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보니까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그대로 노출돼 있거나, 생활을 포기한 채 숨어지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지어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2차 가해가 벌어지기도 하는데요.
어디서도 보호받지 못한 채 끔찍한 폭력에 내던져져 있는 데이트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스런 현실을 공윤선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지난 7월 어느 날 자정 무렵.
닫혀 있는 가게 유리문을 한 남성이 망치로 힘껏 내려칩니다.
문을 깨고 들어온 남성은 망치를 손에 든 채 여자친구인 선영 씨를 찾기 시작합니다.
성관계를 강요하고 폭행을 일삼는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하자 가게로 찾아와 행패를 부린 겁니다.
[김선영(가명)/데이트폭력 피해자]
″제 방에 가면 구멍이 지금 한 6군데인가 7군데인가 그렇게 뚫린 게 있어요. (남자친구가) 말을 안 들으면 치는(때리는) 거예요. 맞아서 뇌진탕까지 왔었잖아요. ′헤어지면 안 되겠냐′ 하니까 그날 (남자친구가) 김해에서 직접 이리 와 가지고.″
경찰에 연행된 남성은 몇 시간 뒤 바로 풀려났고, 선영 씨는 그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그랬더니 2주 만에 더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모자에 가발까지 쓰며 얼굴을 숨긴 남자친구가 전기충격기와 흉기를 들고 찾아온 겁니다.
자신을 왜 고소했냐고 화를 내며 선영 씨의 팔과 손, 목 등에 여러 차례 흉기를 휘둘렀습니다.
가까스로 탈출해 목숨은 겨우 건졌지만 몸과 마음에 남은 상처는 지우기 어렵습니다.
[김선영(가명)/데이트폭력 피해자]
″그냥 살아난 것만 해도 참… 다들 기적이라고 하는데 (손바닥) 힘줄이 끊어지고 신경이 지금 잘못돼, 이게 감각이 없어요. 매일 약을 안 먹으면 잠을 못 자요. 혼자 못 있어요.″
선영 씨는 경찰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유리문을 깨고 들어왔던 날 오후 남자친구는 다시 찾아와 목을 졸랐는데, 그때도 별 조치 없이 석방된 겁니다.
[김선영(가명)/데이트폭력 피해자]
″(남자친구가) 목을 졸랐을 때 진짜 경찰들이 잡아가서 구속을 시켰더라면 칼에 찍히고 내가 이렇게 고생을 할 일도 없고… 이번에 목숨을 잃을 뻔했었잖아요.″
이전에 경찰에서 받아두었던 신변 보호용 스마트 워치도 막상 위급한 때 전혀 도움이 안 됐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김선영(가명)/데이트폭력 피해자]
″30분 넘어서도 (경찰이) 안 왔었어요. 제가 만약 죽었다면 죽었죠. 임진강 물이, 물난리가 나가지고 (경찰이) 거기를 갔답니다.″
여자친구에게 반복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이 남성 역시, 흉기까지 휘두른 뒤에야 경찰에 구속됐습니다.
피해자는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라서 겨우 가해자와 분리됐습니다.
이처럼 추가 피해에 무방비로 노출된 데이트 폭력은 왜 처벌은 물론, 최소한의 피해자 보호도 잘 이뤄지지 않을까요.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언제 또 당할지..″</strong>
연인 간의 폭력을 따로 규제하는 법이 없고, 그러다 보니 피해자의 신변 보호 조치도 느슨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변 보호를 요청하면 긴급 상황을 신속히 경찰에 알릴 수 있는 스마트워치를 받거나, 112 신고시스템에 기존 데이트폭력 피해자임이 등록됩니다.
피해 예방보다는 사후 신고 기능밖에 안 되는 조치들이지만, 이런 보호조차 못 받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김현정(가명)/데이트폭력 피해자]
″(스마트워치가) 남아 있는 재고가 없어서 줄 수 없으니 그냥 그 친구(가해자)가 집 근처로 오거나 연락이 오면 경찰에 전화를 해라 이렇게 말하고 끝나셨어요.″
재범률이 높고 보복·강력범죄로 이어지기도 하는 데이트 폭력 특성상 가정폭력처럼 가해자 ′접근금지 명령′ 등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지만,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징역 3년 이상의 중범죄를 저질렀을 때만 긴급체포가 가능한데, 심각한 피해를 입기 전까지는 말 그대로 피해자가 알아서 숨어지내야 되는 겁니다.
[심재국/변호사]
″연락을 끊고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보통 도피를 합니다. 근데 본인이 생활 근거지가 있는데 그걸 완전히 끊고 가야 되는 건… 사실 가해자가 도망을 가야 되는 부분인데.″
경찰이라고 할 말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이은구/경찰청 가정폭력대책계장(출처:한국여성의전화 토론회)]
″뭔가 범죄가 이루어질 것 같은 판단이 들어도 아직 범죄가 없기 때문에 격리조치를 못하는 거죠. ′나중에 맞으면 다시 신고해달라 지금은 우리가 법적으로 어떻게 해 줄 수가 없다′ 그렇게 안내할 수밖에 없습니다.″