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스크박영훈

70년째 미뤄진 진상규명과 배상…사라지는 '희생'의 역사

입력 | 2020-06-27 20:29   수정 | 2020-06-27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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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한국전쟁이 일어난지 70년 입니다.

당시엔 무고한 민간인들이 군경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희생되는 일들이 잦았습니다.

심지어는 집단학살을 당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아직 진상규명은 물론, 보상이나 배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박영훈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6일 아침.

7가구가 살고있던 전남 함평의 작은 농촌마을에 군인 20여명이 갑자기 들이닥쳤습니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주민 십여명이 마을입구 논으로 불려나왔고, 바로 그 자리에서 총탄이 날아들었습니다.

[안종필/전남 함평 양민학살 생존자(당시 2살)]
″마을 사람들을 전체적으로 다 나오라고 해가지고 줄을 세웠어요. 그리고 어떤 신호도 없이 총으로 쐈고…″

당시 2살이던 안종필씨와 어머니, 이렇게 2명만이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을 뿐, 나머지 12명이 그자리에서 숨졌습니다.

당시 국군 11사단 20연대 2대대 5중대가 빨치산과의 전투에서 숨진 동료 2명의 복수를 한다며 저지른 ′함평 양민학살′의 시작입니다.

한 달간 20개 마을에서 자행한 살육으로 당시 524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사건을 포함해 보도연맹 등 밝혀진 희생자는 천 2백여 명에 이릅니다.

하지만 인근 영광 불갑산 토벌작전에서 희생된 천여 명의 민간인은 조사가 안 돼 아예 빠져 있습니다.

피해신고가 없으면 진상조사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희생자로 확인되도 보상이나 배상을 받기는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지난 2006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인정한 함평 지역 희생자 898명 가운데 배상이나 보상을 받은 경우는 15%에 불과합니다.

새로 시행되는 과거사정리법 개정안에도 배상과 보상 규정은 쏙 빠져 있습니다.

[정근욱/함평사건희생자유족회 회장]
″실질적으로 진실 규명도 중요하지만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그 책임을 금액이 얼마가 됐든지 간에 한계를 갈라야 합니다.″

제대로된 진상규명은 물론 배상과 보상에 국가가 무려 70년간이나 머뭇거리는 사이, 살아 남은 이들도, 그 날을 기억하고 있는 유족들도 아픔을 간직한 채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MBC뉴스 박영훈입니다.

(영상취재: 이우재/목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