용 기준의 문턱을 스스로 더 낮췄습니다.

새 정부 출범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마치 길들이기라도 하려는 듯 연신 주체적인 핵 사용 능력을 과시하고 있는 겁니다.
<b style=″font-family:none;″># 문제는 추가 핵 실험</b>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통일부 당국자는 김 위원장이 언급한 ′근본 이익′이란 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 같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북한이 다양한 계기에 ′우리 인민의 근본 이익′과 같은 표현을 사용해왔으나 구체적 의미를 밝힌 바는 아직 없습니다. 현재로선 국가 및 체제 존립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개념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동향과 보도 내용 지켜보면서 추가적이고 심도 있는 평가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김 위원장이 내세운 근본 이익이라는 게 뭔지 명확하지 않은 만큼 섣불리 예단하진 않되, 향후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겠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말 한마디에 일일이 대응하며 휘말리기보단 차분한 대응을 택한 겁니다.

문제는 북한의 다음 움직임입니다.

북한은 최근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 복구 공사에 속도를 내는 등 7차 핵실험 움직임을 가시화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실제 핵 실험을 감행한다면 한반도의 긴장감은 급속도로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달 10일 윤석열 정부의 출범에 이어 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이 예정된 상황 속에 우리 정보 당국은 북한이 이 시기에 맞춰 추가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