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외교앵커: 엄기영,백지연

적대에서 수교로까지 한국.중국 수교과정[정형일]

입력 | 1992-08-21   수정 | 1992-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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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에서 수교로까지 한국. 중국 수교과정]

● 앵커: 그러면 여기서 한 때 적대관계였던 한중관계가 어떻게 국교수립단계까지 왔는지 그 수교 과정을 정형일기가가 정리해드리겠습니다.

● 기자: 625 전쟁 때 중공군인의개입으로 최악으로 치닫던 한중관계는 80년대 초까지도 뚜렷한 돌파구를 마련지 못했습니다.

다만 70년대 말 세계적으로 냉전시대가 끝나가고 80년대 초 등 동서 화해체제가 조성함에 따라서 한중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을 보였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83년 5월 중국민항기가 피랍돼 춘천미군기지에 착륙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때 중국 대표단이 한국을 방문해서 한중 당국자 간에 첫 번째 만남이 이루어졌고 접촉당시에 중국은 대한민국이라는 정식국호를 사용해서 관계개선 가능성을 처음으로 시사했습니다.

그 뒤 한국과중국은 스포츠교류를 통해서 단절의벽을 허물어갔습니다.

특히 86아시안게임과 88 서울 올림픽 때 중국이 선수단을 파견했고 우리나라도 9년 북경아시안 게임에 참가했습니다.

이렇게 스포츠교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면서 경제관계도 급진전을 보게 됩니다.

지난 90년 10월 북경에서 대한 무역진흥공사와 중국 국제상회는 한중무역대표부를 상대국에 각각 설치하기를 합의에서 정식적인 물꼬가 열렸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해부터 한중수교의 발판이 되는 정부 당국자 간에 회담이 시작됐습니다.

지난해 4월 서울에서 열린 에스캅 총회 때 한중외교당국자 첫회담으로 지난해10월 유엔총회에 참석했던 이상옥외무장관과전기침 외교장관이 최초에 한중 외무관장외당을 가졌습니다.

이어서 한달 뒤에 전기침 외교장관이 APEC 회의가 열린 서울에서 이상옥외무장관과제2차 외무장관회담을 열고 무역대표부에 외교기능 부여한다는 중교한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마침내 지난 4월 북경에서 열린 제 48차 에스캅 총 회때 한중외무장관은 3차회의를 갖고 한중간의 관계정상화로 동아시아과한반도도의안정 기여한다는 것에 의견을 같이 함으로서 수교원칙을 공식확인하고 그동안 마무리작업을 진행시켜왔습니다.

MBC뉴스 정형일입니다.

(정형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