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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민
[단독] 고향 못 간 北 출신 강제 동원자 유해 19위 확인
입력 | 2020-08-13 20:57 수정 | 2020-08-13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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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이렇게 일제 강제 동원은 남녀 노소 뿐 아니라 지역도 가리지 않았습니다.
오래전 피해자들의 유골이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봉환이 됐었는데, 이 가운데 북한 출신 피해자도 열 아홉명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일부가 아직도 고향인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희가 처음으로 확인했는데요.
봉환도 해야겠지만, 남·북한이 공동으로 강제 동원의 진실을 규명 하자는 논의가 나오고 있습니다.
정영민 기자가 단독 취재 했습니다.
◀ 리포트 ▶
해외동포 묘지인 천안의 국립 ′망향의 동산′
동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납골당 안으로 들어가자 유골함들이 층층이 들어차 있습니다.
취재진이 입수한 유골함 명단에서 안치 번호와 이름을 확인했더니 이 가운데는 북한 출신 강제동원 피해자, 모두 19명의 유골함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함경남도 단천군이 고향인 이순섭씨 등 이들은 모두 1920년대 전후에 북한 지역에서 태어났는데,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모진 고통을 겪다 해방이 되던 해 숨진 피해자들입니다.
이같은 북한 출신 피해자들의 유골은 1970년대 초, 태평양전쟁 희생자 1천3백여 위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봉환될 당시 섞여 들여온 겁니다.
[전창현/행정안전부 유해봉환과 팀장]
″연락 두절이 되시거나 해가지고 무연고 상태가 돼버리시면 돌려드릴 데가 없잖아요.″
반대로 같은 강제동원 피해자지만 북쪽에서 일하다 숨진 뒤,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올해 83살인 황원문 할아버지는 부친이 지난 1943년에 함경남도 흥남의 비료공장에 끌려가 일하다 숨졌습니다.
당시 종신보험 명목으로 받은 보험증서가 강제징용 사실을 입증하는데, 부친의 유골은 끝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황원문(83세)/일제강제동원 피해자 2세(북한)]
″아버지 불러 보는 거.. 그걸 생각하면 참 눈물이 나죠. 아버지… 아버지라고 한 번 못 불러봤어요.″
이렇게 일제에 강제동원돼 북한에서 일하다 사망한 남한 출신 202명의 유해는 아직 수습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남북한이 유골 봉환과 함께 일제 강제동원의 진상규명도 공동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혜경/일제강제동원 평화연구회 연구위원]
″정부가 책임을 지고 (유골 봉환 작업을)하고 민간단체는 정부가 하는 것을 지원하는 그런 형태로 역할을 나누어서 남북한이 공동으로 대응을 해야 된다고 봅니다.″
MBC뉴스 정영민입니다.
(영상취재: 장성욱(경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