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5-02 08:00 수정 | 2023-05-02 17:17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일 년을 훌쩍 넘겨 433일째(5월2일 기준)를 맞고 있다. 지난해 2월 시작된 전쟁이 교착국면에 빠져 장기화한 상태에서 오는 9일 러시아의 ′전승절′ 즈음에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이 임박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29일 크름반도(러시아어 크림반도)에 있는 러시아의 유류 저장고를 공격했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도 장갑차 1550대, 전차 230대, 또 막대한 양의 탄약 등 서방국가들이 지원한 무기와 군수물자의 98%가 이미 우크라이나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또 러시아의 민간 용병부대인 와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우크라이나가 바흐무트 지역에 잘 훈련된 부대를 보내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반격은 피할 수 없게 됐다″면서 반격 시점을 ‘전승절’로 예상했다.
′전승절′(러시아어로 День Победы , Den Pobedy)은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5년 나치 독일과 옛 소련의 전쟁에서 소련이 독일을 상대로 승리한 날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러시아가 자랑스러워하는 이 날에 우크라이나가 도리어 반격을 시도하려는 것이다.
일부 군사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의 대반격 움직임에 대해 한국전쟁의 변곡점이 됐던 인천상륙작전과 비교하기도 한다. 전제주의 정권의 무력 침공에 맞선 작전이자, 미국 주도의 자유 진영 다국적 연대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하지만 인천상륙작전은 기습적으로 이뤄져 적의 허를 쩔러 성공한 전투였다면, 우크라이나의 대반격 시나리오는 이미 몇 차례 공개돼 러시아에게 시간을 벌어준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임박한 전승절 반격은 우크라이나의 운명을 결정짓게 될 것으로 보인다. 대반격 이후 전개될 상황에 대한 예상 시나리오는 3가지 정도.
우선, 우크라이나가 반격에 성공한다면 계속 동쪽으로 진격할 기회를 잡게 된다. 미국 등 서방국가의 추가적인 군사 지원을 받아낼 수 있고, 전쟁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이럴 경우, 장기적으로는 러시아가 일부 영토를 포기하고 철수해 우크라이나는 자국의 영토와 주권을 다시 장악할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고 철수할 경우, 원자로나 사용후 핵연료 저장소를 공격해 방사능을 유출시켜 보복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미국이 핵무기나 더티밤(dirty bomb)의 방사능을 감지하고 공격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센서를 우크라이나 전역에 설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더티밤은 재래식 폭탄에 핵 물질을 채운 무기로, 핵폭탄에 비해 위력은 약하지만 광범위한 방사능 오염을 일으킬 수 있다.
반면 대반격이 실패하면 우크라이나에 치명타가 된다. 서방의 화력 지원이 약해지고 점령지역을 수복한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는 젤렌스키 정부가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또 우크라이나 군은 엄청난 전력손실과 사기 저하로 현재 격전을 벌이고 있는 바흐무트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크다. 바흐무트는, 이미 러시아가 장악하고 있는 동부 돈바스 지역과 수도인 키이우 등 우크라이나 곳곳을 잇는 고속도로가 지나는 교통의 요충지다.
이렇게 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선을 남서부로 확대할 수 있다. 많은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최종 목적지는 우크라이나가 서쪽 국경을 맞대고 있는 몰도바의 친러 지역인 ′트란스니스트리아′ (Transnistria) 로 본다. 다시 말해 우크라이나 동부와, 2014년 합병한 크름반도, 그리고 남부 오데사 항구를 지나 트란스니스트리아까지 연결하는 길다란 땅길 즉 회랑(corridor)이 만들어진다. 우크라이나는 흑해로부터 차단된 고립된 내륙국가로 남는다. 그리고 몰도바는 ′제2의 우크라이나′가 되면서 러시아와 서방국가 간의 더 큰 격돌이 이어지는 위험한 결과가 초래된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대반격 성공 못하면 ′정전 협상′ 압박 커질 듯</strong>
마지막으로, 양쪽 모두 결정적인 승기를 잡지 못하면, 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고 세계의 관심이 줄어들면서 정전 또는 휴전 협상이 시작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러시아가 자국 영토에서 완전히 철수하지 않게 되는 정전 협상을 피하고 싶겠지만, 더 큰 피해는 막을 수 있다. 또 정전협상을 함으로써 차후에 영토를 수복할 수 있는 여지가 남는다.
서방국가들의 입장에서도 그리 나쁜 선택지가 아닐 수 있다. 미국의 정치 전문 일간지인 폴리티코(Politico)는 ′(서방국가는) 우크라이나에 나토 회원국과 같은 안보를 약속하고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하면서 러시아와 군사적인 긴장 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라는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진전 없이 전쟁을 이어가고 유럽 지역에서 고립돼 지역 패권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현재 ′우크라이나의 전승절 대반격′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나토가 지원한 첨단 장비를 운용하는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이유다. 독일에서 지원받은 레오파르트2 전차는 최대속도가 시속 70㎞에 첨단 장비를 갖췄고, 미국의 주력 전차 에이브럼스 M1A1도 최고의 전차로 평가받지만 전쟁에서 장비 못지않게 중요한 건 실전경험이기 때문이다. 설사 우크라이나가 대반격에 나선다 하더라도, 대단하지 않은 수준의 영토 회복 그 이상의 결과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이유로 우크라이나의 전승절 대반격은 ′성동격서′ 방식의 속임수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여름 우크라이나는 남부 헤르손을 공격하겠다고 언급했다가 가을에 하르키우 지역을 공격해 수복에 성공한 위장전술을 펼친 전력이 있다.
모든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우크라이나의 반격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크라이나 군의 전술 능력, 동맹국으로부터 받는 군사 지원의 수준이 얼마나 지속될 지, 또 러시아가 전쟁을 계속할 의지와 여력이 있는지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달라진다.
우크라이나의 반격은 여러 위험 요소가 존재한다. 격전지에서는 이미 도시가 초토화됐다. 여기에 추가적인 인명피해와 인프라 파괴를 초래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 등에는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아 진흙탕이 되면서 그동안 전투도 교착 상태에 빠졌지만, 이제 굳은 땅 위로 장갑차와 전차가 다닐 수 있는 계절이 왔다. 우크라이나가 이번 봄 반격에서 성공한다면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을 크게 높여줄 것이다. 빼앗긴 우크라이나 땅에도 봄은 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